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테니스 브레이슬릿의 기원은 테니스와 얽혀 있지만, 사실 테니스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이아몬드와 젬스톤, 큐빅이 촘촘히 나열된 팔찌에 훗날 ‘테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니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사연의 중심에는 크리스 에버트가 있다. 1970~1980년대 여자 테니스계를 휩쓴 크리스 에버트는 빼어난 외모와 스타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난공불락의 냉철한 경기 운영으로 기어코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든 그녀의 별명 중 하나는 ‘얼음공주’. 1978년 크리스 에버트는 여느 때처럼 다이아몬드 팔찌를 착용한 채 US 오픈 테니스 대회에 나섰는데, 하필 그날 주얼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팔찌가 튕겨 나가 급기야 경기가 중단된 것. 코트를 샅샅이 뒤지는 광경이 전 세계 뉴스를 달궜고, 덩달아 주목받은 이름 모를 팔찌는 이후 ‘테니스 브레이슬릿’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의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지 세월이 흘러 루이 비통의 워치 & 주얼리 아티스틱 디렉터 프란체스카 앰피시어트로프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여전히 회자되는 에피소드에서 그는 고전적인 테니스 브레이슬릿이 내비친 캐주얼한 럭셔리를 상기했다. 특히 운동할 때도 손목에 자리한 주얼리의 일상성이 안목을 사로잡았다. 앰피시어트로프의 비전은 루이 비통이 새롭게 선보인 파인 주얼리 컬렉션 ‘르 다미에 드 루이 비통’에 아름답게 구현됐다. 링과 네크리스, 후프 이어링과 함께 컬렉션을 이룬 옐로골드와 화이트골드 브레이슬릿은 유연함이 무척 놀랍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착용감이 확연히 다르다. 묘사하자면 금속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촉감. 손목에 두르는 순간 창발하는 벨벳처럼 부드러운 여운이 벗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발현된다.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정교한 기술로 태어난 브레이슬릿에는 역사적·예술적으로 짚어볼 대목이 또 있다. 1888년 루이 비통과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은 모조품 방지를 위해 특유의 문양을 트렁크에 입혔다. 베이지와 브라운 컬러 스퀘어가 교차하는 체크무늬. 그때나 지금이나 루이 비통을 상징하는 다미에 패턴이다. 탄생 연도에 반복되는 숫자 8에서 착안한 다미에 패턴은 이 숫자의 형태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과 영원을 의미한다. 이름에서 짐작되고 브레이슬릿에서 볼 수 있듯이 ‘르 다미에 드 루이 비통’ 컬렉션은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루이 비통만의 상징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골드 스퀘어와 다이아몬드로 재해석했다. 어쩌면 역사상 한없이 단단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체크무늬일지도 모른다. “스톤이 아니라 스톤이 만드는 패턴이 핵심인 다이아몬드 컬렉션입니다.” 앰피시어트로프의 설명에서 사랑받을 게 당연한 창의적 시선과 수준 높은 비주얼이 읽힌다.
새로운 파인 주얼리 컬렉션의 주요 제품인 링은 세 가지 너비에 두 종류의 스타일을 갖췄다. 우아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데일리 버전은 골드와 다이아몬드가 두 줄로 세팅돼 있다. 다른 하나는 네 줄의 골드와 다이아몬드가 볼드하고 그래픽적 윤곽을 이룬다. 성별을 구분 짓지 않은 아름다움과 링을 차곡차곡 스타일링하면 다미에 패턴의 무한한 확장성이 힘 있게 드러나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열두 가지 피스로 탄생한 이번 컬렉션에는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싱글 라운드 펜던트의 네크리스와 옐로골드 후프 이어링도 포함된다. 물론 이 또한 다미에 패턴으로 기하학적이고 손색없는 아름다움을 십분 발휘한다.
루이 비통 역사의 근원에 가까운 다미에 패턴은 세포분열을 하듯 다양한 형태와 스타일로 재창조되며 한 세기 넘게 존재감을 발했다. 그 무한한 여정이 파인 주얼리 라인에 이른 것. 앰피시어트로프는 이번 컬렉션을 내놓으며 “새로운 시대의 창조물이자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디자인된 현대적인 컬렉션”이라고 타임리스를 향한 꿈을 함축했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강력한 상징,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모던한 조형미, 섬세하고 정교한 세공술로 구현한 경이로운 밀착감까지 ‘르 다미에 드 루이 비통’의 출현은 메종의 파인 주얼리 역사에 유의미한 사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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