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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새 사람 만나는 건 스트레스? 새 사람이 놀 거리, 일거리 가져다 줘요”

서울경제 조회수  

‘강원도 강릉 출생의 꿈꾸는 여행자’

‘성격유형(MBTI)은 새로운 일 벌이기 좋아하는 활동가 유형(ENFP)’

출생지, MBTI에 이어 인생 2막의 구상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Notion(노션·협업 소프트웨어) 링크가 문자로 도착했다.

중장년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활용이 어려울 수 있는 노션으로 자기소개를 보내온 이는 인터뷰가 약속돼 있었던 최종원(65) 씨. LG히다찌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한 그는 지난 2015년 퇴직 후 한 번도 어렵다는 재취업을 두 번이나 이뤄냈다. ‘인생 2모작’의 재취업을 모두 ‘관계’로 이뤄냈다고 말하는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중장년의 인생 2모작을 돕기 위해 중장년 커뮤니티 ‘꿈꾸는요새’도 결성했다는 그를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은퇴 후 새 사람 만나는 건 스트레스? 새 사람이 놀 거리, 일거리 가져다 줘요”
라이프점프와 인터뷰하고 있는 최종원 씨. 정예지 기자

최 씨는 1986년 금성사(현재 LG전자)에 입사했다. 같은 해 창립 멤버이자 개발자로 LG히다찌에 합류했다. 입사 23년 후인 2009년, 그는 개발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대표이사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입사 당시 사장님이 미국에 계셨던 분이었는데, 미국에서는 통계학이 인기를 끌었나 봐요. 사내 1호 벤처를 누구에게 맡길지 이력서를 훑어보다 통계학을 전공했던 저를 발탁하셨죠. 그렇게 사내벤처를 한번 하고 나니 마케팅, 전략기획, 영업 등으로 직무가 순환됐어요. 개발 직무에만 머물렀다면 할 수 없는 경험이었지요.”

2015년 LG히다찌에서 55세에 은퇴한 그는 2년의 공백 후 2017년 한 의료재단에 총괄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고선 2021년 8월, 두 번째 은퇴가 찾아왔다. 연이어 ‘재취업’해 현재는 강남취창업허브센터의 센터장으로 있다.

그에게는 센터장 외에 다른 직함이 또 있다. 중장년 커뮤니티 ‘꿈꾸는요새’의 리더다. 꿈꾸는요새는 중장년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공유하는 ‘교육’, 취미를 나누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소그룹 활동’ 그리고 비즈니스 연결, 사회 공헌활동 등을 통해 중장년이 교류하도록 돕는 모임이다.

“은퇴하면 동창회 말고는 갈 만한 커뮤니티가 없어요. 과거의 인연을 만날 때면 ‘옛날에 우리가 뭐 했는데’, ‘걔는 어떻게 지내더라’ 같은 얘기만 나누면서 과거에 머무르게 되지요. 제가 지금 만나는 사람 중 60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10% 정도밖에 안 돼요. 많은 은퇴자가 ‘나이 들어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건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지난해 7월 지인 20명을 모아 시작한 모임은 1년이 지난 현재 200여 명으로 늘었다.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이룬 결과다. 현직에 있는 40대부터 인생 2모작을 꿈꾸는 70대까지 참가자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모임에는 평균 40~50명이, 많을 때는 90명까지도 모인다.

“은퇴 후 새 사람 만나는 건 스트레스? 새 사람이 놀 거리, 일거리 가져다 줘요”
꿈꾸는요새 8월 모임에 참가한 중장년들. 정예지 기자

“커뮤니티가 일거리, 놀거리 만들어요”

일자리나 교육 등 중장년의 다양한 관심사 중 그가 ‘커뮤니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력을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커뮤니티’와 ‘관계’의 결과물”이라는 최 씨. 그는 첫 은퇴 후 10년에 걸친 이력을 읊어나갔다.

“2015년 첫 은퇴를 맞을 때는 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막상 은퇴하면서 공동체를 벗어나니 외롭기도 하고, 일상이 익숙하지 않았죠. 제가 생각했던 은퇴와는 달라 충격을 받았죠.”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간을 메워보려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봉사도 하며 지내던 그에게 한 지인이 손을 내밀었다.

“은퇴하고 좋은 일 하겠다고 봉사 단체에 들어갔는데, 멤버 중에는 어느 병원의 이사로 있는 분이 계셨어요. 그 분에게 일자리를 제안 받아 2017년부터 한 병원의 총괄 대표로 일하게 된 거예요.”

두 번째 은퇴는 4년 뒤인 2021년에 왔다. 이번에는 은퇴 생활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강원 양양군의 한 어촌마을에 들어가 반려견과 개울가에서 놀고, 메밀전을 지져 먹으며 시골 생활을 즐겼다. 그는 이 시기를 “직업인으로 산 30여 년간 맛보지 못한 자유를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생활도 6개월 만에 청산했다.

“9년 전 중국의 한 교회에서 마주쳤던 청년이 성장해서 ‘오픈놀(커리어 플랫폼)’ 대표가 됐더라고요. 같이 일 해보자 손을 내밀어 오픈놀 고문으로 가게 됐어요. 어촌에서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스타트업·청년 코칭 쪽에 뛰어들게 된 거지요.”

꿈꾸는요새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가 관계를 통해 인생 2막, 3막을 펼친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 은퇴 후 새로운 사업에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 건강한 취미생활이 공유되는 곳, 직장 생활 동안 쌓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함께 나누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그 고민이 꿈꾸는요새를 시작한 배경이다.

“은퇴한 중장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저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이거 해볼까’, ‘저건 어떨까’ 하며 풀리는 게 일이지요. 성장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면 놀 거리도, 일거리도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은퇴 후 새 사람 만나는 건 스트레스? 새 사람이 놀 거리, 일거리 가져다 줘요”
지난 8월 꿈꾸는요새 모임을 이끌고 있는 최종원 리더. 정예지 기자

인생 2막 도약 위해선 ‘자기 전환’ 중요

최 씨처럼 사람들 속에서 일거리를 찾는 등 인생 2막의 기회를 스스로 열어가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최 씨는 ‘자기 전환’을 강조한다.

“나이가 들수록 전환, 즉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IT 직종에서 의료, 창업 쪽으로 넘어왔는데 소득은 줄었지만 재밌어요. 내 과거를 우려먹지 않고 계속 공부해요. 자기계발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갉아먹는 것과 같아요.”

그는 “노션이 최고”라며 평생을 써 온 한글, 워드 프로그램보다 노션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블로그를 운영한 지는 10년이 넘어 누적 조회수가 60만 회가 넘는다. 어촌에서 지낼 때는 ‘그저 심심해서’ 드론과 영상 편집을 배워 반려견과 함께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등 새로운 기술의 배움과 적용이 일상화됐다.

이렇듯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면 작은 수입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관계가 일거리를 물어오기도 한다.

“예상도 못했던 사람들이 제게 일거리를 만들어 줬어요. 선한 일을 하고 관계 속에 신뢰를 쌓으니 일이 생기더군요. 인생의 전성기는 40~50대고, 60대부터는 서서히 내리막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65살이 돼보니 지금이 꼭 전성기 같아요.”

퇴직을 한 지 10년 차가 된 그는 돌고 돌아 다시 현역이 됐다.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할 일은 언제든 또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75세, 80세까지도 전성기가 될 수 있는 거죠.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일 수도 있어요. 꿈꾸는요새에 나오세요.”

서울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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