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A 업체는 영어 단어 ‘클리프(cliff·절벽)’가 들어간 가게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려고 했다. 그런데 특허청이 상표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이 사용하고 있는 이름과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호텔은 B 업체가 먼저 ‘OO 클리프 OO O OOO’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호텔 안에는 술집도 있었다고 한다. 이 호텔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인지도가 높기도 했다.
A 업체는 상표 등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특허심판원을 찾아갔지만 결론은 같았다. ‘유사한 업종에서 한 업체가 먼저 상표 등록을 했다면 다른 업체가 유사한 상표를 등록할 수 없다’는 상표법 규정이 근거가 됐다. 그러자 A 업체는 특허법원에 소송을 냈다.
특허법원은 지난 8월 말 A 업체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 업체가 출원한 상표와 B 업체가 이미 등록한 상표는 일반 소비자의 직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보면 오인·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유사 상표라고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형태로 보면 A 업체 상표는 클리프라는 단어와 야자수 그림이 합쳐진 방식이고 B 업체 상표는 단순히 클리프라는 단어와 다른 단어가 함께 나열된 방식이었다. 또 클리프라는 단어가 서로 겹치기는 하지만 두 상표 모두 클리프 부분만으로 불리지 않고 각각 하나의 묶음으로 불린다는 게 재판부 평가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특허심판원이 A 업체의 상표 등록을 받아주지 않은 결정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해 A 업체와 특허청이 모두 불복하지 않으면 사건은 종결이 됐다.
이런 식으로 전국 유명 관광지에 있는 술집, 호텔 등이 가게 이름을 놓고 특허 소송을 벌이는 일은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부산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C업체는 2022년 영어 단어 ‘베이(bay·만)’와 ‘클럽(club)’을 이름에 넣었다. 그런데 경남 남해에 ‘베이’ ‘클럽’이 포함된 이름으로 D 업체가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에 C 업체는 자신의 호텔 이름이 D 업체의 호텔 운영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고 특허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은 작년 11월 “업종과 이름이 유사하다”면서 C 업체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C 업체가 같은 취지로 소송도 냈지만 특허법원도 역시 C 업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특허법원은 “두 업체가 운영하는 호텔 이름에서 영문자 색상, 띄어쓰기 여부에 차이가 있지만 글씨체, 구성 문자가 동일하다”면서 “일반 소비자의 교육 수준에 비추어 보면 두 호텔 이름이 모두 ‘베이 클럽’으로 불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C 업체는 특허법원의 판결을 받은 뒤 호텔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유명 관광지에서 가게 이름은 해당 지역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다면 막대한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후발 업체가 선행 업체의 상호를 모방한다면 법적 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현직 판사는 “가게 이름을 상표로 등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단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한 뒤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지도를 높여둔 상태에서 상표 등록이 거절되면 소송을 통해 가게 이름을 계속 유지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관광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여성 E씨는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경우를 예상해 상표를 미리 등록해 두면 상표 값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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