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황정민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자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킨 ‘베테랑’의 속편 ‘베테랑2’(감독 류승완)로 관객 앞에 선다. 변함없는 에너지로 정의로운 형사 서도철을 그대로 소환한 그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게 정답이고 해답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황정민이 열연한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 분)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 범죄 수사극이다.
2015년 개봉해 국내 액션 범죄 수사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1,341만 관객을 사로잡은 ‘베테랑’ 후속편이자 추석 극장가 유일한 텐트폴 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등에 공식 초청돼 주목받기도 했다.
황정민은 1편에 이어 죄짓고 사는 놈들 잡아내는 형사 서도철로 돌아와 또 한 번 대체불가 존재감을 보여준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으로 여전히 정의로운 형사의 면모뿐 아니라, 생활감이 묻어나는 연기부터 ‘인간’ 서도철의 고민과 고뇌를 묵직하게 담아내며 극을 든든하게 이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황정민은 개봉 소감과 다시 서도철을 만난 소회, 류승완 감독‧정해인과의 협업 등 ‘베테랑2’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해당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연기 인생 최초 속편이다. 9년 만에 다시 같은 캐릭터로 관객을 만나는 소감은.
“배우가 시리즈물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가문의 영광이다. 쉽게 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특히 영화는 더 그렇다. 어릴 때 시리즈물을 많이 보고 자랐다. ‘리썰 웨폰’이나 ‘다이하드’ ‘미션 임파서블’처럼 좋은 영화들이 시리즈물을 하잖나. 배우에게는 영광이다. 행복하게 작업했다. 욕심이 있다면 2편이 잘 돼서 3편도 가능하면 좋겠다.”
-2편은 어떻게 다가왔나.
“1편이 단순한 오락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라면 2편은 감독이 끌고 가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하게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류승완 감독이 정말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1편의 오락적인 요소를 답습하려고 하지 그렇게 하지 않잖나. 그런 부분에 대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영화 동료로서 존경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또 하나는 ‘부당거래’라는 작품을 같이 해서 오히려 2편을 더 쉽게 이해하고 그 지점에 대해 힘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걸 잘 못느끼더라. 명절 때 자주 틀어주고 ‘밈’ 같은 것도 접해서인 것 같다. 그래서 1편 에너지를 그대로 잘 가져가자는 생각을 했다. 감독에게 1편 의상을 대놓고 입겠다고 한 것도 서도철이 2편에서도 똑같은 느낌으로 움직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서도철이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게 정답이고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1편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서도철이라는 인물이 관객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까였다. 어설픈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싸움을 잘할 것 같으면서도 아닐 것 같으면서도 그런 매력이 있는, 정의가 없는 것 같은데 되게 정의로운, 저런 사람이라면 내 옆에 꼭 한 명 두고 싶은, 그런 믿음이 가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했다. 관객이 ‘형사 캐릭터 누구 좋아해?’라고 했을 때 ‘베테랑’ 서도철이라고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인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또 하나는 전두광(서울의 봄), 박성배(아수라) 같은 인물은 연기하기 쉽다. 가공하는 거라 내가 어떤 식으로든 만들면 된다. 그런데 서도철은 튀지 않으면서도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빌런이나 주변이 튀어서 춤추고 놀 수 있다. 그 판을 잘 깔아줘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힘들다. 중심이 흐트러지면 극 자체가 흐트러진다.”
-그대로인 서도철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1편을 다시 보기도 했나.
“안 봤다. 지겹잖나. 하하. 서도철은 내가 만든 인물이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감독과 모든 스태프와 만든 거지만 모든 세포와 의상 하나까지 내가 만들어낸 나의 피규어이기 때문에 나의 연기 서랍에 잘 넣어뒀다가 딱 꺼내서 하면 되는 거였다.”
-1편은 선과 악이 분명했다면 2편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관객을 설득하기 위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해인이라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웃음) 중요한 것은 살인이라는 거다. 연쇄살인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사적제재라는 단어 때문에 그것을 옹호할 수는 절대 없다. 또 하나는 그 친구(빌런)에게 명분이 없다. 살인을 하기 위해 명분을 만든 것뿐이다. 그냥 살인자인 거다. (정해인의) 얼굴이 예쁘게 잘생겼으니까 착각을 하는데 감독이 그 지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그런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한 것 같다. 기본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덕목이 아닌가라는 말을 내게도 했다. 서도철이 박선우를 살리잖나. 법의 심판을 받으라고. 그런 메시지가 분명히 있는 거다. 그건 누가 판단하고 정의할 수 없는 거다.”
-오프닝 시퀀스 촬영은 어땠나.
