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랑은 도대체 왜 그럴까. 드라마 ‘정년이’가 회를 거듭할수록 서혜랑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둘러싼 의문을 키우고 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정년이를 궁지에 몰아넣는가 하면 이야기의 배경인 매란 국극단의 금고를 털어 모든 재산을 훔치도록 누군가를 사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악역으로만 바라보기도 어렵다. 무턱대고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 극중 최고의 국극 스타라는 설정에 걸맞게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배우 김윤혜의 빼어난 춤사위를 통해 1950년대를 사로잡았던 국극이 2024년의 시청자에게 매력적으로 가닿고 있다.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에는 타이틀롤 김태리부터 국극 스타로 묘사되는 문옥경 역의 정은채, 정년이의 라이벌 허영서로 활약하는 신예은까지 탁월한 소리 실력으로 이야기를 채우는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중 서혜랑 역의 김윤혜도 빼놓을 수 없다.
문옥경과 더불어 당대 국극의 전성기를 만든 스타 서혜랑은 화려한 춤 솜씨를 자랑하면서 ‘춘향전’과 ‘자명고’ ‘바보와 공주’까지 여주인공을 도맡는 설정이다. 김태리와 신예은, 우다비 등 국극단 연구생들로 이뤄진 배우들이 주로 소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다면, 김윤혜가 주력하는 분야는 춤이다.
김태리가 3년간 소리 연습에 몰두한 것처럼 김윤혜 역시 ‘정년이’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이 시작되기 약 1년 전부터 무용 연습에 몰두했다. 드라마에서는 국극단 연습생들의 입을 통해 “춤과 연기는 혜랑 선배가 최고”라는 대사가 반복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김윤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인물을 표현하는 데 완벽을 기했다. 연기와 춤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인물을 표현하고자 전통 한국무용부터 검무와 북춤 등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했다.
그 결과 드라마 초반 시청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은 화려한 검무는 물론 극중 극 형식으로 도입된 국극 ‘자명고’ 무대에서 애절한 북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인공 대부분이 소리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춤으로 국극을 장식하는 김윤혜의 모습은 확실한 차별화를 이룬다.
‘정년이’ 공개를 앞두고 김윤혜는 자신의 역할에 갖는 커다란 자부심을 밝혔다. “춤에 있어서 탁월한 실력을 지닌 혜랑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력을 불어넣어 연기하려고 했다”며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1년 넘는 시간 동안 무용 연습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서혜랑은 문옥경과 더불어 국극의 최고 스타이자, 한편으론 파트너인 문옥경에게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국극단을 위기에 빠트린 횡령 사건에 깊이 관여했으면서도 정작 그가 원한 건 돈이 아닌 문옥경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비밀 장부를 손에 넣는 일이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은 욕망, 어떻게든 친구이자 연모하는 대상을 지키려고 애쓰는 서혜랑의 모습은 이를 연기한 김윤혜의 바람대로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주인공 윤정년을 포함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의 행동에 ‘그럴 만한 이유’를 부여한 제작진의 전략 덕분이기도 하다.
김윤혜는 ‘정년이’ 이전에 참여한 최근 작품들을 통해 도전을 거듭했다. 지난 4월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말의 바보’에서는 지구가 위협받는 혼돈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지키려는 군인 역으로 활약했다. 10대 때 CF모델로 데뷔해 착실하게 연기 경력을 쌓은 덕분에 ‘종말의 바보’에서는 처음으로 군인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였고, 뒤이어 공개한 ‘정년이’를 통해서도 전통 국극의 세계에 흠뻑 빠진 주인공으로 시청자에게 색다른 세계를 선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윤혜가 지난 4월 내놓은 영화 ‘씬’에서도 무용에 도전한 사실이다. ‘씬’은 무용을 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영화 현장에서 춤을 통해 악마가 깨어나면서 버러지는 비극을 다룬 공포 영화다. 김윤혜가 주인공 시영 역으로 활약했다. 당시에도 김윤혜는 춤을 중점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역할을 위해 “하루 4시간씩 기초체력을 기르고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