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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이 반한 ‘리브고슈’? 탱자를 오렌지라 우기는 철도 지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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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본 적은 없지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익숙한 그런 곳들이 있다. 파리 같이 유명한 거대 도시라면 더더욱 그런 동네들이 많기 마련이다. 철도 지하화와 관련된 논의들을 싫어도 자주 살펴보다보니, 내게는 이른바 ‘리브 고슈’가 그런 동네가 되었다.

네이버 뉴스를 검색해 보면 ‘파리 리브고슈처럼’, ‘한국판 리브고슈’ 같은 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철도를 지하화해서 도시 혁신 공간을 창출하겠다는 말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바로 이 ‘리브고슈’다. 파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빛의 도시’인 만큼, 그 환상을 활용하겠다는 것일 테다.

일단 살펴봐야 할 것은 파리와 서울의 철도망 규모 차이다. 아래 두 지도는 1:250000 축적으로 서울과 파리의 현재 철도망을 뽑아본 결과다. 지하철은 모두 빼놓은 것이다. 지하철 고가 구간 지하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지상이 도로나 하천이라 개발할 토지 자체가 없다.

파리가 철도망이 훨씬 더 빽빽하고, 외곽 순환 노선도 동측 반원이 두 개 있다는 게 보일 것이다. 11개 지표를 뽑아서 계산해 보니 서울이 파리보다 더 나은 건 도시철도 밀도 말고는 없었고(「거대도시 서울 철도」 2020, 워크룸프레스 1장 및 부록 2), 도시철도 밀도마저 파리 시와 면적이 비슷한 서울 2호선 내부만 치면 파리가 더 높았다. 사실상 모든 지표에서 서울 철도는 파리 철도보다 열세라는 뜻이다.

▲지도 1 파리 주변의 철도망, 2024년. 도시철도(metro) 제외. Openstreetmap의 데이터를 QGIS로 추출. ⓒ전현우
▲지도 2 서울 주변의 철도망, 2024년. 도시철도(지하철) 구간 제외. Openstreetmap의 데이터를 QGIS로 추출. ⓒ전현우

여하간 이렇게 철도가 많고 오래 된 도시라면, 철도망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처럼 지상의 철도, 중앙역 등을 지하화한 뒤 새롭게 생긴 상부 유휴 부지를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지상 철도 지하로 옮긴다”…한국판 ‘리브고슈’ 50조 사업 시동, 동아일보, 2024-05-07)”이 말이 되는 구석이 있기는 있을지도 모른다. 오르세 미술관, 프롬나드 플랑테 같이 옛 철도시설을 활용한 건축이 널리 알려진 사례도 파리에는 많이 있고. ‘리브고슈’가 진짜로 그런 곳인지, 나는 동료들과 함께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리브고슈는 ‘왼쪽 둑’이라는 뜻이다. 파리 동부의 이 지역에서는 센 강이 북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철도 3복선은 오스테를리츠(Gare d’ Austerlitz) 역에서 출발, 프랑스 중부 내륙지역으로 가는 일반 열차(TER)와 RER C선 열차가 사용한다. 3복선(상하선 2개의 선로를 1복선이라 부른다)은 서울에서야 특별한 규모지만 파리에서 이 정도는 평범한 규모에 불과하다. 그리고, 리브고슈에서 지화화되었다는 바로 그 노선이 바로 이 3복선이다.

리브고슈 답사를 위해 도착한 오스테를리츠 역은 공사판이었다. 역 앞에 대규모 공공건물을 건설하고, 더불어 역에는 플랫폼을 증설하여 용량 한계에 도달한 주변 리용 역과 몽파르나스 역에서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TGV를 분산 수용하겠다는 것(지금은 TGV가 운행하지 않는 역이다)이 당국의 복안이었다.

고가 철도(5호선)가 당연한 듯 역 건물을 관통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개량 공사를 위해 잠시 문을 닫은 1~7번 승강장 앞 가림막을 옆으로 끼고 걸었다. 패럴림픽을 다룬 작품이 큼직하게 걸린 가림막이 끝나는 지점에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센 강과 거의 평행하게 남동 방향으로 뻗은 길이 눈에 들어왔다. 길 옆, 1~7번 승강장 공간 위에는 르몽드 본사처럼 으리으리한 건물이 서 있었다. 주변에 잘 나가는 기업들이 모여드는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승강장은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건물을 세웠으니 이건 데크화라고 말하는 게 맞다.

▲오스테를리츠 역 건물을 관통하는 고가 철도 ⓒ전현우

길을 따라 걸었다. 건물 아래에서 1~7번홈에서 출발한 본선이 나오는 지점을 지나자 동쪽, 일행의 발아래로 센 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일대는 지명(둑)이라는 지명처럼 자연제방이 발달한 지역 같았다.

