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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백 선생. 사진제공=보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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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윤 선생. 사진제공=최세윤 의병대장 기념 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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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 말 대한제국의 국권을 지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친 최세윤·정원집·김원백 선생이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31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1867년생인 최세윤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안동의진에 참여했다. 이후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던 1906년, 최 선생은 산남의진을 결성하던 정용기의 요청을 받아 의병 모집과 무기 조달, 정보 제공 등 후방지원에 나섰다. 그는 1908년 산남의진 제3대 의병장을 맡아 경북을 중심으로 치열한 항일 투쟁을 이끌다 체포됐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단식 투쟁 끝에 순국했다.
1877년 태어난 정원집 선생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었으나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합류한 뒤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돼 전남으로 유배됐다. 정 선생은 유배 중 탈출에 성공했고, 의병장 전해창 선생이 조직한 의병대 대동창의단에 선봉장으로 참여했다. 이후 전라도 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군사 지식을 활용해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 선생은 1909년 일본군 섬멸과 무기 확보를 위해 나주 고막원에 있는 일본군 병참소 공격에 나섰으나 전투 중 총에 맞아 전사했다.
1880년생인 김영백 선생은 을사조약에 반대하고 일본인을 비롯한 외세를 쫓아내기 위해 1000명의 의병을 규합해 봉기했다. 김 선생의 의병부대는 전라남북도를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10여 차례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일제의 대토벌작전 이후 김 선생을 비롯해 의병 상당수가 체포됐고, 김 선생은 교수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보훈부는 “세 명의 독립운동가는 일제의 그늘을 걷어내고 조국의 미래에 빛을 밝히기 위한 의병항쟁 중 순국했다” 며 “구한말 의병항쟁은 일제강점기 동안 계속된 전 민족적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최세윤 선생에게 1968년, 정원집 선생에게 1995년, 김영백 선생에게 1982년 각각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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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집 선생의 판결문. 사진제공=국가기록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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