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참 애틋한 브로맨스다. 가족보다 더 깊고, 어쩌면 친구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감정을 ‘전,란’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 박정민은 ‘전,란’ 종려를 만나 더욱 반짝이는 배우로 성장했다. 박찬욱 감독의 선택이 참 탁월하다 느끼게 되는 순간이고, 그래서 더욱 커져갈 박정민의 배우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감독 김상만)은 왜란이 일어난 혼란의 시대,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 종려(박정민)와 그의 몸종 천영(강동원)이 선조(차승원)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되어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아 기대를 모았으며, 강동원과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합을 맞췄다.
박정민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외아들인 종려 역을 맡아 최고의 검술 실력을 가진 노비 천영 역 강동원과 뜨거운 브로맨스를 형성했다. 종려는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대신해 급제에 나선 천영을 면천하고자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실패하고 천영의 증오를 산다. 선조의 최측근 무관으로 선조와 함께 피난을 가던 중 천영이 집을 탈출하면서 자신의 일가족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배신감에 휩싸인다.
매 작품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탁월한 캐릭터 해석력을 보여준 박정민은 이번 ‘전,란’을 통해 첫 사극에 도전했다. 선한 얼굴부터 분노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다양한 감정의 파동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캐릭터의 변화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낸 검술 액션으로 또 한번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박정민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봤다고 했는데 감상이 어땠나?
“‘내가 찍은 영화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감독님께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었고 찡얼거렸던 순간이 죄송했다. 저는 현장에서 편집본을 잘 안 본다. 콘티에 맞게 연기하는 정도인데 편집 속도감이나 음악까지도 이런 계획이 있구나, 이렇게 찍으셨다는 것을 영화 보고 알았다.”
– 찡얼거렸던 순간은 언제인가?
“캐릭터 감정이 어려울 때, 갓 때문에 연기하기 힘들 때다. 앵글 좀 바꿔 달라고 했다. 갓이 불투명하다 보니까 노려봐야 할 때 눈이 안 보인다. 그래서 옆에서 찍어달라고 하는 정도였다.”
– 감정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는데, 김상만 감독님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캐릭터로 생각해보라고 했다고 하더라.
“약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느낌이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 얘기를 해주셨는데, 제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해봤지만 잘 모르겠더라.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촬영 초반에 제가 준비를 하지만, 현장에서는 잘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계산한 것이 틀릴 때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서 찡얼거리며 도움을 받았다.”
– 어떤 지점에서 계산한 것이 틀렸다고 생각했나?
“제 분석의 오류인데, 첫 장면에서 천영이 잡혀들어갔을 때 천영의 손을 찍는다. 저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땐 종려가 나쁜 놈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나쁘게 표현하는지 생각하던 차에 감독님이 “분노가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한 답답함, 슬픈 감정이니까 거기에 집중해보자”라고 촬영 전에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도움을 받아 연기했다.”
– 가장 먼저 캐스팅이 된 거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일장춘몽’이라는 단편 영화 찍을 때였다. ‘헤어질 결심’ 촬영을 2회차 나가서 어리바리하게 하다 왔다. ‘헤어질 결심’ 후시 할 때 단편 영화를 만든다고 하셔서 대본도 안 보고 한다고 했다. 촬영 끝나고 ‘전,란’ 대본을 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하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장춘몽’으로 사극 비주얼 테스트를 한 건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좀 하게 된다. 왜냐면 촬영 마지막 날에 대표님이 선물을 주고 가셔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캐스팅이 됐다. 그런 후에 김신록 선배님이 범동 역으로 캐스팅이 됐다. 원래는 남자 역할이었는데 선배님이 되셔서 놀랐고,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에 한번 더 놀랐고, 또 영화 보고 더 놀랐다. 차승원 선배님, 진선규 형, 강동원 형이 캐스팅되기까지 오래 기다렸다. 캐스팅되고 나서 거의 10개월 정도 기다린 것 같다. ‘더 에이트 쇼’를 찍고 있었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나 하던 차에 강동원 선배님과 얘기 중이라고 해서 “계속 기다리겠다”라고 했다.”
– 강동원 배우가 천영 역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재미있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팬이라서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주변에서 듣는 선배님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언제 만나 뵙나 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천박사’ 촬영 때 잠깐 만났는데 농담으로 “내가 캐스팅되어 싫은 건 아니죠?”라고 물어보시더라. 저는 예전부터 같이 하고 싶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가 나와서 궁금할 건데, 본인은 로미오와 줄리엣 중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나?
