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불확실한 미래에도 확고한 꿈을 가진 이 시대 청년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연재 코너 ‘이달의 청년’의 아홉 번째 인물, 청년 강새봄의 얘기를 들어봤다.
일본 대사관에 의거터를 만든 청년이 있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던 핵오염수 방류에 반발해 일본 대사관에 뛰어들었다가 유치장 신세까지 졌다. 청년 강새봄은 그런 대담한 이야기를 운 나쁘게 돌부리에 걸려 한번 넘어졌던 것처럼 넉살 좋게 웃으며 하는 인물이다.
이같이 사회에 만연한 불의를 참지 않고 앞장서는 그는 그저 옳음을 지향하며 완고한 행복을 추구하던 모습에서 성장해 이제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모순으로부터 행복을 찾고 있다. 그런 그가 이토록 심신을 바쳐 활동하는 까닭은 하나다. 절망하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젊음이 만드는 다른 내일’이라는 슬로건으로 한국 사회의 평화, 민주주의,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진보대학생넷’의 전국대표를 맡고 있는 강새봄이다. 20대 후반이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학부생이다. 학생회, 동아리, 대학생 단체까지 보통 회장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허당이다.
Q.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본다면.
나름 철학과에 재학중인 인문학도로서, 인생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 경우에는 대학에 오기 전후로 행복에 대한 생각이 나뉘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는 스스로가 가진 모순들이 정말 싫었다. 사회운동가인 부모님이 가정에서 한 교육과 학교에서의 현실이 다를 때, 어디 가면 새봄이는 알아서 잘 한다는 소리를 늘 들으면서도 바보같은 연애를 할 때,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부정의한 것들이 판치는 뉴스를 볼 때, 옳음을 지향하고 호불호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 문제가 심각할 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소년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입시 성과를 내는 데 원동력이 됐으니까. 하지만 대학에 와서 단순 친목을 넘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다보니, 모순이 가진 힘을 알게 됐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잘못된 점을 마냥 없애는 것이 해결이 아니라 각각의 문제가 왜 정말로 문제인지 깊게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나의 행복 역시 부족한 모습들을 직시하면, 거기서부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슬픔과 분노가 없는 만족감보다는 웃더라도 진심으로 웃고, 울더라도 진심으로 우는 상태가 행복이지 않을까. 여전히 잘하고 싶고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욕심은 있지만,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는 모토 덕에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Q.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지난해 여름, 유치장에 48시간 동안 구금된 경험이 있다. 지금도 내가 한 일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걸면 위법행위일 수는 있지만 헌법적 가치를 위배한 일이거나 사회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24일은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가 처음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전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핵오염수 방류에 반대했지만,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오염수 방류를 홍보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에게든 한국정부에게든 대학생들의 의견을 꼭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 대사관이 있는 건물 로비에서 피켓을 펼치고 대자보를 붙였다. 대사관까지 가지도 않았지만 ‘핵오염수 반대한다!’하면서 외치는 순간 경찰들이 몰려와서 나와 친구들을 잡아갔다. 힘센 사람들은 사람을 피자 도우처럼 돌리고 던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유치장에서는 못 잔 잠을 푹 자고, 열 추적 CCTV가 쫓아오는 공개 화장실을 사용하며 인권침해에 분노하고, 다른 감방 동기(?) 범죄자로부터 오염수 방류 반대를 잘 외쳤다고 칭찬을 받았다.
유치장에 있을 때 고맙게도 우리를 가둔 것이 부당하다고 목소리 내어 준 많은 회원들과 시민들, 친구들은 요즘도 일본대사관 앞을 지날 때 ‘강새봄 의거터’라고 놀린다.
Q.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이사와 동네 탐방이다. 며칠 전 용산구에서 동대문구로 이사를 왔다. 다니는 학교는 서대문구라 완전 동쪽에서 사는 것은 처음이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지내고 있다. 아직 채 짐 정리도 제대로 못했지만 조용한 동네분위기와 저렴한 물가에 앞으로 이곳에서 살 날들을 기대하고 있다. 동네의 맛집이나 공원, 예쁜 곳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동대문구 생활을 재밌게 해보고 싶다. 일단은 ‘흑백요리사’ 보면서 짐정리부터 할 예정이다.
Q. 앞으로 이것은 꼭 해보고 싶다, 버킷리스트 1순위는.
이사를 온 만큼 수영을 시작해보고 싶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는데 시간도 없고 저녁에 매일 음주를 한다는 핑계로 미뤄왔다. 평소에 물놀이도 좋아하고 물에 있으면 왠지 뇌가 팽팽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물이 스스로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꼭 배우고 싶다.
그리고 글쓰기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하고 싶다. 1순위인데 두 개나 뽑았지만… 사회단체 대표 특성상 시위나 기자회견의 발언문을 작성하거나 회원들과 사회 문제에 대해 공부하기 위한 세미나 발제문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소에 깊게 고민하거나 독서로 채워가는 시간 없이 글을 쓰게 되면 알맹이 없는 글이 되는 것 같다. 다양한 문제와 분야에 대해 읽고 쓰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Q.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지닌 고민이 있다면.
요즘 가장 큰 화두는 ‘희망’이다. 곧 10·29 이태원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채 상병 특검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이미 두 차례나 행사했고, 딥페이크 성착취 문제가 불거져도 정치권은 이 문제를 축소하기 바쁘지 누구도 청년들에게 제대로 답변을 주거나 청년들의 이야기를 묻는 이가 없다.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사건들 말고도 인간관계, 주거권, 취업, 군대 등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문제들이 청년들의 절망을 심화시키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겪어야 하는 불평등과 좌절인데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없으니 악순환만 반복된다고 느껴진다. 활동 공간이자 생활 공간인 캠퍼스에서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심고 확산시키고 싶다.
Q.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라 함은 더 많은 사람의 아픔을 끌어안고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0년 후에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공동체와 사회에 필요한 일들에 기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어디든,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Q. 함께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모든 사람이 활동가가 될 수는 없기에, 일상에서 꿈을 찾아 노력하는 같은 청년들을 늘 존경하고 응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청년의 스펙트럼이 있다 보니 각자가 살아가는 세계 밖에 있는 청년의 모습은 잘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나만 해도 고향 친구들과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의 생애 주기와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일상의 희망은 결국 일상에서 만들어가야 하는 만큼, 어려움에 처한 존재에 가끔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용기가 모여야 할 때 함께 힘을 보태주면 좋겠다.
의외로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타인을 도와주면서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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