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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정년이’] 국극이라는 ‘별천지의 세계’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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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정년이는 '춘향전' 방자에서 무대 위에서 빛나는 국극의 왕자로 성장했다. 사진제공=tvN
극중 정년이는 ‘춘향전’ 방자에서 무대 위에서 빛나는 국극의 왕자로 성장했다. 사진제공=tvN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경쟁하고, 연대하는 여성 예인들의 모습을 통해 ‘국극’이라는 다소 낯선 장르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막을 내린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를 통해서다.

지난 17일 종영한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는 70년 전 전성기를 꽃피웠던 여성 국극의 세계를 되살린 작품이다. 극중 정년이(김태리)의 말처럼 이 작품은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상을 생생하게 옮겨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에 원로 국극 배우들이 재조명됐고, 이들의 특별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 정년이의 무대는 끝났지만, 정년이가 불러 일으킨 국극의 무대는 계속된다.

1950년대 성행했던 민족음악극인 국극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아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까지 선보였던 종합공연예술로 인정받으면서 한국전쟁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48년 명창 박록주(1905∼1979) 선생이 ‘여성국악동호회’를 설립해 활동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한때 20여 곳이 넘는 극단이 활약하기도 했지만 텔레비전과 영화가 대중화되면서 지금은 잊힌 장르가 됐다. 하지만 웹툰 ‘정년이’를 통해 국극이 다시 주목받았고, 이를 옮긴 드라마가 국극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12일 처음 방송한 ‘정년이’는 1950년대 중후반 가진 것 없는 시골 소녀 정년이(김태리)가 당대 인기 국극단인 매란국극단에 들어가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 과정에서 정년이는 조력자를 만나고, 라이벌과 경쟁하고 동지와 연대하며 꿈을 펼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년이가 성장할 수록 시청률도 반등했다. 1회 4.8%(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한 시청률이 마지막 회인 17일 방송에서 16.5%까지 올랐다. 최고 기록이다. 인기의 중심에는 국극이라는 ‘생소하지만 두 눈과 귀가 즐거운 무대’를 화면을 통해 완벽하게 전달한 배우들의 힘이 있다. 

김태리를 비롯해 신예은, 정은채, 김윤혜, 우다비, 승희 등 배우들은 총 12회 동안 ‘춘향전’을 시작으로 ‘자명고’ ‘바보와 공주’ 그리고 ‘쌍탑전설’까지 4번의 무대를 극중극(드라마 속 삽입되는 작품)의 형식으로 선보였다. 몰입감 넘치는 배우들의 소리와 연기, 의상, 춤 그리고 무대 미술과 소품 등이 어우러져 실제 국극 무대를 안방으로 옮겨 놓은 듯한 색다른 재미를 안겼다.

'자명고' 속 정은채(오른쪽)와 김윤혜의 모습. 사진제공=tvN
‘자명고’ 속 정은채(오른쪽)와 김윤혜의 모습. 사진제공=tvN

지난달 19일 방송한 3회에서는 ‘춘향전’을, 같은 달 27일 방송한 6회에서는 ‘자명고’의 국극 무대가 펼쳐졌다. 제작진은 ‘춘향전’에 전체 드라마 분량의 3분의1인 20여분을, ‘자명고’에도 15분을 할애하며 시청자들을 국극의 세계로 인도했다. 10회에 방송된 국극 ‘바보와 공주’ 또한 20여분간 펼쳐내며 온달 문옥경(정은채)와 평강 서혜랑(김윤혜)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심도 있게 그렸다.

마지막 회에서는 정년이가 아사달, 아사녀의 전설을 재해석한 국극 ‘쌍탑전설’을 무대에 올렸다. 정년이는 무대 위에서 아사달을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연기로 대미를 장식했고, ‘국극계 황태자’인 옥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왕자’로 우뚝 섰다. 정년이는 ‘춘향전’의 방자를 시작으로 ‘자명고’ 속 단역 군졸과 대타 구슬아기 그리고 ‘쌍탑전설’의 주인공까지 성장형 주인공답게 국극 무대에서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배우와 제작진은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시키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공을 들이며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아니라 국극 자체로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정년이’를 연출한 정지인 PD는 “매란국극단의 일상은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무대에서의 국극만큼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면서 “어떻게 해야 현대극과 차별화되는 고전극, 악극의 형태를 취할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배우들 역시 완벽한 국극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소리와 춤, 검술 등을 연마했다. 정년 역할로 극을 이끈 김태리는 무려 3년간 소리 연습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신예은도 1년 넘게 실력을 갈고닦았다.

‘정년이’ 측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 및 SNS 내에서 ‘국극’ 언급량이 9월 600여건에서 10월 3000여건으로 한 달 사이 5배 급증했다. 실제 공연 예술계에도 훈풍을 불러왔다. 국가유산진흥원 주최로 12월3일부터 특별공연 ‘한국 최초 여성 오페라, 전설이 된 그녀들’이 열린다.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에는 국극의 원로배우 홍성덕·이옥천·허숙자·이미자·남덕봉 등이 참여한다. 1부는 국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 콘서트로, 2부는 백제의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가 고난 끝에 부부의 연은 맺는 내용의 공연 ‘선화공주’로 구성된다.

‘선화공주’에 참여하는 서울시 무형유산 판소리 보유자인 이옥천 옥당국악국극보존회 대표는 “‘정년이’이 덕분에 국극이 더 알려지게 돼 고맙다”며 “여자가 남자를 연기해도 멋있고 빠져들 수 있는 것이 국극의 매력”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종영한 '정년이'에서 아사달을 연기한 정년이(김태리)의 모습. 사진제공=tvN
지난 17일 종영한 ‘정년이’에서 아사달을 연기한 정년이(김태리)의 모습. 사진제공=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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