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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한다면 그곳이 포르말린 뿌리는 ‘양식장’이 아니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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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장에서 포르말린 뿌리는 작업을 하다 한국살이 10여 년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칸 모바실 씨, 그는 이주노동자로는 처음으로 백혈병으로 인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칸 씨에게 현재 몸 상태를 물었더니, “좀 나았다”면서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공단의 산재 인정을 받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은 지 1년 4개월, 개인적인 치료 기간까지 포함하면 3년을 훌쩍 넘겼지만 집 앞 산책 등 일상생활조차 힘에 부친 듯했다.

“누워 있으면 안 아파요. 일어나면, 잠에서 깨면, (통증이) 몸으로 올라와요. 힘들어요. 몸에 100킬로그램(kg) 얹힌 것 같이 무거워요. (아직) 힘 안 돌아왔어요.”

칸 씨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알씩 먹는 약 외에도, 백혈병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상승 억제제를 복용한다. 또 산책 등 외출 시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지나치게 나 다한증 약을 복용하는데, 이날도 다한증 약을 먹고 왔다고 했다.

“인자(‘이제’의 사투리) 그냥 보이는(만나는) 사람(에게) 다 이야기해요. ‘몸이가 안 좋아요. 백혈병 걸렸어요’ (하고). 밖에 나가면 심장(이) 좀 많이 힘들어요. 그것 때문에 콜레스테롤 약 먹어야 해요.”

칸 씨는 그동안 아파도 일을 했다. 몸에 종기가 나도 스스로 처치하며 일을 했다. 그는 코로나19 시기 마지막 일터였던 굴 양식장에서 일할 때(2019년 11월~2020년 10월) 그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팬데믹 여파로 공항이 폐쇄돼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마지막에 일할 때 그냥 힘이 다 빠졌어요. 몸에서 힘 많이 빠졌어요. 나 계속 그냥 누워 있어요, 자고 있어요. 그냥 안 하고 싶었어요. 계속 힘들어, 일 안 하고 싶었어요. 쉬고 싶었어요. 이야기 계속했어요. 일 끝나면 그냥 나라(고국에) 갈래요. 사장에게 얘기해서 그냥 2개월 쉬었어요. 인천공항에 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비행기 못 갔어요(탔어요).”

칸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을 할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온몸에서 열이 났고, 열이 난 만큼 땀이 났으며, 땀과 함께 기운도 빠졌다. 병원 약도 소용없었다.

“저 약 때문에 다 아팠어요. 입안도 다 아팠어요(헐었어요). 계속 배 아파 있었어요. 이렇게 여기저기. 병원에서 약 줬어요. ‘그냥 먹으면 돼요’ (하고). (그런데) 먹으면 몸살 많이 났어요. 안 먹으면 괜찮아. 약 먹으면 몸살(열이) 올라가요. 계속 내가 아파 있었어요. 멀미도 와요. 밥도 안 먹고 싶고 힘도 빠졌어요.”

집과 병원만 간신히 오가던 칸 씨는 고민 끝에 고국의 한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해 자신의 증세를 말했고, 선생님은 ‘백혈병 증상이라며 검사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백혈병, 암이라는 말에 칸 씨는 큰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화순전남대학교병원을 찾아갔다. 그렇게 그는 낯선 땅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대한민국이 발행한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한국에서 일한 지 10여 년 만이었다.

▲ 파키스탄에서 온 칸 모바실 씨. ⓒ프레시안(이명선)

“‘포르말린’이라는 말에 ‘이거다’ 싶었다”

칸 씨에게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자,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행님이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 칸 씨가 ‘행님(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류인근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 부장이다. 나이는 칸 씨가 류 부장보다 많지만, 칸 씨는 인터뷰 내내 류 부장을 ‘행님’이라고 불렀다.

칸 씨의 사연은 광주 시민단체인 ‘유니버설문화원’을 통해 류 부장에게 전달됐다. 유니버설문화원은 유학생과 이주민의 한국 생활을 돕는 곳으로, 바수 무쿨 원장(인도 출신 한국인)은 류 부장과 함께 칸 씨가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전 과정을 함께했다.

류 부장에 따르면, 칸 씨는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석 달 후(2021년 4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산재 신청서를 접수했다. 알음알음 알게 된 브로커에게 몇십만 원을 쥐주고 접수한 신청서였지만, 근무 이력 같은 기본적인 내용조차 없었다.

