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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 시위가 던진 질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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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학교에 쓴 문구다. 치열함이 묻어난다. 이 치열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먼저 학교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견을 전혀 받지 않고 학교 측에서 논의가 오갔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측의 해명에 따르면, 학교 발전계획을 논의하면서 일부 교직원이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언급한 정도라고 한다. 확정된 계획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 온라인 공간에서 알려졌다. 학교 측이 학생들과 협의나 동의도 없이 여자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폐기할까 놀란 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학생들은 현재 남녀공학 전환 반대, 총장직선제 등을 촉구하며 수업거부 등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두 번째는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여대는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배우고 여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에서 항의하며 교문을 막고 서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에서 항의하며 교문을 막고 서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사실 대학은 애초 출발부터 남자대학이었다. 남자가 인간의 표준이었기에 특별히 남자대학이라고 명명하지 않아도 대학생의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근대인권선언의 효시라 부르는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진 인권선언에서 인간의 표준이 ‘재산 있는 남성 백인’이었듯이 말이다. 실제 연세대학교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해 남녀공학이 된 것은 1946년이었다.

여자 대학이 만들어진 것은 성차별로 고등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와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여성 노동자 양성이 필요했던 정부·기업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여자 대학이 늘어났다. 필자가 어렸을 때도 가난한 집안의 여성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대학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나, 여성들의 대학 입학은 꾸준히 늘어 1980년 대학 입학자 중 여학생 비율 27.4%에서 1985년 33.2%, 1990년 39.3%, 1995년 42.5%, 2000년 45.7%, 2010년 47.1%, 2018년 49.8%, 2019년 49.3%, 2020년 49.1%로 상승했다.

저출생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고 고등교육의 성별 격차가 좁혀진 데다, 1987년 졸업정원제 폐지와 1995년 대학 설립 기준 완화로 대학의 수가 급증하면서 대학 간 경쟁이 심해지자 여대를 공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1996년 상명여대가 상명대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부산여자 대학도 1997년 남녀공학으로 바꾸면서 신라대학교로 개명했고, 그 외에도 가톨릭대, 대구가톨릭대 등도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현재 4년제 중 여자 대학은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등 단 7개 학교다.

대부분의 여자 대학 측이 밝힌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이유는 ‘신입생 모집과 취업 등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여대에 이공계열이 별로 없어 취업률이 낮고 그렇다 보니 정부 예산을 받는 데 불리해졌다는 것이 대학들의 판단이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여대들이 남녀공학으로 전환을 꺼내는 이유다. 2015년엔 덕성여대가, 2018년에는 성신여대가 공공연하게 남녀공학 전환을 언급한 적이 있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된 학내 시위가 계속된 14일 오전 학생들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학교는 우리를 꺾을 수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동덕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된 학내 시위가 계속된 14일 오전 학생들이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에서 ‘학교는 우리를 꺾을 수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여대가 필요한 이유

지금 시대 한국에서 여대는 왜 필요한가? 학교 측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여대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여대는 여학생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은 성평등한지 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여전히 성차별적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초중고만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하대 여대생 성폭력 사건이나 서울대 동문 딥페이크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2019년 대전지역 대학생들의 성차별 경험에 대한 설문에서 여학생들의 71.8%가 외모나 가사노동 분담, 여성스러움의 강요 등의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교수나 동료 학생의 성폭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성차별이 덜한 교육을 받고, 여성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도 있다.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은 대학생활을 하며 다양한 배제를 경험하고 리더십을 배우기 어렵다. 성차별적 인식은 여성들을 남성의 하위 파트너로만 인식하게 하고 여성은 보조자로서의 위치에만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남녀공학에서는 학생회장의 대다수는 남학생이다. 학생회라는 학생자치기구에서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이 등장한 것은 2000년 연세대였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도 학생회장은 남자, 부학생회장은 여성이었다. 아직도 많은 남녀공학에서 여성 총학생회장은 드물다. 2016년 ‘중대신문’이 분석한 단과대 회장단 성비에서 여성이 30%대를 돌파했다는 기사를 낼 정도다. 단과대 학생회장이든 과 학생회장이든 남성이 월등히 많다. 여전히 여성들은 학교에서 리더십을 익히고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동료 남학생이 여전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거나 자신보다 낮은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나임윤경 교수는 얼마 전 열린 ‘여성혐오와 여자 대학, 그 변화의 시작’이라는 포럼에서 남녀공학 여성과 여대 여성이라는 비교를 통해 여대의 존재 의미에 대해 말했다. 공학에서 연애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으며, 선후배 간의 권력 이동의 경험을 배울 기회가 적다고 지적했다.

물론 나임 교수가 2013년 발표한 「한국 여자 대학교의 존재 이유: 남녀공학의 대안 혹은 경쟁자」(이하 여대의 존재 이유) 글에서도 썼듯이, 한국에서 여자 대학은 “한국에서는 ‘이성애 남성들의 로망’이라는 가부장적 합의와 이미지, 그리고 여성지도자 양성 공간이라는 여성주의적 의도가 모두 존재”한다.

나임 교수는 무엇보다 남녀공학에선 학교 자원을 여학생에게 사용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여대에 재학 중인 남녀공학에 비해 여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했다. 얼마 전 남녀공학 전환 반대 투쟁 중인 동덕여대생의 인터뷰와 맞닿아 있다. 학생은 “여대에서 배우고 여성으로서 주체가 돼본 경험이 여성혐오적인 현시대를 이겨내는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여대에 들어온 이유를 밝혔다.

