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는 계속되는 지옥행 고지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세상, 갑작스레 부활한 새진리회 정진수(김성철 분) 의장과 박정자(김신록 분)를 둘러싸고 소도의 민혜진(김현주 분) 변호사와 새진리회, 화살촉 세력이 새롭게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정점을 보여주며 2021년 골든 토마토 베스트 호러 시리즈 부문 1위에 등극하는 것은 물론, 공개 열흘 만에 1억1,000만 시청 시간을 기록, 93개국 전 세계 시청자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지옥’의 두 번째 이야기로 공개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앞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주목받는 드라마 시리즈를 미리 선보이는 섹션인 ‘온 스크린’에 선정, 일부 회차가 먼저 부산에서 공개돼 좋은 반응을 얻었던 ‘지옥’ 시즌2는 지난달 25일 졍식 공개 이후 3일 만에 17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 국내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는 물론, 글로벌 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5위에 등극하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지옥’ 시즌2는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한층 진화한 스토리,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 등으로 더욱 생생한 세계관을 펼쳐낸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천사의 고지와 시연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부활자와 이를 둘러싼 소도와 새진리회, 화살촉 그리고 정부 간의 갈등을 담아 예측불가한 재미를 안김과 동시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최근 연상호 감독을 만나 ‘지옥’ 시즌2의 출발부터 연출 중점 포인트,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당 기사에는 시리즈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시즌2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크게 생각한 것은 정진수와 박정자의 부활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들의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정진수의 정체성은 공포다. 20년 전에 고지를 받은 공포. 그 공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단죄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시즌2는 그런 정진수의 희망이 이뤄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정진수가 겪은 지옥과 시즌2의 내용이 유사한 면이 있거든. 계속 공포에 시달리다 결국 단죄를 하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이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박정자는 고지를 받고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소시민이라는 콘셉트가 있었는데 그 콘셉트와 더불어 닿을 수 없는 그리움, 그리워하기 때문에 닿을 수 없는 지옥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립기 때문에 닿아서는 안되는 것, 그게 박정자의 지옥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는 박정자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닿을 수 없는 것에 닿는 그 순간을 보여주는 이야기기도 했다. 박정자의 부활이라는 것은 그런 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즌2의 전체 내용이 시즌1에 있던 지옥에 관한 이야기, 지옥 그 자체일 수 있을 거다. 그들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각자의 지옥이 다르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상상 속에만 있던 지옥을 구현하는 데 어떤 고민을 했고 감독이 생각하는 지옥은 무엇일까.
“작품과 별개로 지옥이 예측 가능하면 지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많은 종교에서 묘사하는 지옥이라는 게 공간적인 불구덩이라든가 엄청난 고통을 상징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다. 그 고통이 천년이 지나도 똑같은 고통일까. 아무리 어마어마한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천년쯤 지나면 출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지. 정의될 수 있다면 이미 지옥이 아니게 되는 거다. 시즌2에 나오는 수많은 인간들은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발버둥이 필요하다. 정의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는 발버둥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발버둥을 무색하게 하는 예측할 수 없음이 존재하는 것.
시즌1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인간의 자율성이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시즌1은 마지막에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만들어낸 지옥이라는 면도 있거든. 정진수는 불가사의한 이야기, 신의 의도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고 시즌2 이수경이라는 인물도 부활까지 포함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지막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혜진의 ‘이야기를 해줄게’라는 대사가 있고 시청자도 그 이야기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마지막에는 알게 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똑같다. 그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죽고 나서 부활이냐 아니면 부모의 사랑에 의한 생존이냐고 하는 것인데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성에 달린 거다. 어마어마한 종말이 왔을 때도 인간은 그 이야기를 통해 자율성을 갖게 된다는 걸 크게 던져주고 싶었다.”
-고지를 받는 인간, ‘죄’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떤 기준이나 개념을 잡고 시작했나.
“랜덤이냐 법칙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쓰여지고 있지만 신의 관점을 어떻게 인간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인간의 두뇌를 완벽하게 벗어난 상태의 존재다. 우리가 내일을 예측하는 것처럼 1,000년 후를 예측하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인간이 100년 동안 예측한 게 1,000년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무의미할 수 있잖나. 인간은 탐구를 해서 진시를 밝힌다기보다 100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들인 거다. 그런 관점을 작품에 담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다. 민혜진이 자신의 신념에 가까운 소도라는 조직을 파괴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선택은 박정자가 힌트를 준 종말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그 고민을 끝없이 탐구하는 게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인 거다. 그것을 종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혜진의 의지이고 자율성이다.”
-정진수와 박정자만 부활한 이유가 있을까. 부활자의 조건이 있다면.
