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선택 하나하나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결정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호함과 신념이 요구된다.
프로스트 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처럼 빙하기를 맞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류는 거대한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시를 꾸리며 인류 문명 재건을 꿈꾼다. 어릴 적부터 ‘살아남기 시리즈’와 ‘노빈손 시리즈’를 정독해 온 입장에서 프로스트 펑크의 세계관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0% 탄핵 위기에 놓인 리더. /인게임 캡처 |
그리고 마치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나오는 리더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이들이 리더에게 의존해 삶을 이어가고 도시를 꾸려 재기를 꿈꾸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고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생존자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의욕에 비해 속도가 따라오지 않았다. 실제 인류 문명이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게임에서도 초반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물론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도시를 발전시키면 되지만 리더의 입장은 다르다.
기념비적인 현질, 이것의 자본의 맛. /인게임 캡처 |
주민들이 죽어가는 걸 볼 수 없기에 선택해야 했다. /인게임 캡처 |
결국 ‘현질’이라는 이름의 외부 자금을 유치했다. 평소 게임에 돈을 거의 지르지 않고 무과금으로 즐기는 편이지만 당장 내 시민들이 굶고,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 게임 출시 기념 1만4천원 패키지와 창고를 늘려주는 약 3천원짜리 아이템을 구매했다.
초반에 비하면 감개무량한 도시 상태. /인게임 캡처 |
큰돈은 아니었지만 ‘현질’의 효과는 대단했다. 창고도 늘리고 각종 기반 시설을 늘려가며 도시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가성비. 역시 예나 지금이나 나라는 돈이 많아야 한다.
현질을 하긴 했지만 현질이 필수적이진 않다. 현질 없이 초반 성장에 답답함을 느낄 수 있으나 한번 궤도에 오른 순간 도시 성장에는 큰 문제가 없다. 본인이 주민들을 정말 사랑하는 리더라면 현질을 고려할 만하다.
사람 수가 몇 명이든 정치는 빠질 수가 없다. /인게임 캡처 |
이렇게 사비를 털 만큼 주민들을 아끼는 리더지만 한편으로 다른 고민도 있었다. 리더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자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택 하나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그 책임은 리더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은망덕한… /인게임 캡처 |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주민들의 지지도 중요하다. 거기에 주민들끼리 서로 의견이 갈려 대립하기도 한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이런 고충은 커지다 보니 주민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짜증 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자기가 원하는 물품 거래를 해주지 않았다고 “변하셨군요”라고 말하는 모습에는 순간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이병헌이 연기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김영탁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의 리더는 자신만만하게 조직을 잘 이끌어가다 고난을 맞이하고 인간성을 상실한다. 일종의 클리셰와도 같지만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해보니 왜 그들이 타락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결국엔 철권 통치가 답인가? /인게임 캡처 |
앞으로 도시 규모가 커지고 주민이 늘어날수록 이런 고뇌는 커질 전망이다. 혹시 몇 달 뒤에는 강력한 무력에 기반한 철권통치를 이어가는 리더가 되어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이 단순한 경쟁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에 드는 무게감이었다.
기후 변화를 비롯해 마약, 환경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게임 캡처 |
기후 변화를 비롯해 마약, 환경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게임 캡처 |
이 외에도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다. 특히 재미있던 것 중 하나는 멀티플레이다. ‘특수 산업’을 통해 다른 유저 즉, 다른 도시와 물품을 거래하고 ‘글로벌 의제’ 시스템을 통해 타지역 정상들과 치열한 논쟁을 이어갈 수 있다.
마치 OECD 회원국을 대표하는 국가 원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게임 내 채팅을 통해 도시를 이끌어가는 팁을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국 유저들에 비해 외국 유저들의 대화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히 ‘특수 산업’은 매우 중요한 콘텐츠다. 특수 산업은 국가의 컨셉을 정한다고 볼 수 있는 콘텐츠다. 공업, 군수업, 금융업 등을 비롯한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 별생각 없이 농업을 택했다.
농산품은 시장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다.. /인게임 캡처 |
빙하기를 맞이했기에 식량의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판단했고, 식량 자주화가 중요한 키워드이기에 농업 강국을 꿈꾸며 내린 결론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농업국의 제품은 생각보다 인기가 없으니 특수 산업을 고를 때 신중한 판단을 하길 바란다.
초반은 약간 답답하다. /인게임 캡처 |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초반 재화 수급과 성장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창고 관리나 물품 생산 등 일일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그래서 그걸 참지 못하고 사비를 투자했다. 게임 초반의 난이도는 조금 더 쉬워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건물이 많이 붙어있고, 시민들이 돌아다니며 거래를 요청하는 것 때문에 원하는 건물에서 일을 보기가 불편하다. 이런 점은 확실히 개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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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단점은 어디까지나 아쉬운 수준이다. 아직 도시 레벨이 낮아 해금하지 못한 콘텐츠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프로스트 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는 앞으로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해 줄 것으로 전망해 본다.
생각 없이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고 전략을 꾸려야 하는 게임이라 더 마음에 든다. 간만에 묵직한 무게감의 게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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