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통일을 전제로 하지 말자는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 국회의원들은 평화통일을 명시한 헌법 정신을 준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7일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의원연구단체 ‘동북아평화공존포럼’은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논쟁, 두 개 국가론’ 주제로 제2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정동영 의원,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한정애‧박정‧민병덕‧이성윤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참석했다.
정동영 의원은 인사말에서 “평화적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라는 관점에서 “폭발력이 강한 ‘두 개 국가론’ 논쟁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오늘 토론회가 진보와 보수 논객들의 논의를 통해 논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여 ‘두 개 국가론’ 논쟁이 한반도 평화구축과 평화통일에 생산적인 방향으로 모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토론회는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사회로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이 발제를 밭고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윤상현 의원, 김병주 의원,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이제훈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우선 고유환 전 원장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나타났던 ‘잠정적 특수관계론’을 부정하면서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이중성을 부정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 나온 이유로 △핵을 보유한 ‘전략국가’의 자신감 반영 △남측으로부터 오는 영향력 차단 △대한민국과 결별하는 것이 외교적 자율성 확보에 유리하다는 점 등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고 전 원장은 “(북한의) ‘영토평정론’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라 비평화적 통일에 집중하겠다는 행동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며 “‘경계 갈등’으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른바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했는데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로 이어지는 단계적 통일 대신 헌법에 입각한 ‘자유의 확산’과 ‘국토회복’을 강조함으로써 사실상 ‘흡수통일’을 공식화한 것”으로 규정했다.
고 전 원장은 그 결과 “이제는 남과 북이 명시적 공존 통일방안을 걷어내고 흡수통일(자유통일)과 영토평정의 정면대결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1992년 한중수교모델을 적용하여 북미 수교, 북일 국교정상화, 남북기본조약 체결 등을 통한 한반도문제 해결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차두현 연구위원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김정은의 자신감의 발로이며 핵무장을 바탕으로 한국을 변화시켜 ‘협력적 두 국가관계’론으로 전환하려는 수순으로 볼 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보수적일 경우 압박을, 진보적일 경우에도 관여 정책(engagement policy)의 침투적 속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김정은의 불안심리를 반영하여 당분간 ‘두 국가관계’ 보다는 ‘적대’에 방점을 둔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는 이미 북한에 대한 법적(de jour) 인정은 아니지만, 사실상의(de facto) 국가급 행위자로서의 인정을 해왔다”며 “통일 지향성을 유지하려 할 경우, 기본적으로는 ‘국가급 관계’지만, ‘민족간 특수관계’ 개념은 유지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차 연구위원은 “북한 정권의 체제나 속성 자체가 ‘적대성’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정책변화를 한다고 해서 ‘평화적’ 두 국가관계가 성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대북 유화 일변도 정책이 지니는 근본적 문제점은 북한의 변화 자체를 사실상 포기하고 북한 정권의 행위를 방기하겠다는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정욱식 대표는 통일독트린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적대적 통일론’으로 김정은 정권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맞불을 놓았다”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한 관계인 ‘구체제(91년 체제)’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지만 국제법적으로 두 개의 국가 관계인 ‘신체제’는 들어서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신체제’를 도모해야 하지만 구체제의 숙원, 즉 평화통일을 영구적으로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며 후세대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남북 특수관계론에 너무나도 많은 국가적·사회적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특수관계론의 폭력적인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사시 무력통일론’이나 조선이 내세우고 있는 ‘전시 무력편입론’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해 두 국가론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는 “북미 정상회담 등 중요 국면에서 주장해왔던 ‘자주권, 생존권, 발전권’ 중 ‘발전권’의 잣대를 들이대면 ‘김정은 신노선’이 언젠가 재조정될 여지가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이래 ‘자유의 북진’ 정책, ‘흡수통일론’으로 적대성을 급격하게 강화하면서 대북‧통일 정책을 국내정치화했다”며 “윤 정부의 대북정책은 윤석열 정부의 지지 기반이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어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토론자로 참석한 윤상현 의원은 “정계 은퇴 후 통일운동에 전념하겠다며 사실상 통일선봉대 역할을 했던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비서실장의 발언 배경이 이상하다”며 “두 국가론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반헌법적이며, 두 국가론은 민족의 이질감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반민족적이며, 북한 주민을 방기한다는 측면에서 반인권적”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두 국가론은 북한 급변사태 시 개입할 여지를 없애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병주 의원은 “남북 간의 적대감을 강화하는 ‘두 국가론’은 결코 우리의 미래를 위한 답이 될 수 없다”며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남북 관계는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평화적 통일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북아평화공존포럼 대표인 정동영 의원은 “처변불경(處變不驚)하고 수처작주(隨處作主)해야 한다. 정세는 항상 출렁거리게 돼 있다. 그럴 때 ‘누가 주인인가’가 중요하다”며 “역대 30년 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진보·보수 정권 일곱 정권을 거치면서 붙들고 왔던 기본 노선이었다. ‘화해협력을 거쳐 국가연합단계’로 가자는 것이고, 북도 동의해서 합의했던 것이고 6.15에서 확인했던 것인데, 이것을 흔들만큼의 근본적 사정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현 상황을 정리했다.
정 의원은 “30년 동안 우리의 ‘1동맹-1기본(남북기본합의서)-3협력(일본 우호, 중국 협력, 러시아 협력)’ 방침은 불과 2년 반 만에 ‘3-1-1 체제’로 뒤집혔다”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과 적대관계, 중국과 러시아와 실질적으로 적대인 ‘3적대’와 ‘1 한미동맹’, 일본이 대외전략의 중심인 ‘1중심’으로 변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30년 동안 부채살처럼 폈던 경제영토는 쪼그라들고 국익은 실종되고 방향은 못 찾고 있다. ‘3-1-1’ 을 ‘1-1-3’으로 되돌리는 것이 앞으로 뚫고나가야 할 방향”이라며 “결국 수처작주(隨處作主), 한반도에서 주인이 되는 일이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오늘 토론회에서 여야가 합의를 이룬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둘째,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헌법정신을 존중한다는 것”으로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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