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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망’ 김태양 감독 “우연과 필연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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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미망'의 연출자 김태양 감독.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미망’의 연출자 김태양 감독.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1막, 남자(하성국)는 종로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전 연인 여자(이명하)를 마주친다. 2막,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영화 모더레이터로 일하는 여자는 폐관을 앞둔 서울극장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팀장(박봉준)과 그 길을 다시 걷는다. 3막, 여자와 남자는 서로 알고 지내던 친구의 죽음으로 다시 만난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김태양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미망’은 거창한 사건 대신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사소하지만 변화하는 것(들)에 주목한다. 새롭게 무언가를 짓는 공사 현장과 자주 오가던 익숙한 건물이 공존하는 공간.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전 연인과 걸었던 길은 이제 새로운 사람과 함께 걷는다. 일상적인 풍경은 다양한 변주를 거치면서 사소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김태양 감독은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스케치한다. 

인터뷰 장소였던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30분 일찍 도착했다며 웃었다. 그는 인터뷰 장소로 오면서 여유가 생겨 주변 공간들도 둘러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미망’ 속 지하철역 입구, 횡단보도, 골목길 등 일상적인 공간이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도 그런 감독의 시선 때문일까. 

● ‘우연’에서 시작된, 영화 ‘미망’의 이야기

영화 '미망'(2024) 1막에서 남자 역의 하성국(왼쪽부터)과 여자 역의 이명하.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영화 ‘미망'(2024) 1막에서 남자 역의 하성국(왼쪽부터)과 여자 역의 이명하.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 단편영화 ‘달팽이'(2020)와 ‘서울극장'(2022)에 새롭게 찍은 에피소드를 새로 엮었다. 4년의 제작 과정을 거쳤다. 

“장편으로 기획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단편으로 공개하게 된 케이스다. 독립영화이다 보니 한 번에 제작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파트별로 구성하게 됐다. 1막과 2막을 공개하면서 제작지원을 받자는 전략이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다.” 

‘미망’의 남자 역인 하성국과 여자 역 이명하와는 어떤 인연으로 함께 작업하게 됐나. 

“하성국은 건국대 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이명하는 하성국의 소개로 알게 됐다. 영화 ‘미망’의 1막에서처럼 이명하를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내가 종로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명하가 내 등 뒤에서 툭툭-하며 아는 척했다. 서울극장으로 가던 길인데 새로운 길이라 헷갈린다고 했다. 길을 가면서 나눴던 대화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헤어진 연인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가 ‘우연성’으로 새로운 관계의 발전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오히려 끝난 이후 잔존하는 것들에 쓸쓸히 집중한다. 

“영화에서 오프닝과 엔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사들도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편이다. 오프닝에서 을지로 3가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온 하성국은 “잘못 내렸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타인과 통화하며 길을 걷는 중이다. 그런데 “익숙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과거의 전 연인이었던 이명하가 어깨를 툭툭 친다. 그런 대사의 연결을 통해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인물들이 걷는다는 감각에 집중해 카메라는 인물들과 함께 동행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일상적인 풍경에 특별함이 생긴 것 같다. 

“촬영할 때,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통제하고 찍었다. 걷는 행위에 집중한 것은 인물들의 동선 안에서 배경이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연인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추억은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지 않나. 그 언어나 문장을 이미지적으로 표현할 때 전체적으로 시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경에 실제로 공사 현장들이 보이는데, 추억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 같은 느낌들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괜히 에둘러 표현하는 듯한 그런 식의 대사를 넣었다.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영화는 아니어서 두 캐릭터의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관객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보길 바랐다.”

서울의 종로와 광화문 일대 등 일상적인 공간들을 특별하게 그려낸다. 골목길, 횡단보도 앞, 지하철 입구 등도 늘 만나는 풍경이지만, 어딘가 아련함을 자아낸다. 영화 속에서 공간을 묘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소가 종로와 광화문이라고 생각했다. 궁궐도 있고, 하이테크 빌딩도 있고, 예전에 저잣거리였다가 변한 거리들도 있고, 걷다 보면 비석들도 있다. 과거-현재-미래가 섞여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서울극장 주변과 광화문 일대를 실제 동선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거기 사시는 분들은 영화를 보면서 느끼시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거꾸로 가기도 하고, 동선이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웃음)”

 2막에 등장한 서울극장은 실제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원래는 서울극장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썼다. 서울극장을 직접 섭외해서 찍고 싶었으나 코로나가 시작되며, 촬영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리던 중 폐관 소식을 들었다. 그러면서 서울극장의 폐관 설정이 들어갔고, 시나리오가 수정됐다.”

● 관계의 타이밍, 변해버린 것들을 묘사하는 방법

영화 '미망'의 여자 역 이명하(왼쪽)와 팀장 역 박봉준.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영화 ‘미망’의 여자 역 이명하(왼쪽)와 팀장 역 박봉준.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 어긋난 두 주인공의 타이밍이 헤어진 연인의 심리적 거리감을 드러낸다. 배우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했나.

