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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주 일어났던 일을 계기로 쓰게 됐다. ‘제51회 관광의 날’ 기념식이 지난 27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진행됐는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를 했다. 그의 축사 중에 헛웃음이 난 부분이 있는 데 대략 이렇다. “최근 우리 정치권이 한국관광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 데 혹시 아십니까. 왜 우리 굉장히 속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많이 하는 데, 최근 우리 정치권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그런 거 아닙니까.”
물론 김승수 의원의 축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관광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데 앞으로도 국회가 정부와 잘 대처하겠다. 여러분들도 더 힘내 달라”는 당부의 말을 결론으로 이끌어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게 해 한국관광 발전에 기여했다’는 식의 주장은 아무리 헛웃음을 참고 들어도 절반만 맞다. 스트레스를 받은 국민이 여행하는 지역이 어디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한국관광을 즐긴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나. 국내에서 쏟아지는 스트레스를 못 참는 많은 이가 해외로 떠나니까 문제다. 국내관광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대신 외래 관광객들의 한국으로 입국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
이날 ‘관광의 날’에 초대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 국민들 연간 2800만 명이 해외로 여행을 가는데 이들이 해외에서 쓰는 돈은 무려 40조 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2%나 차지합니다.” 반면 그만큼 외국인들은 한국을 찾지 않으니 적자, 즉 관광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부 아웃바운드 전문 여행사나 항공사들이 이익을 보겠지만 우리 국가 전체적으로는 적자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관광적자는 지난 2017년이 역대 최다인 146억 8000만 달러(약 19조 원)이었고 지난해는 98억 6000만 달러(약 13조 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관광산업이 급속히 회복되면서 관광적자도 덩달아 다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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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외에 나가는 대신 해외에서 관광객들이 들어온다면 흑자가 된다. 이날 유인촌 장관은 또 “제가 겁도 없이 올해 2000만명 목표를 설정하고 지금까지 뛰어왔다”며 “앞으로 남은 기간이 석 달이고 이 기간 안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총력을 다해 우리 관광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정부가 올해 목표로 삼았던 ‘외래 관광객 2000만 명 유치’ 목표는 이미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다. 올 들어 7월말까지 누적 외래 관광객은 총 911만명 규모에 그쳤다. 반면 우리 국민의 해외관광객은 1653만 명으로 입국자의 거의 두 배 규모다.
소득이 높아지면 당연히 여행수요도 늘어난다. 다만 해외로 여행을 많이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보다 해외가 낫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외래 관광객이 적다는 것은 또한 다른 나라 관광지보다 우리나라 관광지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올들어 7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167만 명에 그친 반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520만 명에 달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관광 시장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쉬우면 이제까지 못했겠나. 다만 사회전반의 관광에 대한 인식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그렇다.
우선 정부의 역할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관광분야 공약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년여 전의 공약집을 다시 들쳐본다. ‘차박 명소 1만곳 발굴’, ‘제주도에 관광청 설치’ 등 몇 가지가 있다. 이것도 공약이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이후 모두 무시됐다는 점이다. 공약이 나왔을 때 반짝 논란이 됐다가 이후로는 아예 사라졌다.
관광인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한 팬데믹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은 아예 공약집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당연히 실현이 안됐다. 팬데믹에 대처하면서 관광산업이 거의 괴멸이 됐는데 이로부터의 회복은 각자의 책임으로 방치됐다. 이제 누가 국가적으로 사고 할 것인가.
‘관광의 날’ 축사에서 유인촌 장관은 “우리 문화를 알리고 한국경제를 이끄는 전략산업의 역할을 넘어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등 국가사회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법으로 관광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창한 말인 데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1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면서 취임 1년 만에 중도사퇴했던 한국관광공사 사장 직에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후임이 새로 임명되지 못한 것도 정부의 주요한 난맥상이다. 예상 후임자의 ‘낙하산 논란’은 오히려 배부른 소리이기도 하다.
여러분도 찾아보기 바란다. 정부의 발표나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관광강국’이라는 말이 그럴듯하지만 이상하게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K팝·K컬처의 글로벌 흥행 덕분에 ‘문화강국’은 물론이고 ‘콘텐츠강국’, ‘저작권강국’, ‘스포츠강국’ 등은 흔히 쓰이는 데 관광강국이라는 말은 거의 없다. 국민 해외여행객이 외래 관광객의 두 배 가까운 나라에서 관광강국이라고 하기가 어색하기 때문일까.
관광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관광시장의 인프라와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현장의 관광인들이 스스로 ‘잘 먹고 살기 위해서’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도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전자여행허가제도(K-ETA), 공유숙박 등 난제들을 풀어야 관광강국으로의 활로가 보인다. 최근 대한민국 외곽을 잇는 4500㎞ 걷기여행길 ‘코리아둘레길’이 진보·보수 정권을 모두 거치면서 15년 만에 완전 개통된 것은 성공적인 관광인프라 구축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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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 관광객에 대해 ‘사전입국 심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방한해 한일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다. 출입국을 편하게 해서 한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서로 해석된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이미 한국인의 일본 방문은 보편화 돼 있다. 출입국이 편해진다고 일본에 갈 한국인은 더 많지 않다.
반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일본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일본인들이 점차 보수화되면서 국내(일본내)여행에만 머물고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일본과 하나의 여행생활권으로 묶는 방법도 있다. 도쿄 사람이 후쿠오카에 놀러 가는 것보다 서울 오는 것이 더 불편하지 않다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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