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6회>

서울경제 조회수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6회
연합뉴스

6. ‘모르’의 비밀

“인간의 뼈로 마약을 만드는 일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나요?”

나는 준비한 두 번째 질문을 『인공낙원의 문』의 작가에게 던졌다. 화면만 바라보던 촬영 기사가 고개를 약간 들었다. 출판사 편집자도 궁금한지 작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실제로 있습니다. 마약의 이름을 제가 ‘모르’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나는 첫 번째 질문과 달리 호의를 가지고 대응했다.

“‘모르’라는 단어가 한국어 발음으로도 마약에 어울립니다.”

“프랑스어가 유창하시니, ‘모르’의 뜻을 아시지요? ‘모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담이 제법 순조로워진 것 같아 나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마약 중독은 말 그대로 인간을 ‘종’의 상태로 만들죠.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니까요. 그렇다면 작가님은 인간을 종처럼 묶어 놓는 가장 강력한 것이 마약이라고 보신 것인지요?”

“대담자님은 마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를 종으로 묶을 만큼 강력한 것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문직에 경제적으로나 세상 그 어느 쪽으로 견주어 보아도 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

“저는 마약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들 물건이 마약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만, 저를 종으로 묶을 수 있는 대상을 아직 만나지 못했지요.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을 ‘종’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것은 모르입니다. 죽음이지요.”

“…….”

“대담자님도 이 포박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순간, 출판사에서 온 편집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영상에 올라왔다. 얼마 전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봉투에 조의금을 넣어준 것으로 나는 죽음의 예의를 지켰다. 녹화 현장의 사람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다들 귀를 곤두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죽음의 종이라는 작가의 발언에 대한 내 반응이 궁금할 것이다. 그 말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 또한 죽음의 종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작가도 자기가 죽음의 종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이 침묵을 깨뜨릴 말을 찾고 싶었지만, 더 강력한 말을 투척한 것은 화면 속의 작가였다.

“우리는 모두 썩어갈 것입니다.”

대서양을 건너 날아온 비수는 정확하게 나를 관통했다. 갑작스럽게 몸의 떨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연은 아니었다. 영원히 살 것이라 여기진 않았지만, 여태 죽음이 나를 종으로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인류가 처음 인간의 죽음을 접했을 때 느꼈을 법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처음으로 ‘죽음’의 실체가 온몸으로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구더기와 함께 썩어갈 것이다. 죽음의 비수를 쏘아준 인간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항하는 공갈 아기를 내세웠군요.”

“공갈 아기?”

“가짜 생명요. 관 속의 죽은 여자에게서 악당들이 살아 있는 아기를 안고 나오지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공갈이지요.”

“공갈 아기라는 표현이 매우 흥미롭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인지 궁금합니다. 상상 임신은 있겠지요. 세상에 모든 종류의 공갈이 가능할지라도 결코 생명은 공갈이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다시 나의 덫이 될 조짐을 보였다. 생명은 확실히 공갈이 없다! 그 사실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대담에서 계속 헤매는 이유가 작가가 걸어놓은 표지 문구를 아직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데 기인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모순 문구를 풀어낼 힌트를 조금 얻긴 했다.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그러니까 ‘(죽음의)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는 뜻이 함축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종이 아닌 생명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 누가 ) 값을 치르고 (나를) 사신 것인지 마저 풀어야만 했다. 순간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을 무시하고 싶은 강력한 욕망 또한 동시에 일어났다. 작가가 책 표지의 문구로 계속 나를 함정에 빠뜨리지 않도록, 문득 떠오르는 프랑스 속담을 임기응변으로 내뱉었다.

“L’habit ne fait pas le moine.”

직역하면 ‘옷이 성직자를 만들지는 않는다’였다. 책과 관련해서는 ‘표지가 반드시 책 내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했는지 부드러운 얼굴선을 가진 작가가 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렸다.

“프랑스 속담에는 이런 것도 있지요. ‘고양이는 고양이라고 말해야 한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격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6회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무단 부분 혹은 전체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서울경제
content@www.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뉴스] 랭킹 뉴스

  • "서 있으면 다야?"…주차구역에서 버틴 '얌체 여성' [기가車]
  • '천안함 폭침 다시는 없게'…군, 北 회색지대 도발 억지 주력
  • 두달 만에 이뤄진 ‘윤 대통령·국힘 지도부’ 공식만찬 : 현안 논의는 쏙 빠졌고, 결국 한동훈 대표는 독대를 재요청했다
  • "아내 핸드백에 피임기구가?"…정관수술 남편의 '이혼소송' [결혼과 이혼]
  • [포토뉴스]조국 혁신당 조국 대표, 군남 복지관 방문
  • 당정, 다양한 소통채널로 화합에 한뜻…韓, 독대 재요청

[뉴스] 공감 뉴스

  • 금융사 서민금융 출연금 늘어난다…내년 말까지 한시적 확대
  • 한국일보, 홈페이지 기자 페이지에 딥페이크 범죄 경고문구 삽입
  • "서울 한복판에 멧돼지가"…창덕궁 후원 출몰, 수색 끝에 1마리 사살
  • 오늘부터 무급휴직 신청...폐국 위기 TBS, 보수 종편에 넘어가나
  • ‘류희림 민원사주’ 압색 당한 5년차 직원 “하루하루가 지옥”
  • 경제부처 퇴직공무원, 연봉 4억씩 더 받고 재취업?