“세 편에 모두 등장하는 이명하는 시간적 공백이 있어 본인이 생각하는 인물이 각각의 막에서 다른 식으로 표현될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잘 맞춰갔다.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이 맞았다. 하성국은 1막과 3막에 등장하는데, 변화의 지점이 큰 캐릭터여서 ‘아예 다른 영화로 생각하고 접근’했다고 하더라. 생각보다 실제 시간의 흐름을 통해 그 자체로 성장하고 외모도 변한 지점이 있어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 것 같다.”

▲ ‘미망’이라는 제목이 영화 안에서 세 가지 방식으로 변주된다. 1막 迷妄(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2막 未忘(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3막 彌望 (멀리 넓게 바라보다)로 구성돼 있다. 세 편을 잇는 요소로 ‘미망’이라는 단어를 중심에 둔 이유가 있나.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박남옥 감독의 1955년작 ‘미망인’을 봤는데 굉장히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1950년대 전쟁 이후 여성상을 표현하는데 당차고 멋있다. 가장 끌렸던 점은 서울 종로라는 배경이었다. 올드카들과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양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미망’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 자체가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보니, 세 가지 뜻이 나오더라.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과 각 파트별의 이야기가 맞닿아 있었다. 한 글자의 모양이나 형태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빛의 삼원색을 표지색으로 정한 이유도 닮아있다. 빨강, 녹색, 파랑으로 각각의 개체색이지만, 합쳐지면 투명하다. ‘미망’이라는 뜻을 가진 다양한 언어가 하나의 형태로 되어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 김태양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제작한 필연적 순간

'미망'에서 여자(이명하)는 문을 닫게 된 극장에서 영화 모더레이터로 일한다.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미망’에서 여자(이명하)는 문을 닫게 된 극장에서 영화 모더레이터로 일한다. 사진제공=영화사 은하수

▲ 1988년생이다. 영화의 어떤 매력에 빠졌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만화도 그리고, 수채화도 그렸다. 원래는 그림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시골에 거주하다 보니 정보가 많이 없었다. 결국 일반계 고등학교에 갔는데, 그 소도시에 영화관이 생겼다. 그 당시 유하 감독의 2006년작 ‘비열한 거리’를 봤다. 남궁민이 감독 역할로 나오는데, ‘비열한 거리’ 속에서 영화 현장이 묘사되더라. 그때부터 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게 됐다. 20대에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 현장에도 나가고 워크숍 수업도 들으면서 너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 ‘미망’으로 장편 데뷔를 하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너무 재능 있고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은 영화를 하지 않는다. 나도 중간에 회사도 다니고 다양한 일을 했다. 

3막의 일부 장면도 이런 부분이 반영되어 있다. 하성국은 그림을 그리고, 백승진은 택시를 몰지 않나. 영화 자체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운이 좋았고 주변인들의 응원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만 단순히 나만의 노력은 아니었다. 영화를 공개하게 된 것에 다행이라는 마음이다.”

▲ 평소 소재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나?

“첫 번째로는 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회고의 과정과. 두 번째는 공간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고는 한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베네치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배경을 찾아보기도 했다. 도시라는 것이 하나의 생물 같다고 생각한다.”

▲ ‘익숙하지만 변해버린’이라는 주제로 공간, 관계, 이야기, 삶에 대해 이야기한 느낌이다. 지나가버린 것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는가. 

“살다 보면, 그 공간에서 멀어질 때가 있지 않나. 시절 인연처럼 멀어지기도 하고. 내게는 영화가 하나의 기록하는 방식이다. 공간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변하는 것들은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이렇게 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편하게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조금씩 애틋해지는 것 같다.”

▲ 차기작 계획은. 

“25분 분량의 ‘나만 아는 춤’이라는 제목의 단편영화가 있다. 영화 ‘미망’에 출연한 강소이가 주연인 무용 영화다. 무용 기초반 선생님이 각자의 이유를 토대로 춤을 추는 사람들과 함께 안무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서울은평청년영화제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아 촬영했고 쇼케이스 형식으로 공개됐다. 내년에 국내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울 이야기’라는 작품도 있다. 어쩌면 ‘미망’의 끝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극중 하성국과 이명하가 8살 딸아이를 두고 이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부의 딸이 주인공이다. 남자의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온다. 이혼을 하기 싫다는 아들을 잡기 위해 손녀와 할머니가 서울을 유랑하는 이야기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나 우디 앨런의 ‘뉴욕스토리’,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스토리’처럼 외지인과 어린아이의 시선을 담아 보여주고 싶다. 시나리오는 작성했고,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준비 단계에 있다. 내년에 촬영하는 게 목표다.” 

맥스무비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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