나임 교수는 여대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단순한 분리주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논문에서도 ‘여대 졸업생은 남녀공학대학 졸업생과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둘 간의 차이가 없다면 여대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위 글에서도 공학에서 안에서 여성들만을 따로 교육했을 때의 여성들의 성취와 변화를 지적했다. 그는 “여학생들은 여학생들이 가부장적 규범에 대한 긴박을 해체하고, 자신의 여성주의적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며, 여성 차별에 대항할 수 있는 여성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등 유익한 경험”을 보고한 연구를 예를 들었다.

또한 그는 미국의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 미국의 7개 여대를 일컫는 말, 현재는 5개)처럼 여대 간의 연대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여성학의 메카인 이대에서 다른 학교와 여성학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식의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벗어둔 과잠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놓여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벗어둔 과잠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놓여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여성, 인간의 평등한 재구성을 향해

여대는 여대생들의 성장과 성취만으로 충분할까. 더구나 대학평가로 여대의 정원 수를 줄인 현실에서 여대를 졸업하는 학생 수는 많지 않다. 또한 단순히 남녀공학에 비해 성폭력·성차별의 가능성이 적어 안전한 공간이라는 것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여대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대학 사회와 한국 사회에서 여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정의하고 재구성하는 고민을 할 때다.

여대가 평등과 다양성의 가치를 만드는 장소로 거듭나면 좋겠다. 미국의 여대들은 남녀공학과 달리 여성으로서의 젠더를 전면에 내세우는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교과과정을 강조한다. 미국의 다섯 개 여자 대학은 젠더연구를 전공으로 하는 학과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방향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세븐시스터지의 한 대학은 학생들이 더 많이 교수들과 만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그에 비해 한국의 여대는 성별이분법의 편견이 반영된 학과인 아동학과나 유아교육학과 등이 많다. 여자는 간호대, 남자는 의대와 같은 구도도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여대의 변화에서 꼭 필요한 것은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성별’에 대한 이해와 수용일 것이다. 여성과 인간의 정의가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확대된 것을 상기해야 한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거부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바라는 보는 젠더인식은 낡았을 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다.

여대는 여성, 성소수자들이 자유롭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성평등은 가능하지 않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성애 여성, 레즈비언 여성, 양성애 여성, 인터섹스,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삶과 학문을 나누고 사회의 변화를 나누는 곳! 차이를 가로질러 관계를 맺는 방법을 나누고 배우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 차이는 각자의 힘을 벼려내는 강력한 연결의 힘이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여성혐오자들의 ‘여대=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퀴어라는 말을 전유한 것처럼 여대가 페미니즘으로 재정의되고 재전유하길 바란다. 한국의 여대의 교과과정에 미국처럼 젠더와 페미니즘 관련 학문이 많아진다면, 사회적 소수자의 학술적 진지로서 거듭난다면, 여대의 존재 의미에 대해 더 이상 딴지 거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지금 싸우고 있는 동덕여대의 경우에는 ‘여성과 노동’ ‘여성심리학’ 같은 여성 관련 교양과목이 있다.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란 수식어마저 어색할 정도로 단지 취업 경로로만 여겨지는 현실에서 여대가 학문의 다양성과 페미니즘의 성과를 높이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근조화환을 세워두고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동덕여자대학교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 논의에 반발한 학생들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 근조화환을 세워두고 있다.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확정된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동덕여대생들의 투쟁이 자긍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길

현재 학교 측은 학생들이 “강의실 건물을 무단 점거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했다. 탄압이 예고되는 현실에서 다행히 성신여대와 한양여대 등 다른 여대생들의 연대가 잇따르고 있다. 투쟁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의 투쟁이 여대생의 자긍심을 높이는 투쟁이 되면 좋겠다.

물론 대부분 저항의 밑바탕에는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인 자긍심이 있다. 그 자긍심의 방향이 권력 변화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학교 경영의 변화로 이어지면 좋겠다. 사실 교육공동체라고 하지만 모든 권력은 학교 경영자에게 있다. 2023 FIFA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서 선수에게 동의 없이 입을 맞춘 스페인축구협회장에 대한 투쟁이 축구협회의 인사를 교체하고 여성 축구선수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운영 등 권력을 변화시킨 것처럼 되면 좋겠다.

넷플릭스 다큐영화 「이제 다 끝났다: 스페인 축구를 뒤흔든 키스」를 보면, 월드컵 시상식 이전에도 성차별의 관행은 오래됐다. 감독이나 축구협회장은 여자축구에 관심도 지원도 하지 않았다. “딸 같아서”라는 말을 감독이 할 정도로 여자축구 선수들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악세서리 정도로 취급했다.

여자축구대표 선수들은 다른 나라 대표팀에 비해 형편없는 지원을 받으며 선수보다 실력 없는 감독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축구협회장의 강제 키스 사건이 발생한 후 여자축구선수들이 힘을 모아 함께 싸우면서 스페인여성축구계의 변화가 일어났다. 스페인여자축구대표단의 싸움으로 이룬 변화처럼, 동덕여대생들의 투쟁이 교육공동체의 변화, 학교에서의 권력관계를 재정의하고 학교의 경영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4일 이기인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동덕여대생의 시위에 대해 “비문명의 끝”, “망상적 테러행위”라고 비난했다. 정치인의 공개 발언이니 여성혐오적 공격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에 따라 동덕여대생들에 대한 학교 측의 탄압은 가시화될 수 있다. 변화는 고통을 동반한다. 동시에 더 많은 가능성을 낳는다. 그녀들의 투쟁을 응원하며 동덕여대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투쟁이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분리주의 공간이 아니라 평등과 다양성의 여대 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더 평등한 다양성의 장소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동덕여대생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프레시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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