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엔 가격표가 붙는다.” 경제 칼럼리스트 에두아르도 포터의 저서 ‘모든 것의 가격’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주위에 존재하는 ‘생물종’도 마찬가지다. 보잘 것 없는 풀벌레와 잡초, 새, 동물들 모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 노력은 부담스럽다. 몇몇 이들은 자연 도태된 종을 보호해야 하는지 반문한다. 그러나 멸종위기종 보호와 복원은 어긋난 톱니바퀴를 다시 끼워 넣는 일이다. 우리가 멸종위기종을 지키고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고객’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자주]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9월, 국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영화 한 편이 있다. 판다 ‘푸바오’의 이야기를 담은 ‘안녕, 할부지’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3일 기준 안녕, 할부지는 누적 관객수 23만7,915명을 돌파했다. 누적매출액은 22억983만2,039원을 달성했다.
흥행이 어려운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특성, 이미 유튜브 콘텐츠로 여러 번 소모된 내용임에도 이 정도 관객을 동원한 것은 ‘푸바오 팬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TV콘텐츠 등 2차 수익이 남아있는 만큼 제작비 회수도 긍정적으로 전망된다.
푸바오의 인기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미드타운파이낸셜(Midtown Financial) 전광판에는 푸바오를 보호해야 한다는 광고도 게재됐다. 이 광고는 푸바오 온라인 팬커뮤니티 ‘바오패밀리 갤러리’의 누리꾼들의 모금으로 이뤄졌다.
당시 바오패밀리 갤러리 누리꾼들이 모금한 금액은 총 3,974만5,716원. 약 780명의 팬들이 참여했다. 이 중 타임스퀘어 광고로 사용된 비용은 3,850만원이었다. 한 사람이 5만원을 사용해 푸바오를 지키기 위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 판다 보호에 숨은 경제적 이면
사람과 돈을 움직일 수 있는 판다의 힘, 이것이 중국 판다 임대 정책의 주 목적 중 하나다. 1941년 판다외교를 시작한 이후 중국 정부는 큰 정치·경제적 효과를 얻어왔다. 이른바 ‘판다노믹스(Panda와 Economics의 합성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상대국에서도 비싼 임대료를 주고 판다를 데려올 가치가 충분하다. 높은 인기에 판다를 보유한 동물원은 수익이 달라질 정도다. 대표적 사례는 일본 우에노동물원의 판다 ‘샹샹’이다. ‘우에노히메(공주)’라 불리던 샹샹은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일본 간사히대 연구팀에 따르면 샹샹의 경제효과는 600~650억엔(한화 약 5,700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영국 에든버러동물원에서 12년 간 살아온 판다 ‘티엔티엔’과 ‘양광’도 막대한 수익을 안겼다.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판다 보유 후 에든버러동물원의 방문 관광객은 한 해 약 400만명 증가했다. 이를 수익으로 환산하면 연 500만파운드(약 88억원)을 판다가 벌어온 것이다. 자신의 임대료(75만파운드, 13억원)에 7배 가까운 ‘밥값’을 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푸바오 역시 막대한 경제효과를 낳았다. 푸바오를 사육하던 에버랜드의 운영사인 삼성물산은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10조7,960억원, 7,120억원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5.4%, 11.1% 증가한 수치다. 특히 에버랜드가 포함된 리조트 부문 영업이익은 21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0%나 증가했다.
판다의 경제효과는 자신들의 종(種) 복원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 정부가 현재 교류 국가서 받은 판다 임대료를 판다 개체 수 증진 및 보호 연구에 투입하고 있다. 중국 연구기관들은 이를 판다 임대료로 뒷받침한다.
‘중국국가임업초원국(国家林业和草原局)’이 지난 4월 발표한 판다보호연구센터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판다 보존 및 복원 사업을 위한 센터 운영비는 약 2억4,001만위안, 한화로 약 456억원 규모다. 해당 예산안 기타 수익 부문에는 ‘임대 수익’이라는 항목도 명시돼 있다.
◇ 푸바오, 헤어질 수밖에 없던 운명
커다란 경제적 이익이 걸린 만큼 중국이 판다 임대 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푸바오의 동생 루이바오와 후이바오, 부모인 러바오와 아이바오도 결국 중국으로 떠나야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판다들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판다들은 만리타향의 중국으로 가야만 한다.
물론 중국 판다 임대 정책이 폐지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원래 해외의 판다가 무조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 정부는 판다를 외교의 일환으로 외국에 선물했다. 그러나 1984년, 선물 방식이었던 판다외교는 ‘임대 방식’으로 전환됐다. 1991년부터 △장기 임대 10년 안팎 △현지에서 출생한 아기 판다 4년 내 중국 송환 △1년에 100만달러 대여료(약 12억원, 한 쌍 기준)라는 기준 아래 판다외교를 진행 중이다.
판다외교가 임대 방식으로 전환된 근거는 ‘멸종취약종 판다의 보호’다. 핵심 근거가 된 국제조약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다. 1975년 발효된 이 조약은 희귀야생동식물종의 거래를 엄격히 규제한다.
CITES의 규제대상은 5,000여종의 동물과 2만8,000여종의 식물 등 약 3만3,000종의 생물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취약종(VU)’에 속하는 판다도 여기에 포함된다. 국제 조약상 명시된 내용 때문에 세계 각국에선 중국의 판다 반환 정책에 대해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우리가 푸바오를 눈물로 떠나보낸 이유는 멸종취약종이기 때문이다. 만약 판다가 개체 수가 많은 동물이었다면 ITES에 접촉될 가능성이 적었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판다 임대 정책의 근거도 약화시켰을 것이다. 또한 국내로 푸바오의 신랑감을 데려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도 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오지혜 고려대학교사회공헌원 임팩트전략센터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사실 중국이 판다를 멸종위기종 혹은 멸종취약종인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판다외교의 본질은 중국에만 서식하는 판다를 활용해 경제적·외교적 이득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중국 경제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 단순 판다의 임대로 받는 수익은 미미한 수준일 것”이라며 “하지만 판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동물인 만큼 중국의 부정적 이미지의 중화 등에서 경제적 효용성을 찾는데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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