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은 재단법인 예올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해마다 ‘예올×샤넬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장인의 기술을 전승한 ‘공방 컬렉션’을 오랜 시간 지켜온 패션 하우스가 공예 산업과 장인을 조명하고 후원하기 위해 지속해 온 헌신은 금박장, 두석장 등 잊혀가는 한국 전통 기술자를 ‘올해의 장인’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목공예가와 옻칠공예가를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호명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일상 사물을 선보였다.
올해 예올과 샤넬은 대장장 정형구를 ‘올해의 장인’으로, 유리라는 투명 매개체에 불에 그을린 흔적을 표현한 유리공예 작가 박지민을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했다. “공예 분야에 많은 재료가 있지만 불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물성이 비슷한 재료가 많지 않은데 유리와 철이 그렇습니다. 전시장에서 보니 작업 환경 역시 비슷한 구석이 많더군요. 하지만 재료만 보면 무척 다르죠. 그래서 함께하는 작업을 여러모로 기대했어요.” 젊은 유리공예가 박지민은 이번 전시를 위해 대장장 정형구와 함께 유리 화병과 철물 화병 받침으로 이뤄진 협업 작품을 제작했다. 견고하고 둔탁한 쇠와 투명하고 연약한 유리, 상반된 두 소재의 대비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정형구 장인은 두 가지 소재가 만나는 부분을 특히 세심하게 다뤄냈다.
“날카로운 금속판의 끝부분을 두드려 말아 닿는 면적을 최대한 부드럽게 처리했어요. 유리가 파손되지 않게 하려다 보니 작업할 때 굉장히 난해했어요. 고민 끝에 유리에 닿는 부분의 철물을 뒤로 한 번 접은 것이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의 뒤를 이어 담금질을 이어받은 정형구 장인은 농기구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건축 공구에 주력하는 쓸모의 확장을 도모하다가 숭례문 화재로 전통 철물을 의뢰받으면서 이를 계기로 국가유산수리기능자가 됐다. 그리고 예올×샤넬과 함께한 프로젝트를 통해 이번에는 원예 도구와 화로, 책받침, 접시 등 철 소재를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용품을 선보였다. “대장장이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고객이 만족하고 고맙다며 응원해 줄 때예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사물은 처음 만드는 형태여서 작업을 시작할 무렵 금속공예 작업실 몇 군데를 찾아갔습니다. 금속공예 기법을 많이 공부하고, 연장도 빌려왔어요. 철은 거칠고 단단한 재료죠. 그런데 어떤 걸 만드는가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집니다.”
철이라는 거친 속성의 재료를 아름다운 일상 사물로 재탄생시킨 대장장의 귀한 손길, 작업을 위해 지내온 인고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반복적인 단련 속에서 어떤 사물이 지니게 되는 본질적 가치와 쓰임새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박지민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한 폭의 수묵화 같기도, 한 장의 추상화 같기도 한 유리 달항아리를 새롭게 완성했다. “저는 다양한 사물을 수집해 그 사물을 유리에 담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하게 버려지는 종이나 길 위의 낙엽 등 사소한 것부터 의미 있는 사물까지. 수집한 대상을 두 장의 판유리 사이에 넣고 가마에서 함께 가열해 만들죠. 그러면 물질들이 유리 안에서 재와 그을음으로 변형됩니다. 사라질 사물을 투명한 유리 안에 기록하는 거죠.”
인공 안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태우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내는 유리의 무늬와 색이 생경하고 아름답다. 백자 중에서도 보다 자유롭고 추상적인 철화 작품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전통적으로 백자에 그려지던 매화, 목련, 포도 등의 문양을 유리 사이에 넣고 열을 가했다. 전통 문양은 재와 그을음으로 변형되며 추상적인 패턴으로 치환됐다. 박지민은 이를 유리 달항아리에 담았다. “유리 작업을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슷한 기법으로 작업을 이어왔습니다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달항아리같이 쓰임새가 있는 작업을 시도해 봤습니다. 제게는 도전이었죠.” 어떻게 하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공예 문화와 장인의 손으로 만든 물건이 지금의 일상과 공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두 가지 답을 올해 예올과 샤넬의 프로젝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2024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사계절로의 인도〉는 10월 19일까지 예올 북촌가 · 한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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