“두 사람만 부활했다는 생각을 갖고 하진 않았다. ‘모두가 부활한다고 해서 상징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수경의 대사가 있듯 부활자는 더 있지만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신의 관점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게 넓다 보니 100년 후에 부활할 수 있고 1,000년 전에 부활했을 수도 있고 부활자들이 퍼져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부활자의 조건, 이유 자체가 너무너무 궁금하지. 그런데 그 궁금한 이유는 모르면 생기는 불안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것이 왜 궁금한지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순간 인간의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손쓸 수 없는 거대함에 직면했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는 이해할 수 없는 것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감정 때문에 탄생한 거다. 물론 (부활자의 조건을) 말할 순 있다. 하지만 뭐랄까 성룡 영화 끝에 NG 장면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공포 영화에서 귀신이 갑자기 분장을 지우고 다 같이 악수를 하면서 끝나는 것 같은 느낌과 같을 거다.”
-시즌1에서 정진수 역을 맡은 유아인의 자리를 김성철이 대신했다. 유아인과 다른 해석,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연결성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연결성은 의상과 헤어스타일 정도였다. 시즌2 오프닝 신은 시즌1에서 유아인이 보여준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배우도 그렇고 제작진도 그렇고 부담스러운 장면이었는데 연출자로서는 관객에게 천천히 보여주자는 계획도 있었다. 처음부터 ‘빵’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루엣으로 시작해서 천천히 들어가고 싶었다. 오프닝 부분만 설명이 되면 뒤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즌1 속 정진수와 시즌2의 정진수는 너무나 다른 인물이다. 시즌1에서는 상당히 신비로운 인물이었지. 그런데 시즌2에서는 오프닝부터 가정사라든가 이런 것들이 짤막하게 나오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부여된다. 접근 방식부터 달랐다. 만약 유아인이 시즌2를 했다고 하더라도 시즌1 정진수와 달랐을 거다.”
-시즌1와 2에서 정진수가 다르듯 박정자 역시 굉장히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김신록이 그런 박정자의 변화를 잘 담아냈다. 어떻게 봤나.
“김신록이 시즌1 때 리얼리즘에 가까운 연기를 해줬다고 생각한다. 시즌2로 만나면서 김신록에게 ‘시즌1로 잘 됐으니까 시즌2에서 연기적으로 평가가 곤두박질쳐도 본전 아니겠냐’라고 하면서 시즌1와는 다른 과감함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했다. 나도 주문하면서 너무 미안했다. 리얼리즘에 가까운 연기로 엄청난 주목을 받은 배우에게 그것과 먼 연기를 준비해달라고 하는 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옥’ 시즌1을 감독한 사람으로서 그 정도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과감하게 해달라는 말을 할 수 있다고.(웃음) 첫 촬영 때 너무 놀랐다. 너무 과감하게 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과감해도 될까 고민했는데 우리가 예술을 하는 게 단지 잘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더 잘되기보다 새로운 연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김신록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거다.”
-시즌1에서 활약한 익숙한 배우들뿐 아니라 새로운 얼굴들도 많이 등장했다. 캐스팅 기준은 무엇이었나.
“배우를 캐스팅할 때 여러 의도를 한다. 예를 들어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필요할 때가 있다. 시즌1 박정자(김신록 분) 같은 인물이라든가 ‘반도’ 서대위(구교환 분) 같은 인물은 낯선 얼굴이 필요하다. 시즌1 민혜진(김현주 분)은 등장부터 정의로운 사람인데 그런 인물은 실제 대중에게 정의로운 인물로서 신뢰감이 가는 배우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오지원(문근영 분)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오고 바로 죽어버리는데 그에게 평범한 과거가 있을 거라고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면의 이미지를 줌으로써 충격이 배가 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고 그런 측면에서 문근영이 단막극 ‘기억의 해각’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다. 문근영이 저런 연기를 하다니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문근영에게 제안을 했다.”
-오지원, 햇살반 선생님의 등장이 굉장히 강렬했다. 비주얼적으로 어떤 고민을 했나.
“원시적인 종교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일종의 종교의 탄생 같은 느낌. 아주 원초적인 것부터 다시 믿음이 싹튼다는 느낌이 있어야 해서 원시적인 메이크업을 하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원시적 메이크업이라고 하는 게 다른 나라의 예가 워낙 많았다. 이 작품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문화적 전류의 형태로 가져오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의상이나 이런 것들은 한국적인 방식으로 맞춰보자는 이야기가 오갔다.”
-다음 이야기도 구상한 게 있나.
“소설 작가님들과 함께 ‘지옥’ 세계관으로 앤솔러지 소설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옥’ 세계관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다른 창작자가 생각하는 세계관의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 연상호가 생각하는 지옥은 되게 좁은 이야기다. 만약 그 뒤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혼돈 속 정진수의 거짓말 혹은 정진수가 지어낸 이야기가 있고 시즌2 이수경이 만든 거짓말이 있으니 민혜진이 만들어낼 이야기가 궁금하더라. 민혜진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거든. 그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려고 하는 사람,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종류의 이야기일까 궁금증이 있다. 그 이야기가 앞서 만든 이야기와 어떻게 다를까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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