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텔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는 등 구조조정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인텔은 올해부터 파운드리 사업부 재무 실적을 별도로 발표해 왔는데 이를 완전히 분리해 독립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수장에 오른 후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은 지난 2년간 250억달러(33조3000억원)를 투자했다. 하지만 선두업체의 기술력을 따라잡기엔 격차가 컸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 부진 영향으로 올해 2분기에만 16억달러(2조1300억원)의 대규모 영업 적자를 냈다.
인텔의 파운드리 분사는 본업인 서버·PC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에서 경쟁력 하락을 더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파운드리 사업 역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자금을 수혈해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매각이 아닌 분사라는 인텔의 이번 판단이 자국 중심 공급망을 노골적으로 강화하는 미국 정부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엔비디아, AMD, 퀄컴 등이 인텔 파운드리의 잠재 고객이 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초에 대형 고객사 유치가 가능했다면 인텔이 분사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텔의 칩이 엔비디아, AMD 등에 철저히 외면받으면서 분사를 통해 배수진을 쳤다는 주장이 합리적이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분사는 같은 종합반도체회사(IDM)인 삼성전자에 경종을 울린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파운드리 분사는 꾸준히 거론된 적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대만 TSMC의 모토처럼 독립성을 강조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견해였다.
결과적으로 이런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현재도 이를 추진하는 내부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인텔과 삼성전자의 다른 판단이 기업 문화의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경영 실패를 인정하고 빠르게 리스크 대응에 나선 인텔과 달리 모험보다는 기존 전략을 유지하려는 삼성 경영진의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특히 파운드리 분사는 2019년 당시 ‘2030년 내 시스템반도체 분야 1등 목표’를 내건 이재용 회장의 경영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사에 나서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고객사를 대상으로 파운드리, 메모리, 패키지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기업’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같은 삼성 파운드리의 ‘턴키 전략’은 파운드리 기술력이 보장됐을 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기존 메모리 사업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실상 인텔과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있는 셈이다.
파운드리 사업부가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 기존의 대규모 투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정도 삼성전자의 현상 유지 의지를 뒷받침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인텔은 본사 자원 활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파운드리로 더 큰 손해를 입기 전에 분사가 필요하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반면 삼성은 당장 파운드리 사업의 홀로서기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경영 문화 측면에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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