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47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모양새다. 미국을 제외한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내심 바라지 않은 결과다. 트럼프 당선인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관세를 부과해 미 현지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최근 드러냈기 때문이다.
후보 활동 당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거 구호를 외친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국에 대해 더 이상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반도체 업계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특히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정면 비판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10월 25일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매겨, (한국·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제 발로 들어와 공장을 짓게 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도체법은 반도체 기업에 생산 보조금 390억달러와 연구개발(R&D) 지원금 132억달러 등 5년간 총 527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보조금 지원 약속을 믿고 미국 내 수십조원을 투입하는 공장 건설에 착수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보조금이 줄어들거나 지급 조건이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악의 경우 보조금 백지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440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고 64억달러의 보조금, SK하이닉스는 투자금 38억7000만달러, 보조금 4억5000만달러를 약속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미 4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미 정부 보조금은 건설 진척에 따라 지급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들어온 보조금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2기에서 보조금을 백지화하면 기업들은 투자를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미국 투자 계획에 따라 다른 사업 계획도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이런 상황은 더 치명적이다.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트럼프 2기 출범 시 미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높이거나 동맹국 업체에 대한 요구를 확대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대로 국내 업체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한기평은 트럼프 2기에서 중국에 대한 고성능 메모리 제품 수출 통제를 실시하면 국내 기업이 보유한 중국 생산설비 운영과 대중 수출 판매 기반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에도 일방적인 반도체법 철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변화하는 정책에 따른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한 기업이고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다”며 “그게 지금 대만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TSMC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7월 16일 나온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도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며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하며 우리는 보험사나 마찬가지다”라고 대만을 비난했다.
다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중인 첫 번째 파운드리 공장을 이미 가동 중이다. 현지 공장을 교두보로 삼아 미국 빅테크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행보로 리스크 해소에 나설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최근 대만 정부도 이같은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장관급)은 미국 관세 인상에 따른 TSMC 영향과 관련한 여당 입법위원의 질의에 “대만 기업이 미국 업체의 ODM(주문자 위탁 생산) 서비스를 주로 제공하므로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만이 미국의 기술 제한을 따르고 있어 우리(대만)가 이점을 누릴 기회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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