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해서라면 감옥까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사랑
1960년대 영화계를 휩쓸었던 배우 방성자. 서구적인 외모와 고전적 미모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예상치 못한 사건 하나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1972년 ‘방성자 총기 사건’은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차갑게 얼어붙게 했다.
방성자는 사범학교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우연히 영화감독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10여 년간 톱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당대 미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166cm라는 키에 서구적인 미모,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연상케 하는 매력은 그녀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이런 방성자의 인생은 사랑을 택하면서부터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바로 군복무 중이던 재벌 2세 함 씨와의 만남이었다.
함 씨는 대기업 D산업 창업주의 아들이자 아이까지 있었던 유부남이었지만, 방성자와의 사랑은 점점 깊어졌고 이들은 결국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철저히 비밀이었다. 방성자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기로 한 듯했다.
사랑이 죄는 아니지만…
하지만 그들이 겪게 된 예기치 못한 사건은 1972년 2월, 방성자의 집에 침입한 도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방성자의 집에 숨어든 도둑을 발견한 함 씨는 평소 보관해둔 권총을 꺼내 들었고, 도둑을 향해 발사했다.
사건 직후 경찰 조사에 들어가자 방성자는 자신이 총을 쐈다고 주장하며 연인을 대신해 모든 죄를 짊어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진술에 의문이 생겼고, 결국 총을 쏜 사람이 방성자의 연인 함 씨였음이 밝혀진다. 방성자가 허위 자백을 한 이유는 유부남이었던 함 씨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재판부는 방성자에게 불법 무기 소지와 범인 은닉 혐의를 적용해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 씨에게도 형이 선고되었지만, 그는 항소 후 벌금형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외국으로 떠났다.
그토록 보호하고 싶어 했던 연인이 떠나자 방성자는 큰 상실감에 빠졌고, 연예계를 떠난 후 홀로 남겨져 술과 도박으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1983년, 안타깝게도 방성자는 43세의 나이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방성자의 화려했던 전성기와 쓸쓸한 말년. 그녀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걸었으나, 결국 이 사랑은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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