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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전쟁 발발 약 1년 만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면서 팽팽하게 맞서던 양측 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따른다. 오랜 기간 대리 세력을 통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오던 이란의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 숙적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은 여세를 몰아 지상전에 나서고 이란 역시 무장 동맹 ‘저항의 축’을 총동원한 보복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중동 지역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7일(현지 시간) 대규모 공습으로 헤즈볼라의 수장 나스랄라를 제거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암살된 지 약 두 달 만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가자 전쟁 발발 이후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 대리 세력의 고위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암살 작전을 펼쳐왔다. 수장 나스랄라의 사망으로 헤즈볼라의 전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1992년부터 32년간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나스랄라는 헤즈볼라를 세계 최고 수준의 비국가 군사 조직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오랜 숙적을 제거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나스랄라의 사망으로 헤즈볼라가 바뀌기를 바란다면서도 헤즈볼라를 겨냥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영상 성명을 통해 “아직 과업은 끝나지 않았다”며 레바논의 잔존 헤즈볼라 세력을 향한 군사적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나스랄라를 제거한 후에도 레바논 국경 인근에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채 지상전 태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레바논 영토 내에서 헤즈볼라와 전투를 벌여 소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헤즈볼라가 수만 발의 로켓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여전히 이스라엘 공격을 시도할 것으로 가정하는 편이 안전하다”며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레바논 침공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중동 전역에서는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양측 모두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양측이 지상전에 돌입하게 되면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악의 경우 헤즈볼라의 요청을 받은 이란이 이란군 파병 등 전쟁에 직접 개입할 경우 ‘5차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28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는 헤즈볼라에 대한 전체 무슬림의 지원을 선언했으며 네타냐후 총리는 “누구든 우리를 때리면 우리는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긴 팔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며 하메네이를 겨냥했다.
다만 이스라엘이 북부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시킴에 따라 레바논 국경 인근 헤즈볼라 거점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지상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동력을 상실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전면전에 나설 경우 전세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워싱턴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하닌 가다르는 “헤즈볼라는 설립 이래 군사 인프라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나스랄라 사망으로 중동 정세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의 휴전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나스랄라 암살이 미국에 좌절감을 안긴 것으로 보이지만 미 고위 당국자들은 양측간 외교적 중재 채널을 되살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WSJ은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공습이 미국의 전쟁 중단 노력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난 수개월간 표류해온 협상 교착을 타개할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한편 중동전 발발 위기에 국제유가는 소폭 상승했다. 27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0.75%(0.51달러) 오른 배럴당 68.1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에서는 이번주 중동 위기가 반영된 유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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