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30개 이상·보건소만 우선 시행
복잡한 과정 탓에 매년 3000억 포기
동참 병원 17% 그쳐…”소비자 볼모”
실손의료보험금을 모바일과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신청하고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됐지만, 의료계의 몽니에 발목이 잡히며 반쪽짜리 서비스로 불완전한 출발을 하게 됐다.개인정보 침해 우려와 의료데이터 악용이라는 명분으로 참여에 주저하는 모습이지만, 결국 소비자를 볼모로 잡은 꼴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병상을 30개 이상 보유한 병원급 의료기관과 보건소를 대상으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행됐다.
이에 따라 보험가입자는 병원이 아닌 보험개발원의 ‘실손24’ 앱 또는 웹페이지를 통해 진료비 관련 서류를 병원에서 바로 보험사에 전자 전송하고,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실손24 앱 등을 통해 병원에서 종이서류 발급 없이 보험사로 전자전송이 가능한 서류는 ▲계산서·영수증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서 ▲처방전 등이다.
입원 진료비 보험금 청구 등에 필요한 진단서 등의 추가서류와 내년 10월 25일부터 시행 예정인 약제비 계산서·영수증은 가입자가 사진을 찍어 실손24 앱 등을 통해 별도로 보험사에 전송 가능하다.
실손보험은 지난해 말 기준 3997만명가량이 가입했다. 우리나라 인구 5명 중 4명은 가입되어있어 ‘제2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그러나 병원에서 서류를 발급 받아 보험사에 직접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 보험금을 청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매년 청구를 포기한 실손보험금은 매년 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보험업계는 이번 전산화로 많은 보험소비자들이 실손보험금 청구를 할 것으로 전망한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오르고 있지만, 과잉진료를 제어할 수 있고 전산화에 따라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실익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동참하는 의료기관이 현저하게 적다는 점이 문제다. 이날 기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참여한 병원은 4235개 병원 중 733개로 17.3%에 불과하다. 그간 의료계는 의료 데이터를 이용해 보험금 부지급 또는 가입 거절을 할 수 있고,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꼽으며 반대해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금융당국과 함께 소비자 편의성 제고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참여했다”라면서도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의료계의 동참이 중요하므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아직 미참여한 병원과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제공업체에 대한 소통을 강화해 참여를 지속 확산하면서도, 참여를 확정한 병원의 경우 실손24와 병원의 연내 연계를 목표 일정으로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보험개발원은 실손24 상황실을 운영하는 등 시스템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애로사항을 즉각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의료계가 국민 편의를 위해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실손보험은 제2건강보험으로 불릴 만큼 국민 삶에 밀접한 보험”이라며 “제도가 시행한 만큼 소비자들도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되는 병원에 더 많이 방문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이어 “보험소비자들을 볼모로 잡으면 안된다”라며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보험업계, 의료계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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