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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독일은 왜 철도에 수백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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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6차 대멸종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2015년 파리에 모인 195개국은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은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생존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추세라면 이 목표를 달성해도 2040년 전에 1.5도씨 상승은 확실하고 2도씨 상승마저 막기 어렵다.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이미 2023년 6월부터 2024년 5월까지 1년 간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65도 상승했다.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올라가면 생물다양성의 절반가량이 자칫 사라질 수 있고, 그렇게 될 경우 인류는 멸종할 것이라는 의견에 96%에 달하는 생물학자들이 투표했다고 한다. 예측 수치를 계산해보면 앞으로 호모사피엔스의 멸종까지 100년 가량 남은 셈이다.

철도 인프라 개량 위해 수백억 유로 투자 결정

▲2024.6.26.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각국의 UEFA 유로 2024 팬들로 북적였다. ⓒ김선욱

독일에서 열린 2024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온 유럽의 축구팬들은 독일 철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열차는 지연되거나 취소되기 일쑤였다. 유로 2024 조직위원이자 전 축구선수인 필립 람도 열차 지연으로 중요한 순간을 놓쳤다. 독일의 철도공사인 도이치반(DB)은 팬들에게 사과했지만, 독일 철도는 늘어난 용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정시성 하락으로 독일 철도의 신뢰는 추락했는데, 낡은 선로와 인프라 및 극심한 인력부족이 원인이었다. 독일 철도는 교통량 증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병목 구간에서 혼잡이 심화됐다.

이렇게 신뢰가 추락한 독일 철도가 최근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개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독일 전역의 40개 구간, 총 4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도망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를 위해 2027년까지 270억 유로를 투자하고, 2030년까지 추가로 300억 유로를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대규모 투자의 배경은 정시성 하락과 인프라 노후화도 있지만, 나아가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독일의 기후 위기 대응은 도이칠란트 티켓이라고 부르는 49유로 티켓(서울시에서 도입한 기후동행카드가 이를 벤치마킹했다)외에도 전국적인 열차의 규칙적 시간표를 만드는 이른바 ‘도이칠란트탁트(Deutschlandtakt)’가 핵심이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도이칠란트탁트’와 ‘도이칠란트티켓’

도이칠란트탁트(Deutschlandtakt)는 독일 정부와 철도공사인 도이치반(Deutsche Bahn, DB)이 추진하는 철도 교통 현대화 계획의 핵심 프로젝트다. 스위스의 성공적인 ‘타임테이블 기획 시스템(Taktfahrplan)에서 영감을 받아, 철도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열차 운행을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일정으로 운영하려는 구상이다.

도이칠란트탁트는 주요 노선에서 열차가 30분 간격으로 정기적으로 출발하도록 설계한다. 이 시스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빠르고 편리한 환승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주요 환승역에서는 열차들이 상호 연계되어 도착하고 출발할 수 있도록 시간표가 조정된다. 이 시스템을 통해 더 많은 승객이 기차를 이용하도록 유도하여, 도로 위의 차량 수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것이 목표다.

도이칠란트탁트의 구현은 열차시간표만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열차와 인프라의 확대 및 조정이 필요한데, 기존 주어진 인프라 조건에서 열차시간표를 작성해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먼저 열차시간표를 30분 단위로 출발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그 시간표가 구현될 수 있도록 철도의 인프라를 개선,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이치반은 4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선로 및 신호시스템, 열차의 현대화 뿐 아니라 1,800여개의 기차역을 개량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독일 교통부는 독일을 넘어 암스테르담이나 코펜하겐까지 이 시각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다. EU의 철도 경쟁체제 속에서도 협력이 불가피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교통분야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모달시프트로 대표된다. 이산화탄소 배출양이 높은 도로 승용차나 항공기의 수요를 탄소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낮은 철도로 옮겨오는 모달시프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도가 매력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도이칠란트티켓이 운임에서의 매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도이칠란트탁트는 매끄러운 이동과 환승의 매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아무리 KTX가 빨라도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도중역에서 무궁화열차나 버스로 환승하는데, 배차간격이 너무 길거나 열차가 없다면 사람들은 철도 이용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철도망의 확장뿐 아니라 예측가능한 규칙적인 시간표가 없다면, 철도와 버스와 같은 타 공공교통수단 간의 매끄러운 연결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도로에서 철도로의 수요 이전은 불가능하다.

