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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무문사(無門寺)에 가서 <4>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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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에 이어 「무문사에 가서」를 선보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무문사라는 이름의 절집이지만 불교적 상상력에 매달린 작품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 사람과 자연의 인과(因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 한복판을 걸어가는 우리네 삶이 곧 수행의 길이며 인생의 여로에는 인간의 힘이 어쩌지 못하는 섭리가 가로놓여 있음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 속에 새겨 놓은 명작입니다. [편집자]


한참 만에 그녀가 법당에서 나왔다. 표정이 좀 전보다 밝아 보였다. 가을 햇살이 일시에 그녀의 얼굴로 가닿고 있었다. 그녀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래간만이에요. 먼젓번에 들렀다는 얘기 들었어요.”

“결제기간이더군요.”

“규율이 더 엄해지는 기간이에요.”

“…….”

“저쪽으로 갈까요?”

나는 대숲 속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뒤따라갔다. 대숲과 배추밭 사이로 난 외진 길이었다. 깨진 사금파리들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옛날 선방에서는 옆 사람이 죽어도 윗목에다 눕혀놓고 참선 정진을 계속했다고 그래요. 그리고 안거 중에 죽은 사람은 일단 가매장해 두었다가 해제 후에야 장사를 지냈다고 그러더군요.”

나는 귀를 기울였다. 낙엽이 발에 밝혀 바스라지며 나는 소리와 개울물이 내는 소리 때문이었다.

“고향분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해요.”

“이젠, 타관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더군요.”

“마을 뒤에 있는 절은요?”

“요사채 한 동이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 말고는 변함없어요. 마을에서는 아직도 절로 소금을 보내고 있더군요.”

그녀와 나는 통나무 서너 개로 만든 다리를 건넜다.

“속가분들도 잘 계시겠지요?”

“아버진 오빠 집에 계시고요, 오빤 지물포를 하고 있는데 요즘은 잘 안 되나 봐요.”


염전 일이 좀 한가해지는 철이었다. 대신 추수기가 되어 농사일이 바빠지고 있었다. 마을에 심상찮은 공기가 감돌았다. 마을사람들이 아버지와 그녀 아버지를 따르는 패로 은연중 갈라졌다. 어선을 가지고 있는 선주나 농사가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뭉쳤고,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녀 아버지 집을 드나들었다. 그때 그녀와 나는 중학교 3학년으로, 밤이 되면 또래들끼리 몰려다니며 진학공부를 한답시고 안달을 하곤 하였다.

그녀 아버지가 장리쌀의 부당함을 들고 있어났다. 장리쌀에서 다시 붙는 이자는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녀 아버지가 먼저 아버지를 찾아와 설득을 했다. 일손이 모자라는 철이므로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아버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절로 보내지는 보은염을 생각해서 마을사람들이 한 절기 동안 돌아가면서 염전으로 나가 울력을 해주곤 했지만 사실은 그 울력에 대한 보상도 있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이므로 그런 보상은 불문에 붙이기로 하고, 장리쌀에서 붙는 이자는 너그러이 감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아버지는 그녀 아버지한테 배신을 당했다며 노기를 띠었다.

“난리 때 말이여. 나 아니면 무슨 재주로 살아났을 것이여? 그나마 나라도 백방으로 뛰어 다니다 보니께 목숨 부지한 것 아니냔 말이여.”

그러나 그녀 아버지의 주장은 달랐다. 염전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그런 선심을 쓰는 체하며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와 내가 한 반이었을 때, 빨갱이 자식이라고 하여 그녀가 부반장이 되지 못하게 한 것도, 그녀의 7대조 할아버지가 신주(神主)로 모셔져 있는 사당을 용의 형상인 마을 산의 맥을 끓고 있다 하여 헐게 한 것도 다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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