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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자화장 <1>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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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을 선보입니다. 작품은 수행자들이 용맹정진하는 절집이 배경이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자아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편집자]


비로암은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쪽, 등산길에서 30여 분 정도 벗어난 산자락에 있었다. 전문산악인들만 드물게 들를 뿐 일반등산객들은 찾기 힘든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숨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주차장에서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을 거쳐 법계사까지는 그래도 걸어 올라가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그러나 법계사 위쪽 천왕봉 가는 등산길에서 비로암으로 가려면 너덜겅 초입부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너덜겅 돌길까지는 오솔길이 희미하게 보이다가 구상나무 숲속에서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오솔길을 잃어버리면 법계사로 돌아오거나 비로암 가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해야만 했다.

산돌을 쌓아 두른 비로암의 텃밭은 제법 넓었다. 스님들이 산자락을 일군 밭인데 1백 평쯤 되었다. 그런데 작물 수확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감자는 먹을 만큼 수확했지만 냉해 때문에 옥수수나 상추, 배추, 무 등은 시원찮았다. 설상가상, 멧돼지가 나타나 밭을 갈아 엎어버릴 때도 많았으므로 배추나 무는 반드시 암자 가까운 쪽에 심었다. 비로암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멧돼지의 접근을 어느 정도 막아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전기는 호롱불을 켜다가 작년 봄부터 발전기를 설치해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의 전기사용은 해결했다. 선승 법성은 반대했지만 시봉하는 상좌 우멸이 우겼다. 결국 법성의 반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우멸은 무게 48㎏의 발전기를 진주에서 구입해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에서부터 지게에 지고 올라온 뒤 당장 가동했다. 지게질 후유증으로 닷새 동안 몸살을 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멸은 할일을 했다고 자부했다.

법성이 반대한 것은 전깃불이 켜지는 순간부터 암자는 속세와 같아질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법성이 걱정한 대로 암자는 서서히 변했다. 냉장고, TV, 전기밥솥, 전기약탕기, 전화 등이 암자살림으로 들어왔다. 산 아래 암자와 별로 다를 바 없이 바뀌었다. 우멸은 가끔 법성의 눈치를 보면서 불교방송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물론 KBS 같은 지상파방송이나 상업방송은 보지 않았다. 법성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우멸에게 눈총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멸은 그날만큼은 법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암자 골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켰다. 선득한 바람이 불고 잔설처럼 하얀 억새꽃이 나부끼는 날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며칠 전에 입적한 법공의 영결식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우멸은 한때 M사에서 법공을 시봉한 적이 있었으므로 합장하고 나서 텔레비전을 봤다.


입적한 법공은 은사 법성의 사형이었다. 우애가 좋기로 소문난 사형사제 사이인데 웬일인지 법성은 법공의 부고를 받고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멸은 법성이 닳은 무릎연골 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산을 내려가지 않는가보다, 하고 짐작했는데 문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암자 주변에 널려있는 고사한 구상나무 둥치나 참나무 삭정이를 주워 나를 뿐이었다. 법성은 주워온 구상나무 둥치나 참나무 삭정이를 암자 부엌 옆 공터에 직사각형으로 쌓았다. 한여름부터 지금까지 쌓은 나뭇단만으로도 겨울은 충분히 나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우멸은 텔리비전을 보다가 마음이 격동할 때는 합장하곤 했다. 법공의 법구는 M사 법당 앞마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다비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만장을 들고 가는 스님들 중에는 우멸의 도반과 강원 선후배들도 적잖았다.

이윽고 다비장에 도착한 법구에 장작이 쌓여지고 있었다. 법구 앞쪽에는 영정을 든 법공의 손상좌가 섰고, 영결식을 감독 진행한 M사 주지가 연화대 장작더미를 확인했다. 법공의 상좌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며 연화대 속에 안치된 법구 주위를 돌았다. 법공과 마지막 이별이었다. 상좌와 신도들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보였다. 이윽고 사회자가 거화(擧火)를 알리자 문도들이 일제히 외쳤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조이뉴스24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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