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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지 않은 홍콩]④“아스트라제네카·지멘스와의 협업도 이곳 덕분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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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시아의 금융·경제 허브(hub)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려왔던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이후 빚어진 중국 본토와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외국 자본이 줄줄이 홍콩을 이탈하면서 국제 사회에선 머지않아 싱가포르가 홍콩 대신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다소 이르거나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조선비즈는 다양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홍콩의 객관적인 현 위상과 내일에 대해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홍콩에는 기술 스타트업을 선정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기관인 사이버포트가 있다. 그런데 선정 기준을 조금 더 기초 연구와 과학적 혁신에 중점을 두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또다른 정부 산하 기구도 있다. 바로 홍콩 과학원(HKAS)이다. 디지털 기술 기반 경제나 스마트 시티, 핀테크 등 혁신 스타트업에 중점을 두는 사이버 포트와 다르게 홍콩 과학원은 기초 과학 및 기술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육성 스타트업을 선정한다.

홍콩 과학원의 육성과정은 사이버포트와는 조금 다르다. 사이버포트가 2년에 걸쳐 스타트업의 인큐베이션과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마지막 단계로 상장까지 돕는 데 비해 홍콩 과학원은 4년에 걸쳐 연구를 촉진하고 교육 및 정책 컨설팅을 지원한다. 물론, 두 기구 모두 스타트업에게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하기 때문에 육성 스타트업으로 선발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서 만난 나창주 탈로스 메드 테크 대표./탈로스 제공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서 만난 나창주 탈로스 메드 테크 대표./탈로스 제공

탈로스 메드테크(Talos MedTech)는 한국계 스타트업 최초로 과학원 유망 스타트업 육성 과정 바이오 부문에 선정되어 과학원의 연구단지인 사이언스 파크에서 기술을 연구하는 바이오테크 기업이다. 2020년 8월 나창주 대표와 유승훈 박사가 공동 창업한 바이오 인공지능 회사인 탈로스는 그 해 5월 홍콩 투자청이 주관하는 아시아 스타트업 대회에서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이후 8개월 간 홍콩 과학원의 심사위원회의 까다로운 기술 검증 과정을 거쳤고 1년 여 만에 유망 스타트업 육성과정에 선정됐다.

나 대표가 처음 홍콩행을 택한 것은 자의는 아니었다. 1993년 LG전자의 홍콩 주재원으로 발령이 난 그는 처음에는 잠시 머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홍콩 생활이 길어졌고, 당시 중국 경제의 성장 가능성을 인지하게 되면서 중국과 중국을 통하는 관문인 홍콩에 흥미를 갖게 됐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중국의 국영기업들이 민영기업으로 전환되면서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느꼈다고 나 대표는 설명했다.

탈로스는 2020년 8월 나창주 대표와 유승훈 박사가 공동 창업한 탈로스는 방사선 암 치료의 진단부터 치료 계획, 예후 예측까지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는 바이오AI 기업이다. MRI 이미지를 사용하여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밀한 암진단을 가능하게 하는 솔루션을 연구 중이다. 기존에 암을 진단할 때는 CT와 MRI를 모두 사용했지만 CT의 경우 방사선 노출이 많아 환자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데, 탈로스의 솔루션은 MRI만으로도 CT수준의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해 방사선 노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탈로스의 바이오AI 솔루션에 대한 설명./탈로스 제공
탈로스의 바이오AI 솔루션에 대한 설명./탈로스 제공

AI 솔루션은 진단 뿐 아니라 치료와 예후 예측에도 쓰인다. AI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의사는 환자의 암세포 위치와 크기를 자동으로 파악하고 최적의 방사선 치료 경로를 계획하는데, 이는 방사선 치료 계획(Radiation Treatment Planning, RTP)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나 대표는 “탈로스의 목표는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암 진단부터 치료까지 모든 단계를 자동화하고 정확하게 진행해 환자에게 더 적은 부작용과 더 높은 생존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탈로스는 딥러닝을 활용해 MRI이미지에서 CT와 유사한 정보를 추출하는 SCT(Synthetic CT)도 개발 을 거의 마치고, 충북대 의대와 실증 연구를 진행 중이다. SCT는 MRI 데이터를 학습해 CT와 비슷한 정보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내년부터는 실제 사용을 위한 인증을 신청할 계획인데, 일단 AI가 들어간 인증은 데이터 비용을 포함해 임상 검증 과정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에게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벅찬 부분이다.

나 대표는 이런 부분에서 과학원의 지원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홍콩 과학원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위해 최대 129만홍콩달러(약 2억원)의 시드펀딩을 기술 개발과 연구, 사업 확장 비용으로 제공하며 이후 혁신 기술 펀드(Innovation and Technology Fund·ITF)를 통해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프로젝트의 범위와 중요도에 따라 수백~수천만 홍콩달러까지 제공된다.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서 만난 나창주 탈로스 메드 테크 대표./탈로스 제공
홍콩 사이언스 파크에서 만난 나창주 탈로스 메드 테크 대표./탈로스 제공

나 대표는 홍콩 과학원을 한국의 대덕 연구단지로 비유했다. 다만 훨씬 규모가 크고 지원과 자금이 많으며 조금더 상업화와 가깝다는 점은 다르다. 사이언스파크에는 1200개 이상의 기업들과 1만2000명 이상의 R&D 인재가 모여 있다. 또한 1000억원 이상의 자산은 운용하면서 과학원이 육성하는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과학원의 육성 프로그램 대상 스타트업으로 선정되기 위해서, 또 선정된 이후에도 각 기업들은 기술 연구에 집중하고 성과를 보여야 한다. 나 대표에 따르면 과학원이 회사를 검증할 때 경영의 투명성 등은 전적으로 회사에 맡기고 믿는다. 지원금을 어떻게 썼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간섭도 거의 없다. 다만 과학원이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기술이다. 나 대표는 “회사가 설정한 마일스톤에 맞게 기술이 나오고 있는지, 어느정도로 달성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한다”며 “마일스톤을 기준으로 한번 검증하는데 같은 내용을 무려 3개월 정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어렵게 과학원 육성 기업이 된 후 가장 도움을 받은 것은 기술 개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큰 기업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네트워킹이었다고 나 대표는 설명했다. 탈로스가 개발하고 있는 암 진단 AI 솔루션은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시키는 게 핵심인데,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사들을 과학원을 통해 만났다는 것. 그는 “과학원은 네트워킹을 도와 많은 바이오 및 IT기업들이 여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를 만들어준다”며 “스타트업과 체급차이가 많이나는 아스트라제네카(AZ), 지멘스,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기업들과도 협업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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