“처음 만난 날 여러 가지 질의를 했어요. 밤새 진짜 샅샅이 다 훑었습니다. 그동안 어디서 일했고 무슨 화학물질을 썼고 등. 그 와중에 ‘포르말린’이라는 말이 딱 나왔어요. 그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변호사와 산재 신청서를 새로 작성해 그해 7월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에 접수했습니다.”(류인근 부장)

칸 씨가 다룬 포르말린(CH2O)은 양식업자들이 1990년대부터 물고기 기생충 구제제(구충제)로 임의로 사용하기 시작한 독성 화학물질이다. 2006년 농림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현 농림축산검역본부)이 수산용 포르말린 5개 제품을 허가하면서 2021년 8월 현재 11개 사에서 11개 제품이 유통·판매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산용 포르말린은 산업용 포르말린에 비해 독성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산용 포르말린은 ‘포름알데히드(HCHO) 35~38% + 메탄올 5~13% + 물’, 산업용 포르말린은 ‘포름알데히드 37~40% + 메탄올 10~15% + 물’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사용량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수산용이나 산업용이나 위험성은 비슷하단 얘기다.

▲ 칸 모바실 씨가 일했던 제주의 한 광어 양식장. 카카오맵으로 확인했다.
▲ 칸 모바실 씨가 일했던 광주의 한 장어 양식장. 카카오맵으로 확인했다.

포르말린을 사용할 때는 방독 마스크와 특수 장갑 등을 착용해야 하지만, 칸 씨는 이런 장비들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치어의 성장을 위해 햇빛과 바람이 차단된 비닐하우스에서 한여름에는 면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작업하곤 했다고 했다.

“옷도 그냥 이렇게, 그냥 이렇게 (입고 일했다). 가슴장화(방수 부츠 또는 발에서 허벅지, 가슴까지 확장된 바지) 신어도 날씨 더우면 이 시간(오후 2~3시께) 그냥 반바지 (입은 채로) 슬리퍼 해서(신은 채로 했다). 장갑도 안 해요. 그냥 물 계속, 물 (속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장갑 안 돼요. 그냥 이렇게 (맨)손으로 (했어요).”

포르말린이 칸 씨의 백혈병 발병 요인 중 하나라는 심증은 있었지만 인과 관계를 밝히기는 쉽지 않았다.

류 부장과 바수 무쿨 원장은 칸 씨의 산재 인정을 위해 인적사항·재해발생 경위·의사소견서와 같은 자료 정리, 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조사 과정 동반 및 추가 진술을 위한 연구원 방문 등의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칸 씨의 첫 일터였던 제주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이주노동자를 만나 작업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지만, 약속 당일 그 이주노동자가 나타나지 않은 일도 있었다.

해가 바뀔수록 칸 씨의 증세는 더 나빠졌다. 한 달 140만 원가량의 병원비·월세·식비 등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도 갈수록 힘들었다. 칸 씨는 하루 두 알 분량을 2~3일에 한 알씩 나눠 먹거나 싼 복제약(카피약)을 먹으며 겨우 버텼다. 류 부장과 바수 무쿨 원장은 광주를 포함한 전국의 시민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러 지난해 4월 28일 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산재 신청 후 1년 9개월, 661일 만이었다.

류 부장은 칸 씨에게 “제가 칸에게 전화했어요. ‘산재 됐어요’ 하고. 그때 무슨 생각 했어요?”라고 물었다. 칸 씨는 “그냥 고마웠다”고 했다. 사실 칸 씨는 산재 인정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 난 생각 안 했어요(기대 안 했어요). 외국 사람은 산재 안 (해)줘요.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그냥(다들) 이야기했어요. ‘그냥 나라 가요(고국으로 돌아가요). 산재 안 나와요.’ ‘(산재 인정받기) 힘들어요. 시간 많이 걸려요.’ 나 생각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 얘기했어요. ‘나라 가요, 그냥. 여긴 (산재) 안 나와’ (하고). 그런데 행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공단 조사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0년 10월부터 1년 동안 제주의 광어 양식장에서 일했으며, 2018년 6월부터 9월까지는 담양의 장어 양식장에서 일했다. 두 곳 모두 포르말린을 사용했다. 공단은 칸 씨가 일했던 광어 양식장에서 18리터(ℓ) 용량의 포르말린을 매월 3.6통씩 사용했으며, 장어 양식장에서도 4개월 동안 18리터 용량의 포르말린 25통을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인이 근무한 양식장에서 포름알데히드 사용이 확인되고 작업환경 측정 결과 단기 고농도 노출 기준에 근접하거나 초과한 노출이 있었다”며 “포름알데히드는 작업 양상과 최대 노출량에 의해서도 백혈병의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고 신청인의 경우 평균 (백혈병) 발병 연령보다 낮은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류 부장은 칸 씨가 이주노동자로는 처음으로 백혈병 산재 인정을 받았지만,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거나 양식장 포르말린 사용에 제재를 가하는 등 후속 활동이 미비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양식장 포르말린에 의한 백혈병은 전례 없던 일이었고 산재로 승인받을 수 있느냐가 눈앞의 큰 문제였다”며 “오랜 기간을 버텨 산재 승인이 되고 나니 사업주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얘기는 미처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식장 사업주들은 효과 좋은 기생충 구제제인 발암물질 포르말린을 계속 쓸 텐데, 이에 대한 모니터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시민단체인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가 지난 2021년 8월 칸 모바실 씨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굉장한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요”