▲독일 철도 및 교통노조인 EVG 간부들과 베를린 DB 본사에서 독일 도이치반(DB)의 경쟁·규제 담당자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김선욱

독일의 철도 및 교통노조인 EVG는 도이칠란트탁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 민간 철도사업자들과의 조율이 힘들다고 말한다. 독일 국내 뿐 아니라 국제노선에서 인기 구간에 들어와 있는 민간사업자들로 인해 선로개량을 위한 투자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국경을 넘어갈 때도 그 쪽의 민간사업자들과의 협업이 어렵다고 말한다. 정시성을 포함한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들이 경쟁이라는 다른 원칙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모달시프트는 철도가 중심이 되겠지만, 철도만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을 위해서는 보다 철도망이 촘촘하게 확장돼야 하지만, 철로가 닿지 못하는 곳은 버스와 같은 공공교통수단이 원활하게 연계돼야만 한다. 이른바 통합적 공공교통망의 필요성이다. 하지만 철도라는 수단 내에서도(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간), 철도와 타 교통수단 간(철도와 버스)에서도 한국의 교통망은 분절적이고 파편화돼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운임으로 적자와 부채에 허덕이다보니 코레일은 끊임없이 ‘수익성 증대’의 압박을 받고 있고, 결국 돈이 되는 고속철도 중심의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 고속철도마저 경쟁체제를 도입한다고 분리시켜 철도망 활용은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은 ‘민자철도관리지원센터’까지 설립해 민자철도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민자사업의 수익 구조는 논외로 하더라도, 독일의 사례처럼 교통부문의 ‘모달시프트’를 구현하는데 있어 향후 이 민자사업자들이 질곡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처럼 정부가 규칙적인 시간표를 작성하고자 할 때 민자사업자가 협의에 쉽게 응할 수 있을까? 전체 철도망의 다이아를 조정하고 시각표를 조정할 경우 민자사업자가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관철할 수 있을까? 관철하더라도 결국 정부가 그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을텐데 그 비용은 민자사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애시당초 고려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 때 가서 기후 위기 재앙 앞에 또다시 비용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을 벌일 수밖에 없다.

VDV(독일 교통회사 협회)에 따르면 독일에서 도이칠란트티켓(Deutschland-ticket) 도입 이후 2023년 6월부터 8월까지 자동차 사용 감소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80만 톤 감소하고, 티켓 도입 이후 대기 오염 수준이 최대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된 티켓의 20%는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구매였다. 도이칠란트티켓은 전국적으로 시내버스, 지방버스, 트램, 경전철, 지하철, 지역특급, 지역 간 익스프레스, 지역열차, 페리(일부)와 민간철도회사가 운영하는 지역열차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반면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의 경우 민자노선인 광역노선 및 신분당선과 GTX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민자로 건설된 노선의 경우 정부와의 계약에 따른 수익 혹은 비용 보전으로 인해 기후동행카드 사용이 가능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보전이 불가피하다.

철도보다 도로, 공공보다 민간투자

모달시프트를 위해서는 생태학적 구조 변화를 허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다만, 사회-생태적 교통 전환은 철도교통과 지역 대중교통이 여전히 매력적일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저렴해야 하며,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여행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회-생태적 모달시프트의 일환으로 정부 차원의 ‘철도 운송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철도 운송 마스터 플랜을 통해 생태학적 모달시프트를 위한 전반적인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철도 외 다른 교통수단의 미래 역할을 결정하는 ‘교통 마스터 플랜이 수반돼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내년도 교통부문 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철도부문은 올해보다 1조원이 감소했고, 도로부문보다 1,980억이 적다. 모달시프트를 위해서는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처럼 인프라 지출에 있어 철도가 도로보다 우선돼야만 한다. 한국은 2024년 처음으로 철도예산이 도로예산보다 많았으나, 2025년 다시 도로예산이 철도예산을 능가하게 됐다.

뿐만이 아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아무런 고민의 흔적이 없다. 이미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민자철도사업의 현실을 외면한 채 민간 재원을 활용해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새로운 민간투자사업을 적극 발굴하겠다는 암울한 얘기만 가득하다. 민간의 ‘창의’를 활용한다고 하지만, 이제껏 민간의 창의는 오직 ‘수익 증대’와 ‘손실 회피’에서만 발휘됐다. 민간의 자본을 활용해 철도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 및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창의성은 발휘될 수 없는가? 인력 중심의 유지보수 업무를 신기술과 첨단장비를 도입하여 안전한 철도환경을 만드는 창의성은 왜 발휘할 수 없는가? 다단계 위수탁 구조를 만들어 이윤을 확보하고 운영 상의 손실 회피에만 적용되는 선택적 창의성인가?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5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의 과업지시서에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모달시프트는 고민조차 보이지 않는다. 2030년까지 수송부문에서 탄소배출량을 37.8%를 줄이겠다고 선언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실행방안은 아직까지 전무한 수준이다. 독일에서 실패로 검증된 ‘수소 열차 도입’에 대한 언급 뿐이다. 이대로 가다간 탄소중립은커녕 6차 대멸종의 파국을 앞당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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