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원·달러 환율이 1382원선으로 올라서면서 8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확대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커지면서 달러 가치가 치솟는 모습이다.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세를 경계하면서 과거 외환위기 시절과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없다며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고 있다.
◇ 환율, 1380.3원에 개장 후 1385원까지 올라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2.1원 오른 1382.2원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7월 30일(1385.3원) 이후 최고치다. 환율은 전날보다 0.2원 상승한 1380.3원에 개장한 뒤 오전 10시 24분쯤 1385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내리 하락하면서 1382원선으로 내려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앞섰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과거 트럼프 재임 기간에 단행된 규제 완화와 감세,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미 국채 금리와 달러화 가치가 치솟은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도 미국 관세율을 10%로 올리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고, 중국제 수입품에는 60% 관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을 제시하면서 강달러를 부추기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 확대도 안전자산인 달러의 가치를 치솟게 하는 요인이다. 최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군사거점뿐 아니라 금융기관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다. 22일(현지 시각)에는 헤즈볼라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인물로 알려진 하셈 사피에딘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북한이 러시아에 특수부대를 파병하면서 격화되고 있다.
다만 외국인의 국내 증시 매수세는 환율 오름폭을 제한했다. 외국인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2108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8.92포인트(1.12%) 오른 2599.62로 장을 마쳤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향후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발생할 경우 환율 추가 상승 가능성이 열려있다”면서 “다만 수출업체의 월말 네고 물량과 당국의 미세조정 경계는 환율 상단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 외환당국 “지금 환율 1400원은 옛날 1400원과 다르다”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1300원대 후반으로 치솟은 환율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금리인하 속도조절을 하면서 강달러 현상에 환율이 올라가는 상황에다, 연초에 너무 내려갔다가 이제 좀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면서 “최근 북한 이슈가 계속 나오면서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환율 1400원은 옛날 1400원과 다르다”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과거 외환위기 때처럼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해서 환율이 급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또 “최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이슈가 있어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외환 위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있지만, 이러한 일급수 자본이 들어온다는 자체가 (시장에) 버퍼(안전망)이 생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2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최근 환율 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의 연속적인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포인트 인상) 등으로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했던 2022년 9월을 회고하며 “1997년 외환위기의 안 좋은 기억이 남아 있어,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을 때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당시 시장 개입이 불가피했다고 언급하며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이 덜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환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을 맞추기 위해 금융시장에 자금 조달 악순환이 발생하고 국내 금리가 더 오르게 되기 때문에 환율 상승 속도를 늦춰야 했다”고 부연했다. 외환시장 변동성 관리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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