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중국의 과잉 생산 억제를 겨냥한 서방의 압박이 유럽연합(EU)으로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진해 온 한국으로선 전 세계를 휩쓰는 보호무역 기조가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등 단일 경제에만 의존하는 관행을 끊고, 수출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선비즈는 한국의 주요 수출입국을 중심으로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한국 기업이 어떻게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새로운 수출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분석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한국과 필리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를 꾸준히 확장해 온 오랜 파트너다. 한국은 필리핀의 주요 수출 시장이자 투자국으로, 필리핀은 한국 기업에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무역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최근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상호 무역 장벽을 낮추고, 경제 성장을 촉진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차메인 미뇽 S. 얄롱 필리핀 무역투자센터(PTIC) 상무관은 지난 9월 필리핀 대사관에서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필리핀과 한국이 서로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로서 상호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PTIC는 필리핀 산업통상자원부(DTI)를 대표해 필리핀과 한국 간 경제 관계 강화를 목표로 무역, 투자, 정책 협력 증진, 상업 정보 수집, 재외 필리핀 투자자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 수교 후 양국 무역 규모 확대
필리핀과 한국은 1949년 공식 외교 관계 수교 이후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왔다. 얄롱 상무관은 양국이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넘어, 국민 간의 친밀한 교류가 양국 관계를 더 깊고 의미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필리핀에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전체의 25% 이상인 140만명을 넘었다”면서 “한국은 필리핀에 있어 중요한 경제 파트너일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으로 인식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필리핀 곳곳에 한인 타운이 만들어지고 있고, 한국 기업들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며 현지 경제에도 기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양국의 무역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양국 간 무역 규모는 120억 달러(약 16조8120억원)를 돌파했으며 한국은 필리핀의 5대 무역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필리핀 무역투자센터에 따르면 필리핀의 대(對) 한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13.07% 증가했다. 특히 전기 및 전자 기기, 반도체, 디지털 집적 회로 등 주요 품목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필리핀산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포함한 농산물의 대 한국 수출도 증가세였다. 얄롱 상무관은 “필리핀의 대 한국 상위 10개 수출 품목이 전체 수출의 64.71%를 차지하며 한국 시장 내에서 필리핀산 제품의 비중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한국은 지난해 필리핀의 221개 수입국 중 4위를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 韓·필리핀 FTA 비준과 기대
얄롱 상무관은 필리핀과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으로 향후 양국의 성장이 더 기대된다고 했다. 지난해 9월 필리핀 상원은 필리핀과 한국의 FTA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한국 국회 비준 절차가 완료되면 양국은 본격적인 FTA 시행에 돌입할 예정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8일 한국과 필리핀 간 FTA 비준 동의안을 의결했다. 비준안은 이르면 13일 외통위 전체 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얄롱 상무관은 “FTA 발효로 양국 간 무역과 투자 흐름이 증가하고, 경제 및 기술 협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FTA 시행 시 필리핀산 바나나와 가공 파인애플을 포함한 과일이 한국 시장에 더 쉽게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며 “필리핀의 주요 수출품에 대해 98%의 무관세 혜택이 제공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무역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필리핀의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94.8%의 품목을, 필리핀은 96.5%의 품목을 개방해 수입 관세를 철폐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필리핀 국빈 방문 당시 “한·필리핀 FTA가 발효되면 무역과 투자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FTA에 따른 경제 및 기술 협력 강화는 양국의 상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필리핀과 한국의 FTA에는 중소기업 지원, 전기차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계획이 포함돼 있다. 얄롱 사무관은 “협정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재원 확보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양국이 함께 만들어갈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 “韓 기업들의 ‘전략적 접근’ 필요”
최근 들어 많은 한국 기업이 필리핀 시장 진출을 원하고 있다. 얄롱 상무관은 한국 기업이 원활하게 필리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신 법적 규정을 파악하고,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필리핀 PTIC와 협력해야 한다고 했다. 얄롱 상무관은 “필리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소통이 활발한 시장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온라인 마케팅과 현지화된 콘텐츠 전략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얄롱 상무관은 아테네오데마닐라 대학교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한 뒤 필리핀 국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9월 부임한 얄롱 상무관은 이전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필리핀 PTIC 상무관으로 일하며 중동과 아프리카, 러시아 지역의 DTI 대표 역할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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