“너무 신났다. 동창생 만난 기분이었다. 1편이 워낙 잘 됐고 재밌게 ‘낄낄’대면서 찍었던 작품이라 그런지 2편도 어렵지 않았고 자신의 몫들을 다 해줬다. 1편 오마주로 똑같이 찍어야 한다고 감독에게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그냥 1편에서 걸어가는 느낌이 들더라. 변함이 별로 없다는 것도 느꼈다. 관객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하면서 찍었다.”
-액션은 이번에도 쉽지 않았겠더라.
“관객이 그렇게 느끼게끔 철저하게 계산되고 만들어 놓은 거다. 촬영은 어렵지 않았다. 겨울에 촬영해서 추워서 힘들었던 것 빼고는 감독이 워낙 액션에 관해서는 베테랑이라 배우들이 크게 힘들어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진 않았다. 남산 계단 액션신도 어린이집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면 넘어져도 아프지 않게 하는 푹신푹신한 걸 계단 색으로 똑같이 만든 거다. 그래서 굴러떨어져도 미끄럼틀처럼 떨어지게 하는 거라서 촬영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우중 액션신은 너무 추웠다. 비를 뿌리니까. 물이 언다. 얼면 그걸 다시 녹여서 뿌린다. 안보현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안보현이 일 대 다로 싸우는 거기 때문에 계속 물에 있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 액션할 때는 쉴 수 있잖나. 안보현이 너무 힘들었을 거다. 특별출연으로 왔다가 고생만 하고 갔다. 내가 미안하다, 보현아.(웃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괜찮아’라고 하면서 ‘악’으로 ‘깡’으로 했던 것 같긴 하다. ‘그때는 그랬는데 나이 먹어서 힘들어’라고 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나. 후배들도 있고 한데.(웃음) ‘나이 먹어도 어떻게 저렇게 잘 뛰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좋지. 그래서 관리를 열심히 했다.”
-정해인이 그동안 보지 못한 얼굴, 눈빛을 보여줬다. 직접 마주한 소감도 궁금하다.
“그 친구가 가진 좋은 얼굴이 있는데 그런 눈을 하니까 아이러니함, 묘함이 느껴지더라. 그 친구가 마스크도 쓰고 모자도 쓰고 하니까 현장에서 두려워했다. 그 연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그래서 절대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연기를 보면서 이 영화가 나오면 정말 뜨겠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이야기하고 다녔다. 몸도 워낙 잘 쓴다. 얼굴은 여리여리한데 몸이 좋고 유연하고 빠릿빠릿하다. 다 가졌다. 피부도 좋고.(웃음)”
-류승완 감독과 다시 만난 현장은 어땠나. 류 감독은 ‘베테랑’에서 황정민은 없으면 안되는 존재라고 했는데.
“사람이 참 한결같다. 늘 느낀다. 존경스러운 눈으로 보게 된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밖에 모른다. 24시간 영화만 생각한다. 쉴 때도 영화만 보고 개봉하는 영화도 거의 다 본다. 오로지 영화밖에 없다. ‘부당거래’ 때 처음 만났는데 하루이틀이 아니잖나. 지금까지 꾸준히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신나 하고 작품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재밌어하니까 옆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영화인이 된 것 같아서 같이 있으려고 하고 같이 작업하려고 한다. 그러면 좋은 작품이 나오니까. ‘서도철은 황정민이 아니면 없다’는 좋은 말을 해줬는데 마찬가지로 감독이 작업에 그렇게 몰두하니까, 나는 나대로 ‘베테랑’ 서도철을 누가 연기해도 나만큼 잘하는 사람 없게 잘하자는 생각을 하는 거다. 그런 주고받음이 있는 것 같다.”
-추석 극장가 유일한 텐트폴 영화인데다 높은 기대치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부담은 되는데 그것보다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가 우리 작품밖에 없다는 게 안타깝다. 물론 ‘베테랑2’가 잘 되면 좋고 당연히 잘 돼야 하는데 거기에 더해 한국 영화가 잘 되는 게 좋은 거다. 예전에는 같이 개봉하는 작품이 있어서 서로 힘내자고 이야기도 하고 덕담을 나눌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게 없으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묘함이 있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다. 1편도 설에 개봉하려다가 다른 영화 때문에 밀려서 우연치 않게 여름에 개봉한 케이스인데 대박이 난 거다. 그렇기 때문에 흥행은 잘 모르겠다. 손익분기점은 무조건 넘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베테랑’이 아니고 다른 제목으로 했으면 재밌게 볼 거다. ‘베테랑’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있어서 그렇지 편안하게 보면 된다. 류승완 감독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게 뭐냐면 재탕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거다. 2편을 재탕하지 않았으니까 3편도 편안하게 다른 에너지로 찍을 수 있다는 거잖나. 뭐가 됐든 할 수 있다는 거다. 서도철은 그대로 살아있지만 색깔과 이야기를 충분히 바꿔서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게 이 시리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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