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정우가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감독 김민수)로 관객 앞에 섰다. 인생 역전을 노리고 더러운 돈에 손을 댄 형사 명득으로 분해 입체적인 열연을 보여준 그는 “정면 돌파. 진정성 있게 하고자 했다”며 작품에 임한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수사는 본업, 뒷돈은 부업 두 형사가 인생 역전을 위해 완전 범죄를 꿈꾸며 ‘더러운 돈’에 손을 댄 후 계획에 없던 사고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각본에 참여, 감각적인 스토리 전개를 선보인 김민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을 포함해 제57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44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돼 주목받았고, 지난 17일 정식 개봉해 2019년 크랭크업 이후 6년 만에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극 중 정우는 낮엔 수사 밤엔 불법 업소 뒤를 봐주며 뒷돈 챙기는 형사 명득을 연기했다. 명득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아픈 딸 아이를 홀로 돌보며 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어두운 돈에 손을 대는 인물이다. 정우는 형사와 범죄자, 극적으로 다른 두 시점과 입장, 감정을 입체적으로 담아내 몰입을 이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정우는 작품을 택한 이유와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매 작품 진정성 있는 열연으로 대중의 신뢰를 받고 있는 그의 연기적 고민, 아프게 겪은 성장통 등 솔직한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접하고 어떤 감상이 들었나. 작품을 택한 이유는.
“심플했다. 제목에서부터 궁금했다. 상상할 수 있지만 어떤 식으로 돈에 손을 잘못돼서 역경을 맞게 되는지 궁금했는데 심플하면서도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다가오더라. 시나리오마다 읽었을 때 내용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느낌, 뉘앙스가 있는데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섹시했다. 대본 자체가 주는 섹시함에 있었다. 빙빙 돌리지 않고 심플하게 말해서 섹시하게 느껴졌다.”
-촬영이 끝난 후 6년 만에 완성된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결과물은 어떻게 봤나.
“시간이 오래 지난 후 공개하게 돼서 사실 우려가 있었다. 어떻게 나올까.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 전혀 시간이 지났다는 게 느껴지지 않더라. 몇 년 동안 창고에 있다가 나온 영화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만듦새도 그렇고 음악도 너무 좋았다.”
-연기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딸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했다. 자칫 잘못하면 너무 전형적으로 비칠 수 있고 명득이 왜 저 돈에 손을 대는지 설득이 돼야 했다. 그렇다고 그 지점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아지면 범죄 액션 누아르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가 된다. 서너 신밖에 안 되는 장면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게 배우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아주 곤욕이었다. 짧은 신 안에 압축해서 내 감정을 터트려야 했으니까. 관객이나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나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 그런 연기였다. 매력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었다. 정면 돌파. 진정성 있게 하고자 했다. 딸을 대하는 마음가짐, 동혁을 대하는 마음, 한 발 떨어져서는 이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명득이라는 인물을 통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답이 없었다. 매 작품 그렇다. 어떤 스킬이나 재주가 좋아서 조금은 영리하게 접근하는 방법도 이제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이 당시 작품을 대할 때는 정공법이었다.”
-부성애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그때보다 지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하나 잡고 매달리고 구걸하듯 연기를 했다. 애를 많이 쓴 거다. 그런데 이제 나도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고 딸아이가 있으니까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다. 촬영할 때도 아이가 있긴 했지만 감정의 깊이가 점점 달라지니까. 결과물을 보면서 마음이 그렇더라. 어떻게 보면 구조에 있어서 필요한 장치뿐일 수 있는데 마음이 심하게 동요가 됐다. 내 개인적인 감정인지 관객도 이런 감정이 들지 궁금한데 일단 나는 설득이 됐다.”
-김민수 감독의 첫 연출이었다. 현장은 어땠나. 감독으로서 어떤 강점이 있다고 느꼈나.
“나 못지않게 뜨거운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중요한 감정신이 있거나 배우가 이겨내야 하는 연기를 하기 전에 둘만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졌다. 어떤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감독을 붙잡고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 연기를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두렵고 무서운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있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그런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수렁에 빠지기도 하거든. 큰 힘이 됐다. 그만큼 현장에서 의지할 수 있었다. (김민수 감독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게 명확하고 정확하다. 말하고자 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자신의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아주 좋은 감독으로 성장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작품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안다. 아주 멋진 사나이다. 현장에서 에너지도 장난이 아니다. 내공이 있다. 간절함도 있고 패기도 있고.”
-6년 전 자신의 연기를 본 소회, 만족도는 어떤가. 또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궁금하다.
“다시는 그때 연기를 할 수 없을 것 같고 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그때 당시 ‘뜨거운 피’ ‘이웃사촌’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까지 연속해서 아주 감정적으로 고된 작품을 했는데 잘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서 연기를 했다. 과열 현상이 있었다. 배우로서 꿈을 이뤘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감당하지 못할 영역까지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검사를 맡으며 캐스팅됐다. 그렇다 보니 자기 검열이 자꾸 생겼다. 그래서 연기를 즐기지 못했다. 단역에서 조연으로, 주연으로 가면 갈수록 책임감이 커졌고 그 책임감이 되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자나 깨나 작품 생각만 하고 연기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거다.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작품을 해야 했는데 너무 붙어있었던 거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파서 2년 정도 작품을 쉬었다. 그때 많이 깨달았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마음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소속사 대표가 그런 방법들을 많이 알려줬고 큰 도움이 됐다. (김)유미 씨(아내)에게도 참 감사하다.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해 줬다.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다. 내가 해야 할 몫은 다했다는 마음이다. 이제는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갖고 작품을 하게 됐다. 너무 즐겁다. 감사하고. 예전에는 연기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내 인생의 아주 중요하고 소중한 일부가 된 것 같다. 이 영화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촬영할 때 정성을 다 쏟았고 진액을 다 쏟았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대 인사를 하면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거다. 관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은 너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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