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중국발 저가 메모리 반도체 물량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자 중국 반도체 업계는 구형 메모리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적자를 감수하며 물량 밀어내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2년 안에 중국 대표 D램 기업 창신메모리(CXMT)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뒤쫓아 업계 3위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만 IT매체 디지타임스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소비자용 DDR4 가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3대 D램 업체 제품의 절반 수준이라고 전했다. 중국 업체의 DDR4는 중고 제품보다도 약 5% 저렴하게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메모리 업계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저가 대량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격을 무기로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 해외 판로를 최대한 확보해 놓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주요 메모리 제조사 양쯔메모리(YMTC)의 천난샹 회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국제 반도체 박람회에서 “중국 반도체 업계는 하나의 그룹처럼 뭉쳐 공동의 도전에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략에 따라 중국 D램 1위 CXMT의 생산능력(웨이퍼 기준)은 2년 전 월 7만장에서 올해 말 20만장 수준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베이징과 허페이에 확장 중인 공장이 완공되면 생산능력은 월 30만장에 달하게 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CXMT가 2026년쯤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D램 점유율 3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내다봤다. 또 2018년 미국의 제재를 받았던 중국 D램 업체 푸젠진화도 DDR4를 주력으로 양산하며 생산능력을 월 10만장 이상으로 늘리고 있다.
중국의 저가 맹공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레거시(구형) 공정 D램 생산을 줄이면서 수익성 방어에 나섰다. 구형 공정 분야의 생산라인과 인력을 최소화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선단 공정으로의 전환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해외 기업설명회(NDR)에서 “DDR4와 LPDDR4 노출을 줄일 계획”이라며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기술력으로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공급 증가로 DDR4, LPDDR4 등 레거시 제품 시장은 경쟁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고성능 DDR5, LPDDR5의 경우 후발 업체의 진입에 시간이 필요해, 레거시 제품을 빠르게 축소하고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전력을 쏟을 경우 기존 메모리 강자들의 경쟁 우위가 위태로워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분석 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4년 약 14%에서 지난해 23%로 올랐고, 2027년에는 27%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반도체 업계의 뒷배 역할을 하는 반도체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 산업투자기금은 올해 5월 3440억위안(약 66조원) 규모로 확대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중국 정부가 적자를 보전해 준다는 믿음이 있어 손해를 보고 팔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CXMT를 필두로 DDR5 양산도 준비하고 있어, 지금처럼 중국 메모리 업계가 물량 공세와 반도체 개발 역량을 확대하면 국내 업체들과의 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첨단 장비의 대중 수출 통제로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 속도가 다소 늦춰질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중국은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CXMT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대폭 강화하며 경쟁력을 키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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