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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5%] ‘미망’, 변화하는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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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망'에서 남자 역의 하성국(왼쪽부터)과 여자 역의 이명하가 횡단보도 앞에서 서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영화 ‘미망’에서 남자 역의 하성국(왼쪽부터)과 여자 역의 이명하가 횡단보도 앞에서 서로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김태양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미망'(2024)은 서울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변해가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해 세밀하게 묘사하는 영화다. 단편영화 ‘소중한 머리카락'(2011)으로 데뷔한 김태양 감독은 ‘달팽이'(2020), ‘서울극장'(2022)을 엮고 새롭게 만든 ‘소우’를 엮어 3막 형식의 ‘미망’을 완성했다. 3막으로 분리된 영화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1막 미망(迷妄)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2막 미망(未忘)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3막 미망(彌望)은 ‘멀리 넓게 바라보다’라는 부제를 달고 챕터를 구분한다.

“잘못 내렸어요.”

1막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남자(하성국)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는데, 지하철 을지로3가역 출구로 빠져나오는 사람들 틈에 섞여 보이지 않는다. 그는 거리 곳곳에 보이는 표지판과 풍경을 설명하며 목적지를 향해 간다. 한창 공사 중인 낯선 거리는 어느새 남자에게 익숙한 길로 바뀐다. “여기가 이렇게 연결되네요. 이젠 다 아는 길이에요. 맨날 다니는 길”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뒤편에서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이명하)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영화 모더레이터로 일하는 여자는 목적지인 종로3가 서울극장에 도착하기 전에 골목길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가자 말한다. 여자는 커다란 가방을 뒤적거리지만, 담배를 찾지 못한다. 남자는 급하게 담배를 사러 가고, 동시에 여자는 자신의 담배를 발견한다. 남자가 돌아왔을 때, 이미 여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남자는 가게 주인이 자리를 비워 담배를 사지 못했다.

여자와 헤어진 남자는 다시 그 골목길로 들어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거리를 되돌아가 여자친구(정수지)를 만난 남자는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직전 만났던 여자가 스쳐 지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헤어진 남자와 여자는 3막에서 서로가 아는 친구의 위패를 모시는 절에서 다시 만나 어색한 인사와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대화는 본질은 소거된 채, 빙빙 돌려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흘러가는 것과 멈춰 있는 것이 함께 자리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서울 도심의 낯익은 거리와 풍경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때론 잘못 들어서는 길목. 과거 인연과 헤어지지만 또 다시 우연으로 이어지는 만남. 계절의 흐름만큼이나 먼 거리감. 그럴 때마다 도드라지는 ‘어긋난 타이밍’. 이 모든 것은 늘 변해가며 사라지고 또 다시 생겨난다. 그래서 삶은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미망(迷妄)이기도 하며,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는 미망(未忘)이 된다.

영화 모더레이터로 근무하는 여자(이명하)가 1955년 박남옥 감독의 영화 '미망인'의 씨네토크를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영화 모더레이터로 근무하는 여자(이명하)가 1955년 박남옥 감독의 영화 ‘미망인’의 씨네토크를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미망’의 대부분 장면들은 공간을 걷는 사람들을 포착한다. 인물들이 걷는 배경 뒤에는 익숙한 것들과 변화하는 것들이 공존한다. 1막에서 여자와 남자가 만난 거리에는 새로운 것을 짓는 공사 현장과 기존의 건물들이 나란히 자리한다. 

2막에서 영화 모더레이터인 여자는 이제 곧 문을 닫는 서울극장에서 실제로 1955년에 개봉한 영화 ‘미망인'(감독 박남옥)의 해설을 한다. 영화는 일부 필름이 유실됐다. 여자는 관객들에게 “누군가는 또 이 공간에서 영화를 볼 거예요. 언젠가 사라지더라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가길 바라겠습니다”고 말한다. 

사실 여자의 직업인 영화 모더레이터와 남자의 직업인 화가는 순간을 고정해 영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다. 특히 남자가 처음에는 공간이라는 오랜 시간 변하지 않던 것들을 그리다가 사람에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영화는 변하는 것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을 동시에 담으려 한 것이 아닐까. 

3막에서 그려진 남자와 여자가 과거 자주 방문했던 공간 소우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지만,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변했다. 옛날처럼 남자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지만, 여자는 바깥에 머무르며 현재의 남자친구에게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거 아니라고’의 가사 속 “아름다웠던 사람아 그리운 나의 계절아”처럼 두 사람은 이미 바래진 것들을 추억할 수 있을 뿐이다. 

“12시에서 12시”(시계 초침의 움직임)라는 남자의 대사처럼 삶이란 계속 순환하고 또 연결된다. 어쩌면 변화하는 것들 앞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기억하고 또 놓아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 그래서 삶은 ‘멀리 넓게 바라보’게 되는 미망(彌望)이기도 하다.

3막 미망(彌望) '멀리 넓게 바라보다'에서 남자(하성국)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거 아니라고'를 부르고 있다. (위쪽 사진), 여자(이명하)는 남자친구의 전화에 바깥으로 나왔고, 남자(하성국)의 노래가 들려온다. (아래쪽 사진)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3막 미망(彌望) ‘멀리 넓게 바라보다’에서 남자(하성국)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거 아니라고’를 부르고 있다. (위쪽 사진), 여자(이명하)는 남자친구의 전화에 바깥으로 나왔고, 남자(하성국)의 노래가 들려온다. (아래쪽 사진)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감독 : 김태양 / 제작 : 영화사 은하수 /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 개봉 : 11월20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92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

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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