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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관참시’ 빌미 노소영 300억 메모…21세기에 ‘노태우 비자금’ 유령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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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 이기자고 죽은 아버지 비자금 공개로 사회적 저항 직면

여론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나서 “딸이 직접 죽은 아버지 부관참시한 꼴”

분노한 시민들, ‘그 아버지에 그 딸’ 비난하며 반드시 철저한 조사 주장

전액 환수뿐 아니라, ‘범죄 수익 은닉 일당들은 엄벌로 일벌백계’해야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연합뉴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2월 24일 영국 런던 거리에 이런 문구로 시작하는 팸플릿을 뿌렸다. 이른바 ‘공산당 선언’.

그런데 2024년인 지금도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노태우 비자금’이라는 유령. 역사적 전염병처럼 무서운 이 유령의 정체는 무엇일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수면으로 올라왔다. 항소심 재판에서 노 관장의 어머니이자 노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 2개가 공개되면서다. 김 여사는 1998년 4월과 1999년 2월에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메모를 작성했다. 메모에는 동생인 노재우 씨 등의 이름과 함께 2억~300억원의 숫자가 기재돼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 여사의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이 찍힌 사진 등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선경그룹(현 SK)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태우의 경제수석 등을 지내며 장자방 역할을 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위원장은 한 유튜버에게 ‘노소영이 꺼낸 비자금은 노태우가 요구해 SK가 약속어음 형태로 지급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유튜버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자금을 관리하는 이원조 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자금 이야기를 해서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꾸준히 줬다”며 “노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 항소심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김옥숙 여사의 메모ⓒ유튜브채널

앞서 SK 2인자였던 손길승 명예회장도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경건설의 약속어음은 태평양증권 인수와는 무관한 것뿐 아니라 ‘받았다’는 의미인 차용증과 달리 ‘주겠다’는 의미의 약속어음이라며 노 관장 측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일단 생활비 명목으로 매월 전달했다.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이는 노소영이 제기한 300억원의 실체는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SK에 대여해 준 것이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측이 강제로 SK에 요구한 받을 돈”이란 김 전 위원장의 전언과도 일치된다.

이렇게 노 관장이 제기한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 진실 공방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김옥숙 여사의 메모 속 숫자가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이라면 노 관장의 재산 분할 대상에 넣어서는 안 되고, 환수 조치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다. 하지만 아무리 이혼 소송이라지만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을 재산 분할에 반영한 것은 반역사적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사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뇌물죄 등의 책임을 물은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46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9억원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역사적으로 12·12 쿠데타와 6공화국을 연결하는 상징성이 있다. 실제 한 시민은 “노소영이 이혼 소송에서 제시한 300억원을 포함한 비자금은 ‘노태우가 국민을 위해 써야 할 통치권을 불법 비자금을 거둬들이는 데 쓴 천인공노할 범죄의 증거’이기 때문에 전액 환수하는 것은 물론, 그 범죄 수익을 지금까지 은닉하면서 호사를 누려 온 범죄자 일당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연합뉴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까지 나섰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은 지난달 27일 기재위 전체 회의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는 내용의 탈세 제보서를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노소영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노태우 부인 김옥숙 여사가 만든 비자금 사용에 대한 메모가 핵심 증거로 인용되었기 때문에 노태우 비자금은 과세 대상”이라며 “이혼 소송에서 노소영이 직접 공개한 300억원은 물론, 김옥숙의 메모에 기록된 모든 은닉재산(채권·금고 속 현금·차명 관리 등) 법에 따라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시효가 남아 있고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여기에 같은 당 장경태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은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장 의원 측에 따르면 이 개정안은 헌정질서 파괴 범죄자의 범죄 수익에 대해 당사자 사망 등으로 공소제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은닉자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의원은 “노소영 관장이 이혼 소송에서 노태우 씨의 추가 비자금 904억원이 기재된 메모를 공개했다”라며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노태우 또한 비자금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이혼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노 관장의 욕심이 급기야는 비자금의 주체이자 죽은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부관참시하고 있다”며 “이번 비자금은 김영삼 정부가 과거청산을 위해 진행한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추징 환수에도 나오지 않은 것이고, 또 그 가족이 비자금 목록을 공개한 것이니만큼 추징 환수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되레 불법 비자금을 은닉하고 사용해 온 사람 역시 노 전 대통령과 같은 공범이기 때문에 엄하게 벌하는 것이 법치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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