자연제방? 범람원에서 홍수가 반복되며 생겨나는 퇴적 지형을 말한다. 본래의 하도에서 빠르게 흐르던 홍수기의 강물에는 엄청나게 많은 토사와 자갈이 섞여 흐르는데, 이들이 하도 밖으로 넘쳐 흐르는 순간 물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강변에는 토사와 자갈이 퇴적된다. 이러한 퇴적이 홍수 때 마다 반복되면 작은 언덕이 된다. 이 언덕은 웬만한 홍수에는 잘 가라앉지 않는다. 퇴적의 원리 덕에 토사의 입자 또한 굵은 편이라 주변보다 물빠짐이 좋기도 하다. 덕분에 강가에 전근대부터 있던 마을은 바로 이런 자연제방을 터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은 파리 한복판이라 일대의 자연지형을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이곳은 센 강과 마른 강 합류점 부근인 만큼 퇴적이 활발했을 것은 분명하다. 어떻든, 우리가 걸은 남동-서북 방향의 도로와 직교하는 도로에서는 센 강이 아래로 내려다 보여 이 지역이 높은 지형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스테를리츠 역 주변오스테를리츠 역 주변 과거 공업지대 인근 ⓒ전현우

이 철길 건너편은 조금 낮은 지역에는 굴뚝과 함께 있는 오래된 벽돌 건물이 다수 있었다. 과거 철길과 수운에 기반해 제조업이 발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났다. 조금 더 찾아보니, 오래된 이들 공장과 철길이 있는 이 지역은 정말로 파리 시내 제조업의 쇠락과 함께 낡아갔던 지역이었다. 서울로 치면 옛 구로공단과 비슷할지도.

도시재생이라는 게 무슨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제조업이 빠져나가 공동화되어가는 지역을 살리고, 기왕이면 지금 현재 대도시 도심에서 괜찮게 돌아가는 고차 서비스업을 유치해 보겠다는 게 이 개발 사업의 맥락이었다. 그 수단으로 국립도서관 같은 문화시설이나 대기업 등을 유치하고, 옛 철도 시설을 시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철길 위를 복개하여 건물을 올리는 것 등등. 그 과정에서 특정 자본이 수익을 독식하지 않도록 파리도시개발공사(SEMAPA)가 사업 주체로 나서고 있었다. 철도부지와 인근에서 이뤄지는 사업인 만큼 철도 공기업 역시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리브고슈 인근 철로 복개 현장 ⓒ전현우

이들 지역을 1km쯤 걸어가니 복개 지역이 끝나고 광활한 철길이 펼쳐졌다. 여객열차 입환이 이뤄지고 있는, TER의 파리측 조차장이었다. 조차장 위로는 파리 외곽도로가 고가로 통과하고 있어 전모를 그 자리에서 가늠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지도로 측정해 보니 조차장의 부지 폭은 500m에 달했고, 옆에는 SNCF의 차량 정비 공장이 여전히 현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부지는 너무나 넓은 나머지 추가적인 개발 계획은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비슷한 느낌의 수색 차량기지보다 3배는 폭이 넓은 철도시설 부지를 실제로 눈으로 보니, 그 규모에 기가 질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귤이 회수를 건너오면 탱자가 된다는 말의 현대 버전이라고나 해야 할까? 철도 지하화 하면 거의 염불처럼 들을 수 있는 리브고슈의 정체가 결국 철로 복개였다니, 그것도 지형 조건에 의존해 약 1km 정도의 철길을 복개한 것이고, 주변 대규모 철도 시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니. 이미 사태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목도하니 조금 허탈한 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비교하자면 가산디지털단지~독산 사이(1.8km) 경부선은 그대로 두고, 그 위 일부 구간에 건물을 올린 사업에 해당할 테다(시내에서 지역의 위상이나 하천 크기도 닮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작년이나 올해 초까지 이뤄진 국내 보도를 조금 더 찾아보면 이 지역의 개발이 인공 대지에 기반해 있다는 정직한(?)이야기를 분명 찾을 수 있다(심지어 국토부 유투브 비디오에도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리고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사업의 세부 사항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철도 지하화의 사업성을 과장해 정치적, 사업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부 사항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어떤 단위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보도에서는 리브 고슈가 철도 지하화의 모범 사례로 둔갑했을 것이다. 파리, 빛의 도시에서 지금 현재 이뤄지는 신규 도시재생 사업이 마침 ‘혐오 시설’인 철도를 묻어 버리고 있다니, 그 모양이 얼마나 좋은가?

이런 판단이 사실이든 어쨌든,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리브 고슈 지역에서 철도 직상부는 건물로 가득 차 있고, 그 아래 지상 철길에는 여전히 열차가 다닌다. 본선이든 조차장 인입선이든 그렇다. 공원은 주변 도시 개발 부지를 잘라서 만들어야 했다. 철도 지하화를 생활 조건 개선 사업으로 생각하고 싶은 순진한(?) 시민들은 아마도 경의선 숲길 같은 공원을 기대하겠지만, 이 현장은 개발 사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대규모 빌딩 및 고밀 개발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철도 지하화의 모범 사례가 리브고슈라는 주장은, 탱자를 가지고 이게 오렌지라고 우기는 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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