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사흘을 4일로 착각한다는 청소년들의 ‘문해력 저하 문제’는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논쟁거리다. 그런데 특정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정말 문해력 문제이고, 이 문해력이 저하되고 있는 것일까. “문해력의 핵심은 글을 통한 의사소통이며,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라고 강조하는 서수현 광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문해력 특강’(정혜승·서수현 저, 노르웨이숲)을 통해 한국사회가 가진 문해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디지털 시대의 문해력 교육을 제시했다.
– 과거에 비해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문해력을 너무 좁게 보는 경향이 있다. ‘심심한 사과’니 ‘금일’이니 하는 단어의 뜻을 아이들이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모르면 찾아보거나 맥락 안에서 이해해 보려고 추론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런 노력은 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단어의 뜻을 모른다고 문해력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안타깝다.
문해력은 기본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어휘력이나 독해력이라는 한 측면만 보기 때문에, ‘문자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 능력’이라는 본질이 가려지고 있다. 그리고 요즘 사람들의 문해력이 저하됐다고 단정할 근거도 부족하다. 2014~2023년 중·고등학교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국어 점수를 보면 하향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교육부·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성인문해능력조사를 보면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는 데 충분한 문해력을 갖췄다. 말하자면 학습 상황에서 문해력은 떨어지는 경향성을 보이지만,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문해력에는 문제가 없다.”
– ‘문해력 특강’을 통해 인권 관점으로 문해력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차별받지 않으려면 권리를 알아야 하는데, 그 권리가 다 말과 글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문해력을 갖출 필요가 있고, 그래서 많은 나라가 자국어 교육에 힘을 써오기도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해력은 시민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다. 문해력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평생 필요한 능력이다. 공부나 대학 입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 그런 관점에서 가정이나 교육 기관에서 문해력 교육을 할 때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문해력 교육은 연습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이런 방식에 기분 나빠 한다. 효능감이 떨어지는 거다. 학년에 맞는 내용을 구성하되, 아이들이 선호하는 것과 결합해서 효능감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 그리고 맥락 안에서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해력의 한 요소인 어휘력의 경우,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번 경험할 때 자기 머릿속의 어휘 사전으로 입력된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 자발적 읽기가 굉장히 떨어진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4학년 슬럼프(Fourth-Grade Slump)라는 용어가 있다. 4학년을 기점으로 읽기나 활동 추이가 급격히 떨어지는 거다. 일단 교과서가 너무 어렵다. 맥락이 소거된 채 개념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선호하는 유형의 글부터 제공해주면서, 공부에 도움되는 방식으로 넓혀주는 게 필요하다.”
– 요즘 아이들이 영상이나 사진 매체에 익숙하다 보니, 글을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 능력은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시대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기존의 인쇄 매체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매체를 읽어내는 새로운 능력도 필요한 시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나라도 디지털 문해력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학습 나침반 2030’에서는 디지털 문해력을 코어 역량이라고 규정한다. 학습의 도구로 디지털 매체를 다루어야 된다까지는 합의가 된 셈이다. 어른들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사용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여가와 학습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체계적인 디지털 문해력 교육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학습을 위한 도구로서 디지털 매체를 어떻게 활용할지 가르쳐줘야 한다. 예를 들어서 매체 자료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연구들을 보면 결국은 자기 조절 능력과 성찰 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디지털 매체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디지털 문해력을 갖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지도해주면 좋다. 예를 들어 디지털 시대 정보의 바다에서 원하는 정보를 잘 찾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호 텍스트적 읽기가 중요하다. 상호 텍스트적 읽기란 하나의 글이 다른 글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 환경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된 자료가 넘쳐난다. 같은 내용을 다루더라도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디지털 문해력을 갖췄다는 것은, 문자로 전달되는 내용과 소리와 영상, 이미지로 전달되는 내용을 연결하여 텍스트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여러 텍스트를 연결해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한겨레 박은아 객원기자 / webmaster@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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