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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식칼 살 때 실명 인증, 온라인은 필요 없네… 中 도시 보안 ‘구멍’ 엿보니

조선비즈 조회수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 한 대형마트. 2층 생활용품 코너에서는 주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품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식칼과 과도, 가위 등 날카로운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수퍼마켓 두 곳 역시 가위는 팔아도 식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직원은 “왜 칼을 안 파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라면서도 “칼 판매와 관리 규정이 까다로워 아예 들여놓지 않는 듯하다”라고 했다.

대형 가구매장인 이케아까지 가서야 겨우 식칼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간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투명 케이스 안에 각종 칼의 실물이 전시돼 있었고, 그 밑에는 각 칼의 번호가 적힌 플라스틱 표가 십여개씩 걸려있었다. 이 플라스틱 표를 가지고 계산대로 가서 중국인은 신분증 번호를, 외국인은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임시 번호를 입력한다. 이후 별도 창구로 가서 플라스틱 표와 영수증, 여권 등 신분증 실물을 제시해야 한다.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대형 가구매장 이케아에서 판매 중인 식칼들.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 모델의 플라스틱 판을 들고 계산한 뒤, 별도 창구에서 실명을 인증해야 제품 실물을 받을 수 있다./이윤정 기자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대형 가구매장 이케아에서 판매 중인 식칼들.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 모델의 플라스틱 판을 들고 계산한 뒤, 별도 창구에서 실명을 인증해야 제품 실물을 받을 수 있다./이윤정 기자

이날 기자는 길이 16cm짜리 식칼을 구매했는데, 직원은 기자의 이름과 여권 번호, 주소, 휴대전화 번호, 제품 정보까지 입력한 뒤에야 실물 칼을 내줬다. 이 직원은 “공안국(중국 경찰) 요구로 인해 칼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신분 정보를 받고 있다”라며 “베이징 외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최근 중국에서 칼부림, 차량 돌진 등 각종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칼 구매 실명제를 비롯해 각종 도시 보안 조치를 실시하며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임을 자부해 왔다. 하지만 흉기 난동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러한 조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칼 구매 실명제, 온라인은 적용 안 돼… 지하철 보안검색도 허울뿐

칼 구매 실명제는 중국이 도시 안전을 위해 도입한 대표적 조치 중 하나다. 베이징시정부는 칼과 같은 흉기로 인한 범죄를 막겠다며 2012년부터 칼 구매 실명제를 실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처음으로 칼 구매 실명제가 임시 도입됐었고, 2009년 9월 건국 60주년 기념일 전후로도 같은 조치가 시행됐다가 이때부터 상설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상하이가 2010년 세계박람회, 광둥성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1년 선전 유니버시아드 당시 각각 일시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에서 판매 중인 식칼들. 실명 인증 없이 30분이면 받아볼 수 있다./메이퇀 캡처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 메이퇀에서 판매 중인 식칼들. 실명 인증 없이 30분이면 받아볼 수 있다./메이퇀 캡처

칼 구매 실명제로 인해 시민들에게 칼 구매와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지만, 허점도 많다. 가장 큰 구멍은 온라인이다. 온라인에서는 칼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데다, 실명 인증도 필요없다. 실제 이날 중국 최대 배달 플랫폼인 메이퇀에서 식칼을 검색하니, 30분 안에 길이 31cm짜리 중식도를 받아볼 수 있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 징둥닷컴 등에서도 식칼을 판매하고 있어 실명 인증 없이 2~3일이면 수령이 가능하다. 중국인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오프라인 매장에만 적용되는 칼 구매 실명제는 범죄를 막는 덴 크게 소용이 없는 셈이다.

도입 당시에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비판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중국 관영 매체 베이징청년보 산하의 파즈완바오는 2012년 1월 29일자 기사에서 “식칼 말고도 술병이나 가위, 돌도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는데 (이 물건들을 구매할 땐) 굳이 실명 등록이 필요하지 않다”라며 “칼 구매 실명제는 도입 취지를 실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민의 사생활과 개인 재산 안전에도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또 다른 대표적 도시 안전 조치인 지하철 보안검색 역시 허울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중국 베이징 등 대도시 지하철은 역 입구에서 신체와 소지품에 대한 보안 검색을 거쳐야 탑승이 가능하다. 베이징지하철에 따르면, 지난 8일 현재 1164개의 지하철 보안 검색대가 운영되고 있다. 규정상 총기류 및 폭발물, 인화성 물질, 날 길이가 150mm를 초과하는 칼 등은 소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기자는 이케아에서 구매한 16cm짜리 칼을 가방에 넣은 상태로도 지하철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출근 시간에 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보안검색대에서 짐 검사를 받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데, 보안 요원들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18일 중국 베이징 지하철 타이양궁역 보안검색대./이윤정 기자
18일 중국 베이징 지하철 타이양궁역 보안검색대./이윤정 기자

그동안 중국은 촘촘한 폐쇄회로TV(CCTV)와 엄격한 사회 통제·관리로 폭력 범죄 발생 빈도가 비교적 낮은 곳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9월 상하이 대형마트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고, 지난달에는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 5명이 다쳤다. 지난 11일 남부 광둥성 주하이시에서 차량 돌진 사건이 발생, 7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중국 사회가 충격에 빠진 가운데, 불과 닷새 만인 지난 16일 동부 장쑤성 이싱시의 한 대학에서 대학생이 무차별 칼부림을 벌여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도시 안전을 위해 통제 조치를 강화할지 주목된다. 지난 1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주하이 차량 돌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건) 성질이 지극히 악질”이라며 “모든 지역과 관련 부서는 위험 원인의 예방·통제를 강화하고, 갈등과 분쟁을 적시에 해결하고, 극단적 사례의 발생을 엄중히 차단하고, 전력을 다해 인민 생명 안전과 사회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지시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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