칸 씨의 고국에는 부모와 형제, 부인과 아들 등 스무 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가족들 중 부인만 자신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는 백혈병이나 암에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생각한다며 부모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리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암 치료, 조금 많이 비싸요. 우리나라 암 치료, 많이 비싸요. 우리나라 보험 한 개밖에 없어요. 그냥 치료비 비싸요. 암 걸리면 그냥 사람 돌아가요. 너무 부자 사람 있으면 그냥 괜찮아요. 외국, 다른 나라 가면(가서) 치료하면 (되니까). 돈 있으면 (외국) 가요. 우리나라에 있으면 그냥 죽어요. 2개월 3개월 만에 죽어요. 약 없어요. 인자 지금 나 약 먹으면(먹는 약도) 우리나라(에는) 없어요.”

한국에서 병을 얻어 투병 중인 칸 씨의 한국살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유일한 생존(生存) 방법이 됐다. 그는 백혈병 치료 후에도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양식장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기 공장 일 하고 싶어요. 저기 저쪽 일 많이 힘들어요. 바다 쪽으로, 수협 쪽으로 너무 힘들어요. 저 안 가요(안 가고 싶어요).”

칸 씨는 아프기 전이나 지금이나 본인 수입의 90% 이상을 가족들에게 보낸다.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숙박비를 제외한 월급을 받는다. 칸 씨의 경우 95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를 받았으며, 산재 인정 후에는 월 평균 임금의 100분의 70에 해당하는 휴업 급여를 받고 있다.

칸 씨는 현재 E-9 고용허가제 비자가 아닌 G-1 기타 비자로 한국에 체류 중이다. 백혈병 산재 신청 후 비자가 변경됐다. G-1의 경우, 원칙적으로 취업이 불가하지만 산재 요양 기간만큼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칸 씨에게 한국에서 가족과 같이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E-9 비자가 아닌 전문직 취업비자 E-7이 있어야 한다. E-7은 한국에서 최소 4년 이상 일한 뒤 근무 경력·어학 능력·추천 등에 따라 신청 가능하지만, 직종별 세부 요건을 충족해야 해 취득 요건이 까다롭다.

“살고 싶어요.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 많이 있어요. 여기 있으면 좋아해요. 그냥(그런데) 비자가, 한국이 (가족들에게는) 비자를 안 줘요.”

▲ 파키스탄에서 온 칸 모바실 씨. ⓒ프레시안(이명선)

무슬림인 칸 씨는 이날도 고국 스타일의 커리를 직접 만들어 먹고 나왔다고 했다. 한국 음식 중에는 짬뽕을 좋아한다고 했다. 양식장에서 일하면서 자주 먹었던 해물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회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전복은 좋아한다.

칸 씨는 TV로 축구 경기를 볼 때면, 20대 꿈꿨던 럭비 선수를 떠올린다. 그는 한국에서도 럭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두 손으로 럭비공 대신 물고기를 잡았고, 하루의 대부분을 탁 트인 운동장이 아닌 암막 처리가 된 비닐하우스에 머물렀다.

칸 씨에게 한국에 대해 물었다. 좋았던 일을 묻자 한 3초간 뜸을 들이더니 “아뇨. 없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더니, 이번에는 20초가 넘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나빴던 일에 대해 묻자, “나빴던 일?”이라며 되물었다. 기분 나쁘거나 한 적 없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바로 “아니, 없어요”라는 답했다.

칸 씨는 14년이라는 한국 생활에 대한 소회를, 짧고도 긴 침묵으로 대신하는 듯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일도 없다는 듯 말했지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인터뷰 시간이 두 시간을 넘어가자, 그는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굉장한 한국말(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요. 조선대학교에 인자 매주 일요일에 가요. 집에서 계속 심심하기 때문에 게더링(gathering, 모임) 가요. 사람 많이 만나러….”

칸 씨의 한국 체류 및 산재 요양 기간 연장 여부는 오는 12월 정기 검진 결과에 달려 있다. 그는 앞으로 “굉장한 한국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이웃으로 계속 한국에 머물 수 있을까.

프레시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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