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말 국내 첫 철도인 경인철도 인천 구간 건설 당시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가 발굴됐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국회 산자중기위, 인천동구미추홀구갑) 의원은 24일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소장 자료에서 인천 지역 경인철도 건설 과정과 운행 상황이 담긴 사진과 안내서 등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인철도 건설사업에 참여한 미국인 해리 라이스 보스트윅(Harry Rice Bostwick, 1870~1931)의 외손녀가 지난 2017년 한전에 무상기증한 2,500여건의 사진, 문서 중 의원실에서 인천 관련 자료를 확인하면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스트윅 사망 당시 미국 언론은 ‘한국 철도 건설자’라고 소개했다.
[사진1] 보스트윅의 영문 명함을 보면 보스트윅은 당시 철도 건설 회사의 관리감독자(AUDITOR)로 근무했으며, 사무실이 인천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영문으로 ‘제물포’(CHEMULPO-KOREA)라고 표기된 만큼, 사무실은 인천항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2] 미추홀구 숭의동 꼭대기에 있었던 근대건축물인 ‘알렌 별장’ 사진도 보스트윅이 보관하고 있었다.
[사진3~6] 철도 건설 현장과 건설 노동자 등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이 사진의 배경이 인천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제물포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던 사진사 히구치(樋口)가 찍었다는 표시가 사진 옆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히구치는 당시 인천 풍경 다수를 사진에 담았고, 엽서로도 만들었던 인물이다. 보스트윅이 인천의 유명한 사진가 히구치에게 경인철도 건설현장 사진을 찍어달라고 의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7~10] 1900년 7월에 나온 ‘경인철도 안내서’도 눈길을 끈다. 철도 운행시간표와 철도를 탈 때 주의사항 등이 담겼다.
인천역에서 오전 6시, 7시 45분, 10시 45분, 오후 1시 45분, 4시 45분 등 하루에 5차례 서울행 열차가 출발했고, 경성역[1900~1904년 경부선/경인선의 종착역이었던 서대문역]까지 1시간 45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역은 인천역~축현역[동인천역]~우각동역[현재 도원역 부근]~부평역~소사역[부천역]~오류동역~노량진역~용산역~남대문역[서울역]~경성역[서대문역] 등 10개였다.
인천~노량진까지 개통된 시점이 1899년이며 한강철교가 준공된 때가 1900년 7월이었던 만큼, 경성역 연장 시점에 맞춰 열차시간표를 새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정승차 시 거리와 상관없이 추가요금 5전(일본화폐)을 내야 하고 4세 이하 어린이는 무임, 4~12세까지는 성인의 반값으로 승차표를 살 수 있었다. 짐을 분실하더라도 책임지지 않지만, 옷이 훼손될 경우 최대 50원까지 변상해 준다는 내용도 담겼다.
1인당 30kg의 짐을 초과하면 추가 운임을 내도록 했고, 짐을 찾을 땐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고 기록된 점을 비춰보면, 당시 경인철도가 여객뿐 아니라 물류 기능도 상당 부분 담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인철도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도로가 개통하기 이전에 건설된 것이어서 철도가 개통하기 이전에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가거나 조랑말 등을 타고 가야만 했다.
허종식 의원은 “경인철도 인천 건설 현장에 있었던 보스트윅이 남긴 자료가 약 125년 만에 인천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덕분에 인천의 철도 역사와 대한제국 시기 인천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단초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배경이 인천이란 걸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중심으로 공개했다”며 “전문가들과 함께 검증 작업을 거쳐 인천 자료를 더 확보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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