당신을 위한 인기글

  • 지금은 투잡시대! 님도보고 뽕도따는 연예인 사장님 맛집 5곳
  • 멋진 뷰,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하는 제주도 카페 BEST5
  • “해안선 따라 떠나보자!” 다양한 맛과 멋이 존재하는 동해안 맛집 BEST5
  •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림 맛집 BEST4
  • [알립니다] ‘맥스무비’ 사칭 사이트에 주의하세요!
  • 류승룡·진선규, ‘극한직업’ 영광 ‘아마존 활명수’로 이을까
  • 부국제에서 먼저 만나는 칸·베니스 국제영화제 화제작
  • [맥스포토] 염혜란 ‘집안 실세 아내 연기해요’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허진호 감독이 밝힌 '보통의 가족'으로 제목 정한 이유

    연예 

  • 2
    박유천, 다시 돌아온 '희대의 거짓말쟁이'…뻔뻔한 日 솔로 데뷔 [MD이슈]

    연예 

  • 3
    “가치 있는 도박” 한국 WBC 2루수는 다저스 가을야구 ‘미칠 선수’ 1순위…오타니만 경계하면 안 돼

    스포츠 

  • 4
    [데일리 핫이슈] 청룡 새 얼굴 한지민·이제훈, 여자친구 재결합, 장신영 '미우새' 출격

    연예 

  • 5
    '뉴진스 MV 감독' 신우석, 애플한테 사과를 받았다?

    연예 

[뉴스] 인기 뉴스

  • "서 있으면 다야?"…주차구역에서 버틴 '얌체 여성' [기가車]
  • '천안함 폭침 다시는 없게'…군, 北 회색지대 도발 억지 주력
  • 두달 만에 이뤄진 ‘윤 대통령·국힘 지도부’ 공식만찬 : 현안 논의는 쏙 빠졌고, 결국 한동훈 대표는 독대를 재요청했다
  • "아내 핸드백에 피임기구가?"…정관수술 남편의 '이혼소송' [결혼과 이혼]
  • [포토뉴스]조국 혁신당 조국 대표, 군남 복지관 방문
  • 당정, 다양한 소통채널로 화합에 한뜻…韓, 독대 재요청

지금 뜨는 뉴스

  • 1
    현대차, 빽다방 방문 고객에게 캐스퍼 할인 쿠폰 제공

    차·테크 

  • 2
    천만 웹툰 '열무와 알타리' 41세 유영 작가에 대해 갑자기 전해진 소식: 애독자로서 믿기지 않아 세상이 멈춘 것 같다

    연예 

  • 3
    '극강의 내향형' 데뷔 23년차 장나라가 찐행복 느끼는 순간: 대문자 EEE로서 당최 저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연예 

  • 4
    FMC, 일본 모터스포츠 참관… 유망주 육성·양국 교류 추진

    차·테크 

  • 5
    "오늘부터 수비를 나가도 될 것 같다고…" 문성주, 복귀 후 첫 9번·우익수 출격→홍창기 DH [MD인천]

    스포츠 

[뉴스] 추천 뉴스

  • 금융사 서민금융 출연금 늘어난다…내년 말까지 한시적 확대
  • 한국일보, 홈페이지 기자 페이지에 딥페이크 범죄 경고문구 삽입
  • "서울 한복판에 멧돼지가"…창덕궁 후원 출몰, 수색 끝에 1마리 사살
  • 오늘부터 무급휴직 신청...폐국 위기 TBS, 보수 종편에 넘어가나
  • ‘류희림 민원사주’ 압색 당한 5년차 직원 “하루하루가 지옥”
  • 경제부처 퇴직공무원, 연봉 4억씩 더 받고 재취업?

당신을 위한 인기글

  • 지금은 투잡시대! 님도보고 뽕도따는 연예인 사장님 맛집 5곳
  • 멋진 뷰, 맛있는 디저트와 함께하는 제주도 카페 BEST5
  • “해안선 따라 떠나보자!” 다양한 맛과 멋이 존재하는 동해안 맛집 BEST5
  • 다양한 아시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대림 맛집 BEST4
  • [알립니다] ‘맥스무비’ 사칭 사이트에 주의하세요!
  • 류승룡·진선규, ‘극한직업’ 영광 ‘아마존 활명수’로 이을까
  • 부국제에서 먼저 만나는 칸·베니스 국제영화제 화제작
  • [맥스포토] 염혜란 ‘집안 실세 아내 연기해요’

추천 뉴스

  • 1
    허진호 감독이 밝힌 '보통의 가족'으로 제목 정한 이유

    연예 

  • 2
    박유천, 다시 돌아온 '희대의 거짓말쟁이'…뻔뻔한 日 솔로 데뷔 [MD이슈]

    연예 

  • 3
    “가치 있는 도박” 한국 WBC 2루수는 다저스 가을야구 ‘미칠 선수’ 1순위…오타니만 경계하면 안 돼

    스포츠 

  • 4
    [데일리 핫이슈] 청룡 새 얼굴 한지민·이제훈, 여자친구 재결합, 장신영 '미우새' 출격

    연예 

  • 5
    '뉴진스 MV 감독' 신우석, 애플한테 사과를 받았다?

    연예 

지금 뜨는 뉴스

  • 1
    현대차, 빽다방 방문 고객에게 캐스퍼 할인 쿠폰 제공

    차·테크 

  • 2
    천만 웹툰 '열무와 알타리' 41세 유영 작가에 대해 갑자기 전해진 소식: 애독자로서 믿기지 않아 세상이 멈춘 것 같다

    연예 

  • 3
    '극강의 내향형' 데뷔 23년차 장나라가 찐행복 느끼는 순간: 대문자 EEE로서 당최 저게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다

    연예 

  • 4
    FMC, 일본 모터스포츠 참관… 유망주 육성·양국 교류 추진

    차·테크 

  • 5
    "오늘부터 수비를 나가도 될 것 같다고…" 문성주, 복귀 후 첫 9번·우익수 출격→홍창기 DH [MD인천]

    스포츠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