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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해병이었다”…6·25전쟁 영웅‘ 軍馬’ 미 해병대 전설돼 고향 돌아오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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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해병이었다”…6·25전쟁 영웅‘ 軍馬’ 미 해병대 전설돼 고향 돌아오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6·25전쟁 때 활약한 군마(軍馬) ‘레클리스’ 하사. 사진 제공=미 해병대

미 해병대의 좌우명(신조)은 ‘셈퍼 피델리스’(Semper Fidelis)다. 라틴어로 ‘항상 신뢰하는 영원한 전우’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어떤 군사작전이라도 전우가 전사하면 적진에 남겨 놓지 않고 반드시 전우를 데리고 돌아간다는 의미가 담겼다.

미 해병대의 신조는 사람이 아닌 군마(軍馬)에게도 해당된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미국으로 돌아가는 해병대 행렬에 생사를 함께한 ‘전우’로 인정 받은 한국 태생의 말(馬) ‘아침해’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아침해는 미 해병대 계급장을 달고 수많은 전투에 참여해서 미 해병대 사망자와 부상자를 운반했다. 이 과정에서 해병대원들은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로서 방탄조끼를 벗어 아침해를 덮어줬고 아침해는 자기 몸을 방패로 병사들을 보호하는 끈끈한 전우애를 보여줬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아침해는 어미가 제주마 혈통이다. 경주마의 새끼로 태어나서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에 250달러에 팔려 입대했다. 아침해는 두달간의 훈련 끝에 M20 무반동포(recoilless rifle) 포탄 운반 임무를 맡았다. 이 때 무반동포 영어 발음과 닮은 ‘레클리스’(reckless·무모한)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전쟁 중에 해병대 막사에서 해병대원와 함께 생활했던 아침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간식은 스크램블에그, 코카콜라, 맥주, 초콜릿 등이라고 한다. 미 해병대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해병대 창건 만찬에도 참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한번은 만찬 행사에서 테이블에 있던 꽃장식을 다 먹어치우는 식욕을 과시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957년 Staff Sergeant E-6 계급(韓 하사 계급)으로 진급한 아침해는 캘리포니아 캠프 팬들턴 해병대 부대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자손으로 망아지를 세 마리나 낳았다. 그러나 미 해병대는 1968년 철조망에 발이 걸려 부상당한 아침해를 위해 안타깝게도 안락사를 결정했다. 그렇지만 군인으로서 모든 예우를 갖춰 장례식을 치렀다. 아침해의 동상은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 국립해병대기념관 셈퍼 피델리스 공원의 미국 전쟁기념 동상들 사이에 우뚝 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진정한 해병이었다”…6·25전쟁 영웅‘ 軍馬’ 미 해병대 전설돼 고향 돌아오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지난 10월 26일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제막식이 이뤄지는 6·25전쟁 영웅 군마(軍馬) ‘레클리스’ 미 해병대 하사의 동상. 사진 제공=한국마사회

“그녀는 여느 말(馬)이 아니었다. 진정한 미 해병이었다.” 제주마 후손 아침해, 영어식 이름 레클리스를 다룬 미국의 한 책 서문에 적혀 있는 소개문이다.

6·25전쟁에서 미 해병대 소속으로 포탄과 부상자를 나르며 활약한 전쟁영웅, 한국산 군마 ‘레클리스(Reckless·1948~1968) 하사’의 동상이 지난 10월 26일 제주 애월읍 렛츠런파크 제주에 세워졌다. 제주도와 한국마사회가 제주마축제와 연계해 레클리스의 용맹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한·미 동맹 71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의미에서 기념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레클리스는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미가 제주마(馬) 혈통이다. 76년 만에 자신의 뿌리인 제주를 찾게 된 것이다.

미 해병대는 한국산 군마 레클리스는 이름처럼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고 평가한다. 미 해병대 기록을 살펴보면 레클리스는 1953년 3월 27일 경기 연천군 백학면 매현리 네바다 전초 방어 전투에 투입돼 미 해병대가 발포한 무반동포 포탄의 95%에 달하는 386발(약 4t)을 혼자서 51차례에 걸쳐 운반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적의 포격이 분당 500발씩 쏟아지는 위험한 상황으로 두 차례나 부상당해도 레클리스는 멈추지 않고 무모할 정도로 솔선수범 했다. 레클리스에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기도 하다.

사실 적의 입장에서는 물자를 나르는 군마는 조준 사격 목표의 1순위다. 미 해병대 보급병들도 레클리스에게 임무를 맡길 때마다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하면서도 매번 임무를 완수하고 기적처럼 살아 돌아와 애절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고 한다.

이 같은 활약 덕분에 레클리스는 1954년 4월 미 해병대 ‘병장’ 계급을 받았다. 이후에도 전장에서 세운 수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퍼플하트(작전 중 부상시 수여) 훈장 2개, 미국 대통령 표창 등도 수상했다.

“진정한 해병이었다”…6·25전쟁 영웅‘ 軍馬’ 미 해병대 전설돼 고향 돌아오다[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6·25전쟁이 끝나고 레클리스는 고귀인 한국에 남지 않고 미 해병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마침 미 샌프란시스코항을 통해 미국 땅에 발을 디뎠던 1954년 11월 10일이 미 해병대 창설기념일(미 해병대는 1775년 11월 10일 창설)이었다.

이후 레클리스는 미 해병 1사단이 주둔하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 머무르며 미 언론의 조명까지 받아 ‘전쟁 영웅 군마’로 유명 인사가 됐다. 1959년에는 하사(Staff Sergeant)로 진급했다. 특히 레클리스의 하사 진급식은 미 해병대사령관 주재로 해병대원 17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하게 치뤄졌다. 군마가 해병대 하사 계급장을 단 것은 레클리스가 처음이다. 하사 진급 다음해인 1960년 해병대에서 전역했고, 군마임에도 퇴직금을 받았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에게 평생 먹을 사료와 축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레클리스는 말년에 허리 관절염을 앓았고, 낙상이 악화하면서 안락사됐다.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턴 기지 내에 안장하고, 레클리스가 살았던 마구간 옆에는 기념비까지 세워졌다.

미국의 시사잡지 ‘라이프’지는 1997년 레클리스를 미국 100대 영웅에 포함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서 킹 등과 어깨를 나란히 셈이다. 미 해병대 본부를 포함해 미 전역에 레클리스의 동상은 6개가 세워져 있다. 한국에서도 2016년 경기 연천에 동상이 세워졌다. 한국마사회는 2019년에 뮤지컬 ‘레클리스 1953’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 10월 26일 제주도와 마사회가 레클리스 동상을 건립한 것도 제주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호국 영웅마와 한미동맹을 재조명하기 위한 차원이다. 제막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제이콥 로빈슨 주한 미 해병대 부사령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비롯해 한·미 해병대 관계자 및 참전용사 등이 참석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도 축전을 보낸다.

행사에선 해병 의장대와 군악대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레클리스 소개 영상 상영, 제막식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로빈슨 주한 미 해병대 부사령관은 “작은 체구였지만 모든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준 레클리스는 진정한 해병이었다”며 “한국의 딸이자 모든 해병의 자매인 레클리스의 유산은 양국을 영원히 하나로 묶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계환 사령관도 평택 미군기지 레클리스 동상 건립 계획까지 발표하며 “레클리스가 보여준 용맹함과 충성심은 해병대의 귀감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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