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인공지능(AI) 거품론을 잠재울 또다른 무기로 차세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꺼내들었다. AI 서버 모델이 학습에서 추론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양의 데이터 저장이 필요한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낸드 시장은 차세대 HBM 등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처리하는 D램과 비교해 한 발 밀려 있었다. 하지만 AI 서버 구매가 예상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심도가 커졌다.
낸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휘발성 메모리인 D램과 달리 데이터 저장장치에 주로 쓰인다.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을 위해 대규모 데이터를 담을 공간이 필요한 상황에 고성능 SSD는 AI 추론 단계에서 알고리즘을 빠르게 동작하기 위해 필수다.
삼성전자는 4월 ‘TLC 9세대 V낸드’를 최초 양산한데 이어 초고용량 서버SSD를 위한 ‘1테라비트(Tb) 쿼드 레벨 셀(QLC) 9세대 V낸드’를 업계 최초로 양산했다. 삼성 9세대 V낸드는 ‘채널 홀 에칭(Channel Hole Etching)’ 기술을 활용해 더블 스택(Double Stack) 구조로 업계 최고 단수를 구현해냈다.
QLC 9세대 V낸드는 셀(Cell)과 페리(Peripheral)의 면적을 최소화해 이전 세대 QLC V낸드 대비 비트 밀도(Bit Density)가 약 86% 증가했다. 비트 밀도는 단위 면적당 저장되는 비트(Bit)의 수를 뜻한다.
V낸드의 적층 단수가 높아질수록 층간, 층별 셀 특성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디자인드 몰드(Designed Mold)’ 기술을 활용했다.
9세대 QLC는 셀의 상태 변화를 예측해 불필요한 동작을 최소화하는 ‘예측 프로그램(Predictive Program) 기술’ 혁신을 통해 이전 세대 QLC 제품 대비 쓰기 성능은 100%, 데이터 입출력 속도는 60% 개선했다.
낸드 셀을 구동하는 전압을 낮추고 필요한 BL(Bit Line)만 센싱해 전력 소모를 최소화한 ‘저전력 설계 기술’을 통해 데이터 읽기, 쓰기 소비 전력도 각각 약 30%, 50%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하반기 중 430단 10세대 V낸드 양산에 돌입해 AI용 고용량 스토리지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겠다는 목표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8월 열린 ‘플래시 메모리 서밋(Flash Memory Summit·FMS) 2023’에서 2025년 상반기 양산 예정인 321단 1Tb TLC 샘플을 공개했다.
이전 238단 512기가비트(Gb) 대비 생산성이 59% 향상됐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을 더 높은 단수로 쌓아 한 개의 칩으로 더 큰 용량을 구현하게 됨으로써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체 용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또 낸드를 여러 개 탑재해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는 SSD를 최근 개발했다. SK하이닉스가 개발한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SSD ‘PEB110 E1.S(이하 PEB110)’는 PCle 5세대(Gen5) 규격을 적용해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PCIe 5세대는 기존 4세대(Gen4)보다 대역폭이 2배로 넓어졌다. 이에 따라 PEB110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32GTs(초당 기가트랜스퍼)에 달한다. 이를 통해 PEB110은 이전 세대 대비 성능이 2배 향상됐고, 전력 효율도 30% 이상 개선됐다.
안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이번 제품은 최고 성능이 입증된 당사 238단 4D 낸드를 기반으로 개발돼 원가, 성능, 품질 측면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앞으로 고객 인증과 양산을 순조롭게 진행해 향후 지속 성장할 데이터센터용 SSD 시장에서도 글로벌 1위 AI 메모리 공급자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글로벌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1위(36.9%)다. SK하이닉스(22.1%), 키옥시아(13.8%), 마이크론(11.8%)이 뒤를 잇는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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