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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4>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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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삭발을 어제쯤 한 듯 머리가 반질반질한 운곡은 강헌이 묻지 않았는데도 김룡사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신라 제26대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雲達祖師가 절을 창건했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것을 조선조 중기의 스님인 혜총선사慧總禪師, 의윤선사義允禪師 등이 잇따라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며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었다.

“제 방에 가서 차나 한잔 하시지요.”

“괜찮겠습니까?”

“산책은 잠시 후에 햇볕이 나면 하시지요. 비구름이 곧 물러갈 테니까요.”

운곡이 기거하고 있는 방은 천왕문 오른쪽으로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요사는 중수를 한 지가 얼마 안 되는 듯 마루와 기둥, 그리고 지붕이 단정했다. 마당 앞에 있는 산벚나무 한 그루가 터줏대감 같은 느낌이 들 뿐, 별 특징이 없는 요사에서 운곡은 기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루에 앉아보자 요사 역시 적막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앞에 보이는 작은 계곡과 그 계곡을 건너가는 흙다리와 산모퉁이 너머로 사라져버리는 산길 때문이었다.

무엇이 슬그머니 사라진다는 것도 사무치게 적막한 일이 아닌가. 나무 바리케이드로써 흙으로 만든 다리를 반쯤 막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산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 법하다. 더구나 흙다리 너머에 바로 상여 크기만 한 문이 하나 있지 않은가.

이 요사는 왜 저 사라져버리는 세계를 바라보게끔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저 적막한 산길을 걸었다는 기억이 날 듯 말 듯하지만 그러나 확신은 서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대웅전의 부처님 앞에서 참배하던 일과, 달밤에 탑돌이를 하던 일과 돌부처님을 찾아가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던 일이 전부이다. 산 그림자에 늘 눌려 있을 것 같은 저 고적한 산길, 그 길을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기억이 왜 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저 세계의 푸른 적막이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에 어린 자의식이 애써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처사님, 무얼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십니까?”

“저 산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강헌은 당황하여 거짓말하다 들킨 아이처럼 솔직히 말했다.

“아, 명부전 가는 산길이죠. 명부전이란 지장보살님이 계신 곳 아닙니까? 저 계곡 이쪽은 이승이고, 저쪽은 저승인 셈이지요. 다른 절에는 보통 명부전이 법당 가까이에 있는데, 우리 절은 저렇게 법당과 멀리 떨어져 안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저 흙다리는 저승과 이승의 경계인 셈이다. 삶과 죽음이 만나는 다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헌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네 마음속에도 다리가 하나 있지 않느냐. 잘 찾아보아라. 어서.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강헌은 운곡이 우려낸 작설차를 건성으로 마시고 잔을 놓았다. 마음속에 독처럼 퍼져가고 있는 자신에 대한 살의를 스스로 확인하고는 찻잔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 보십시오. 하늘이 활짝 개지 않았습니까.”

운곡이 다시 쾌활하게 말했다. 산허리에 걸쳐 있던 비구름이 어느새 물러가고 가을 햇살이 내리쏟아지고 있다. 선사들이 흔히 말하는 본지풍광本地風光이란 바로 저런 경지인가. 무대를 가렸던 막이 올라가자 장엄한 서사시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무대는 단풍으로 단청을 한 운달산이었다. 소나무와 전나무와 함께 숲을 이루고 있는 활엽수들이 허공까지도 단청을 할 기세로 단풍의 물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가을이 되면 운달산 자체가 단청을 한 거대한 법당이 돼버린다는 운곡의 자랑이다.

강헌은 운곡의 머리에 난 상처를 훔쳐보면서 마루에서 내려왔다. 아마 어제 오후 삭도削刀의 예리한 칼날에 베인 상처일 것이다. 강헌은 실핏줄이 터진 것처럼 피가 맺힌 운곡의 그 상처마저 부러웠다. 문득 김룡사로 출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뜻밖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강헌은 가망이 없고 염치없는 일 같기만 해서 맥없이 도리질을 하고 말았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오누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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