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올해 한국 정부에 여성가족부 폐지 방안 등 퇴행적 여성 정책을 수정하라고 권고한 가운데,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려는 정부 입장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지 않고서는 위원회의 권고가 이행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14일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주최로 서울 중구 모처에서 진행된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제9차 최종 견해 이행 방안 토론회’에서 “성 격차 지수 146개국 중 10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7년째 압도적 1위인 성별임금격차 등 국제적 통계로 증명된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위원회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국가를 대상으로 협약 이행 상황을 심의하는데, 가입국은 위원회에 협약 이행 현황을 담은 국가보고서를 4년마다 제출한다. 한국은 1984년 12월 가입했으며, 지난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홉 번째 심의를 받았다.
위원회는 6월에는 최종 견해를 통해 ‘한국 여성에 대한 퇴보적인 정책’을 우려하며 여가부 장관에 대한 조속한 임명, 여가부 폐지 조항 철회 등을 권고했다. 아울러 비동의 강간죄 도입,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 계획 확립, 위안부 문제 해결 등에 대해서도 권고했다.
“위원회는 당사국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15525호 내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우려와 함께 주목한다. 위원회는 이로 인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전담하는 법적 정책적 기틀의 파편화와 우선순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또한 여성가족부 폐지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자원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전 최종 견해로부터 후퇴한 것이라는 점을 우려와 함께 주목한다. 위원회는 더 나아가 여성가족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한 점, 여성가족부 예산의 급격한 삭감, 여성에 대한 퇴보적인 정책을 우려한다. 더불어 위원회는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국가 계획 및 전략의 설계와 이행에 있어 여성 단체의 제한적인 참여에 대해 우려한다.”-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최종 견해
오 사무처장은 “이번 심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현재 한국의 심각한 여성 차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성평등 정책 전반의 큰 전환이 필요함을 본 심의 전 과정과 최종 견해 전반에서 상기시켰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위원회의 여가부 장관 조속 임명에 대한 권고에 대해 여가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서 ‘이것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 유엔 국제기구에서 입장을 밝힌 사안은 아니’라고 그게 답변을 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현 정부의 정책, 즉 여성을 아예 삭제하고 구조적인 성차별을 부정하려는 이러한 지금 입장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지 않고서는 (위원회의) 최종 견해는 절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규선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위원회 심의 당시 여가부를 비롯한 정부 대표단의 답변 내용을 지적하며 “부끄러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심의 당시 위원회 측은 정부 대표단에 여가부 폐지 계획 철회 의향,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이유 등을 물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기능을 축소하지 않는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등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남 상임위원은 “여성차별철폐협약 심의 때 너무 놀랐다. 정부가 준비가 덜 돼 있었다. 그래서 심의 도중 위원장이 한국 정부 대표 답변에 대해서 ‘질문의 내용과 다른 답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그런 장면은 정말 처음 봤기 때문에 너무 좀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어 “9차 심의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든지 임신 중지에 관한 것 등은 (권고가) 반복돼 왔다”며 “30년 동안 우리는 답보 상태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후퇴한 대목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한 발자국 나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굉장히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시윤 여가부 국제협력담당관실 사무관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양성평등위원회에 보고해서 국가 이행 계획이 확정되면 이후 지속적으로 이행 여부를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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