“로미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외모가 아니라. 하하. 로미오가 조금 더 적극적이다. 집에 찾아가기도 하고 창문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종려의 적극성이 없었다면 그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 같다.”
– 강동원과 박정민이 멜로영화라는 얘기도 있다. 브로맨스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작품이 나올 때 작품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관객들에게 로맨스로 봐달라고 해서 찍은 건 아니지만, 저희도 촬영하며 몰랐던 건 아닌 것 같다. 가끔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럴 때는 수위 조절을 좀 해가면서 과해석이 되어 오해를 일으킬만한 장면이나 연기는 지양했다. 장난도 많이 쳤다.”
–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건 언제인가?
“천영이 다시 잡혀 왔을 때 얼굴을 붙잡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때 약간 공기가 이상했던 것 같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스태프와 감독님이 약간씩 느꼈다. “느낌이 이상한데?”라면서 선배님과도 농담했던 것 같다.”
– 강동원 배우가 노비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실제 호흡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저는 좋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촬영장에서 구경하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다. 상대가 연기하거나 액션을 하거나 제가 안 나오더라도 대사를 맞춰줄 때 넋 놓고 구경하게 되는 배우가 있는데, 동원 선배님이 그렇다. 궁금하기도 하고, 선배님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있다.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액션은 입이 안 다물어졌다. 제가 살갑지 못해서 좀 죄송한 부분이 있는데, 이번엔 말을 많이 걸었다. 제가 이 정도로 말을 건 거면 진짜 말을 많이 걸었던 건데 아마 선배님은 모르실 거다. 찍으면서 좋았다.”
– 두 배우 사이에 깊은 신뢰감이 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가?
“수년 전에 선배님이 지금 젊은 배우 중 가장 관심 있는 배우가 저라는 얘기를 하셨단 걸 듣고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좋아해 주시는 거 보면 촬영하면서 실망시키지 않은 모양이다. 홍보할 때도 먹을 거 사주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신 거 보면 호감이 있고 촬영하면서 감정이 더 좋아졌던 것 같다. 제가 크게 살갑게 하지 않아도 얘기를 하면 잘 받아주신다. 이번엔 절반은 떨어져 다음엔 같이 길게 끌고 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 다시 만난다면 어떤 역할로 만나고 싶나?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코미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투캅스’ 같은 거 하면 재미있겠다. 서로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달라서 상반된 이미지가 시너지가 있을 것 같다.”
– 사극 말투에 대한 고민도 있었나?
“말투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사극을 볼 때 ‘왜 더 저 말투를 쓰지? 재미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말투를 안 쓰는 사극도 나오더라. 그러다 보니 또 사극 말투가 그립더라. 제가 좋아하는 사극이 ‘남한산성’이다. 선배님들이 단단하고 묵직하게 사극 톤으로 쭉 가신다. 사극은 이 맛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하는 극이기도 하고, 안 해본 것이라 사극 톤 연구를 했다.”
– 액션 같은 경우엔 감정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주안점을 둔 부분은?
“검술은 워낙 선배님이 무림의 고수니까, 그 멋진 동작들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는 따라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했다. 액션 영화를 안 해본 건 아니라서 액션스쿨에서 연습할 때 전에는 하라는 대로 했다. 짜놓으면 시키는 대로 연습했다. 이번엔 감정적인 액션이 중요하니까 ‘제가 이런 걸 할 수 있게 동작을 수정해달라’, ‘조금 더 울분 섞인 액션을 만들어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액션 팀이 만들어주셨다.”
– 검이 너무 무거워서 상대를 때리기도 했다고 했다. 현장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액션은 보통 현장에서 다 바뀐다. 예전부터 연습해도 공간이 다르고 카메라 동선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마다 바뀐다. 동원 선배님과 성일이 형은 예전부터 검술을 배웠던 분들이라 말만 해도 알아서 한다. 저는 따라가야 해서 계속 구석에서 연습해서 하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칼이 너무 무거웠다. 휘두를 때 딱 여기서 끊어줘야 하는데 조금만 더 가면 사람을 치게 된다. 안전 검이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때린 적이 있다. 무게는 야구 배트 두 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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