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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삶을 짓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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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리단길의 한 빌라. 재즈가 잔잔하게 들려오는 집 안으로 들어서니 남산 언덕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지붕들의 파노라믹 풍경이 펼쳐진다. 건물 밖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망이다. 뮤지션 이찬혁과 함께 브랜드 ‘세이투셰(Say Touche′)’를 시작한 이래 흥미진진한 포트폴리오를 펼쳐온 디렉터 임재린이 반려견 빌리와 함께 사는 집이다. “스무 살부터 올해 스물아홉이 되기까지 매년 이사를 다녔어요. 한 해도 빠짐없이. 형편에 맞으면 조금 더 나은 집을 서서히 찾아온 과정이었죠. 이곳은 제가 꿈꾼 집의 최종 버전이에요. 모델링 프로그램으로 직접 공간 계획을 짜고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한 뒤 입주했어요.”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우드 도어와 두꺼운 몰딩, 거실 한쪽을 꽉 채운, 스피커가 내장된 붙박이 거실 장까지. 과거의 한 시대를 풍미한 멋과 풍요의 감성이 곳곳에 담겨 있다. “잦은 이사를 다녔지만, 지나온 모든 집이 지금과 비슷한 색채였어요. 나무로 된 문과 몰딩은 원래 이 집에 있던 장식인데, 구조 변경으로 개보수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에 들어 남겨두고 싶었던 디테일이었어요. 거실 장은 마치 1970년대의 미국 부잣집에 있을 법한, 벽을 꽉 채우는 장을 꼭 만들고 싶었던 꿈을 실현한 거예요.”

임재린이 20대 초반부터 원룸에서 투룸으로 조금씩 주거 공간을 넓히며 줄곧 바란 건 큰 거실이었다. 임재린은 전형적인 30~40평대 한국 아파트의 판상형 구조를 원했다. “어린 시절 판상형 아파트에 살았어요. 주방에서 요리하는 장면과 가족이 TV 앞에 두런두런 모여 있는 장면, 식사하는 장면들이 마구 섞이는 집이었죠. 저에게 ‘자취방’과 구별되는 집이라는 개념은 주방과 거실, 다이닝 룸이 완전히 트인 공간에서 가족 구성원의 일상이 교차되는 공간이에요. 이 집은 그런 면에서도 완벽했어요.” 집을 장식할 때마다 가죽과 나무, 패브릭을 즐겨 활용했다는 그의 취향은 공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검은색과 흰색보다 컬러플하고 채도 높은 모든 것을 사랑한다. 차갑고 모던하고 선과 면이 매끈한 사물보단 세월이 묻어나고 어딘가 뒤틀린 것을 선호한다.

“빈티지 혹은 나아가 앤티크 아이템까지 나이 든 물건을 정말 좋아해요. 어린 시절 호주에 살았는데, 그땐 개러지 세일 문화를 즐겼죠. 오래전부터 생긴 취향인 것 같아요. 스물둘에 마빈 게이의 음악에 흠뻑 빠졌어요. 음악 취향을 밝히면 다들 1996년생이 맞느냐고 되묻죠.” 거대한 활과 멕시코 유리공예품이자 과거 CCTV로 사용됐다는 커다란 미러볼, 에어 브러시로 채색된 소키장의 작품, 사람의 두 발을 형상화한 피터 페터의 스툴, 페르시아 문양의 러그를 포토숍의 리퀴파이 기능으로 이리저리 만지다 탄생시킨 세이투셰의 일그러진 하트 모양 러그까지. 다른 장소에서라면 낯설게 느껴질 물건들이 임재린의 집에선 놀랄 만큼 조화롭다.

약간의 반골 기질이 있음을 고백하는 그는 자신이 끌리는 물건들을 편견 없이 다채롭게 컬렉팅해 집 안 곳곳을 가득 채웠다. “공간 구획은 물론 모델링 프로그램까지 사용하며 신경 썼지만, 정작 물건을 살 때는 치수조차 재지 않았어요. 제 마음에 쏙 들면 일단 구입해요. 사진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각자의 취향과 공간, 멋을 대변하는 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내 공간도 나를 대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말로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거든요. 대신 이 집이 나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아요.” 자신과 꼭 닮은 집을 만들면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임재린과 빌리는 부드러운 녹색의 가죽 토고 소파에서, 바람 빠진 농구공 모양의 작은 의자에서, 로마 신전의 기둥을 닮은 다리와 크림색 타일로 만든 독특한 다이닝 테이블과 빛바랜 해먹을 오가며 더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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