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고개를 숙였다. 국정 지지율 난맥상을 비롯해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가운데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모양새는 갖췄지만 아쉬움도 역력하다. 각종 의혹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견지한 것은 물론 재발 방지 관련한 대책에 대해서도 다소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으면서다.
윤 대통령은 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년 반 동안 국민께서 맡기신 일을 어떻게든 더 잘해 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며 “국민들 보시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생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리기도 했고 제 주변의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염려를 드리기도 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부터 드린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의 국정개입 의혹이 연일 정치권을 강타하고 국정 지지율도 하락세를 그리는 상황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이전과 차이를 보였다. 국민들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질문을 받고 상세히 설명하겠다고 한 만큼 담화보다는 기자들과 질의응답에 초점을 맞췄다. 집무실에서 담화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던 방식도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이 열리는 브리핑실에서 직접 ‘사과’의 메시지를 내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힘은 “진솔한 생각을 들을 수 있던 의미 있는 회견”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의혹에 대한 구체적 사과보다는 ‘해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면서다. 김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한 답변에선 이러한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더 신중하게 매사에 처신해야 하는데 국민들한테 걱정을 끼친 것은 무조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대통령 부인이)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길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내부의 이른바 ‘김건희 여사 라인’ 존재를 묻는 질문에는 “김건희 라인이라고 하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린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를 잘할 수 있게 조언하는 것을 마치 국정농단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맞지 않다”고도 했다. 김 여사의 ‘활동 중단’ 목소리에 대해선 “국익 활동상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저와 제 참모들이 판단하는 일을 제외하곤 사실상 중단해 왔다”고 답했다.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은 ‘반대’의 뜻을 밝혔다.
◇ 애매모호한 사과에 비판대
의혹과 별개로 김 여사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 있다”고 한 것은 일례다. 김 여사가 외부 인사들과 개인적 연락을 하면서 여러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순진한 면도 있다”고 답했다. 과거 선거 과정에서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휴대폰으로 온 연락에 일일이 답장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 윤 대통령 본인부터 개인 휴대폰을 유지했던 탓이 크다는 취지의 언급도 나왔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정치권의 화두인 명태균씨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 전화를 받았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부적절한 일을 한 적 없고 감출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해선 “명씨에게 무슨 여론조사를 해달라는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했고 ‘공천 개입’ 논란에 대해선 “공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다만 했다면 당에서 이미 정해진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당장 이러한 애매모호한 입장 표명은 즉각 비판의 대상이 됐다. 민주당은 이날 “공허한 사과 이후 모든 의혹을 뭉겠다”며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평가절하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이와 관련한 입장표명에서 “역사상 최악의 담화”라고 쏘아붙였다.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도 “아내와 함께 임기를 마치고 싶어 하는 윤 대통령의 현존 그 자체가 매일매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국가 최대 위헌”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러한 대답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루뭉술한 사과라는 기자의 질문의 “사실과 다른 것도 많다”며 “팩트를 가지고 다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사과할 수 있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지 않은가”며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찌 됐든 처신이 올바르지 못했고 과거의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의 소통 프로토콜이 제대로 안 지켜졌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야기들, 안 해도 될 얘기들을 해서 생긴 것이니까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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