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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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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짐가방을 꺼내놨다. 무언가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다. 거기서 꺼내든 곱게 개어진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이름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심기열(34)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제였다. 그는 더 이상 사제복을 입을 수 없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명확한 근거 없이 정신질환이 있다고 판단했다. 면직 통보를 할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었다. 심기열은 하루 아침에 사제직을 빼앗겼다. 사제로 보낸 4년의 시간을 고이 접어, 검은 사제복과 함께 가방 속에 보관해야 했다.

그는 2022년 3월 업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주교.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2022. 3. 15.)

심 신부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의심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구는 ‘자문단’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대구대교구 홈페이지상 조직도에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와 심리전문가로 구성된 대주교 인가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 8월 27일 경북 포항시에 있는 심기열 부모님의 자택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짐가방 속에는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검은 사제복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셜록

“자문단이 편집성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본인 없이 병 진단이 가능합니까?”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당사자 면담도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자문단의 명단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교구는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 말고는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자문단은 무급으로 자문을 주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교구는 한 발 물러섰다. 당장 정신과적 치료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치하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교구는 일방적인 ‘조치’를 결정했다.

“2022년 4월 8일부로 신부님의 ‘휴양’이 결정되었습니다.”

심 신부에게 휴양 결정이 내려졌다. 휴양은 질병, 사고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신부에게 내려지는 결정이다. 대구대교구 사제생활지침서에 따르면, 휴양을 원하는 사제는 총대리와 상의하고 교구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휴양 기간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만 심 신부 본인의 신청도 없이, 의사의 진단도 없이 내려진 일방적 통지였다.

▲ 심기열 신부는 의사 진단도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려 ‘휴양’ 결정을 통보받았다. ⓒ셜록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심기열은 그 배경에 A 성당 주임신부와의 갈등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짐작했다.

“A 성당 주임신부는 외박, 외출이 잦고 본당에 잘 없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수요일, 목요일은 골프를 치러 가서 미사 일정을 항상 바꿔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미사가 없으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토요일에 나타났습니다. 주일(일요일)에도 당구 치러 간다고 본당을 비우곤 했습니다.”

휴양 통보가 있기 약 5개월 전인 2021년 12월, 심 신부는 A 성당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에 고발한 바 있다. 이 문제로 심 신부는 주임신부와 함께 교구청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주임신부에 대한 고발 내용을, 아주 부정적인 고발 내용으로 일관했고, 아주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보통 젊은 보좌신부가 주교님과 본당 신부, 또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거든요.”(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이후 교구청 총대리주교가 심 신부에게 “억압된 감정”이 있다며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낸 거였다. 교구는 심 신부가 고발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심 신부를 B 성당으로 인사이동 시켰다.

그리고 뒤이어 내려진 휴양명령. 사실상 징계 처분이었다.

▲ 심기열은 2008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셜록

교구는 휴양명령에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신학대 입학 인성검사 당시에 보인 부정적 결과가 현재 악화됐다는 것. 교구는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14년 전인 2008년 진행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지원생 인성검사’ 결과를 근거 삼았다.

당시 인성검사 결과에는 “지나치게 자신을 좋게 보이고자 하는 상태”라며, “유연성과 융통성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을 뿐, 정신질환의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심기열은 인성검사에서 B등급(정상범위)을 받아 정상적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신학교 입학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구는 14년 전 인성검사에 들어 있던 몇 줄의 부정 평가를 근거로, 심 신부의 상태가 악화돼 거짓말을 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신학교 입학 당시의 인성검사 결과에서 조금의 개선도 없이 더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휴양에 관련된 결정사항 통지’, 2022. 4. 4.)

두 번째 이유는 심 신부에게 더 모욕적이었다. 바로,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했다는 것. B 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가 한 50대 여성 신자의 승용차를 자주 얻어 타는 등, ‘지나치게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적인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던 때였다. 심 신부는 성당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 종종 가까운 카페를 찾아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B 성당에서 걸어서 2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주경희(가명, 당시 51세) 씨였다. 주 씨는 심 신부의 첫 부임지 성당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신자다.

“심기열 신부님과 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도 아니고요, 손끝 하나 댄 적 없습니다.”(주경희 증언,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2023. 10. 12.)

B 성당 주임신부의 증언 말고 다른 증거는 없었다. 그러면서 교구는 심 신부에게 보낸 휴양명령 통지서에서, 두 사람을 ‘부적절한’ 관계로 몰아갔다.

“너무 어이없었습니다. 신부 옷을 벗기려면 적어도 돈 문제가 있거나, 여자 문제가 있어야 해서 그런 프레임을 씌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 심기열 신부는 자신의 20대를 바쳐 사제가 됐다. ⓒ셜록

교구는 심 신부에게 휴양 기간 중 치료를 명령했다. 천주교 신자가 운영하는 C 정신과의원을 지정해, 그곳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분기별 치료 상황과 생활에 대한 보고서 제출도 요구했다.

심 신부는 억울했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은 없다고 ‘증명’해야 했다. 심 신부는 교구에서 지정한 C 의원보다 규모가 큰 경북 포항시 소재 종합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2022년 4~5월 두 차례 심리검사를 받았다. 심 신부에게 정신질환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구에서 신뢰할 만한 전문가의 소견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정신질환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제출했는데, 교구는 계속 C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치료상황 보고서는 내지 않았지만, 미사 드리는 생활에 관한 보고서는 전부 제출했습니다.”

이후 교구는 심 신부에게 한 곳의 병원을 더 지정해줬다. 2022년 12월 20일까지 C 의원 또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중 한 곳에서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심 신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병원은 심 신부의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정신심리적 영향이 있다고 봤지만, 교구에서 말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은 없었다.

▲ 심기열은 2019년 1월 사제서품식 사진에서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셜록

“제가 행복하기 위해 종교 안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이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어느 순간 점점 지옥이 됐습니다.”

약 8개월에 걸친 ‘해명의 시간’은 심 신부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50대 여성 신자와 ‘지나치게 접촉’한 적이 없다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신질환 같은 건 없다고 외롭게 싸운 시간이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교구는 심 신부의 처절한 해명마저 외면했다. 2022년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 심기열 신부에 면직이 통보됐다. 인사 발령 공지 어디에도 사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교구는 심 신부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심기열(야고보) 신부 / 계시는 곳 ‘휴양’ / 가시는 곳 ‘면직’ / 비고 12월 31일부”

일방적인 면직 통보 후 3일이 지난 12월 29일. 심 신부는 업무 시스템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사용자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기열은 20대를 전부 바쳐 얻은 사제직을 허무하게 잃었다.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대체 왜 면직이 됐는지. 심 신부는 지난해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 심기열은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셜록

소송 과정에서 심 신부의 면직 사유가 드디어 밝혀졌다. ‘불순명(不順命)’.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면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였다.

심 신부가 ‘교구에서 시키는 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교구가 지정한 정신과 의원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것, 그리고 치료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밖에 없었다. 그는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교구에서 요구하는 걸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모습들이 지속되다 보니 사제직을 계속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참사 위원회에서 판단한 것 같습니다.”(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 대구고등법원 증인신문 중 2024. 9. 25.)

성직자국장은 23년간 교구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면직 처분은 세 건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나는 여자 문제가 있는 사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돈 문제, 마지막 하나는 심기열 신부 사례였다.

그의 말처럼 대구대교구에서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흔치 않았다. 교구 징계 사례를 살펴봤다.

아동성추행으로 징역 3년 형을 받은 신부가 있었다. 사제의 자격이 아니라 인간의 자격도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 신부도, 면직이 아닌 ‘정직’ 처분에 그쳤다. 교구 산하 법인 여직원을 성추행한 신부도 면직되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술판을 벌인 신부도 정직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정직이 끝나자 한 성당의 주임신부로 복귀했다.

이런 신부들을 모두 제치고, 심 신부는 ‘면직’됐다. 지난 8일 대구대교구 성직자국장에게 ‘면직 기준’을 물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서는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 심리검사 결과 치료가 필요없다는 심기열의 해명에도, 교구는 자신들의 지시를 어기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는 등 ‘불순명’했다고 심기열을 면직했다. ⓒ셜록

심기열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6일 2심 재판부 역시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단체의 내부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다.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자율권이란 명분 아래, 이 문제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럼 종교단체 내부에서 누군가를 이유 없이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도 용인돼야 하는 걸까. 신의 뜻으로도, 인간의 법으로도 심기열을 구할 수 없다면, 그는 이제 누구에게 기도하고 무엇에 기대야 하는 걸까.

“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옳은 건가, 싶은 거죠. 인간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에 존엄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존엄한 마음이 없습니다. 해볼 때까지 해봐야죠.”

지난 8일 대구대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B 성당에서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당구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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