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싶다. 사실 오로라 프로젝트, 그러니까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에 큰 관심이 없었다. 기대감도 높지 않았다. 더욱이 상품성에 대해서도 좋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중형 SUV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미안하다. 그랑 콜레오스는 생각과 완전히 달랐고 매우 뛰어나고 아쌀하게 멋진 하리브리드 중형 SUV였다.
‘오로라 프로젝트’. 르노코리아가 친환경 신차 개발 프로젝트에 돌입하며 정했던 명칭이다. 그리고 첫 번째 결과물인 그랑 콜레오스가 세상에 등장했다. 부산에서 통영, 그리고 거제까지 170킬로미터(㎞)를 누비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바로 ‘자강불식(自强不息)’. 르노코리아는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물이 그랑 콜레오스인 것이다. 높은 상품성과 섬세한 만듦새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프랑스 감성 짙은 훤칠한 외모
그랑 콜레오스를 처음 만났던 부산모빌리티쇼, 그리고 시승회. 두 번의 만남에서 느낀점은 외모가 훤칠하다는 점이다. 그간 중형 SUV에서 볼 수 없었던 디자인 요소는 새로움을 전달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그릴이다. 마치 뱀의 껍질, 용의 비늘처럼 생긴 요소와 로장주 엠블럼은 조화를 이뤄 미래지향적인 조형미를 전달한다. 헤드램프에 더해진 두 줄의 가로 형태 주간주행등은 안정감 넘치고 차체가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측면은 영락없는 중형 SUV의 모습이다. 벨트라인은 높게 위치하고 있으며 C 필러를 기점으로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모습이다. 또 차체 하단과 후면 쪽에 굵은 캐릭터 라인을 더해 든든함을 표현했다. 이외에도 휠 하우스와 도어 하단에 검은색 유광 클래딩을 통해 차체가 한층 높아 보이는 효과를 완성했다. 휠은 20인치로 차체 디자인과 조화를 이룬다.
후면은 전면과 마찬가지로 가로 디자인 요소를 더해 안정감을 높이고 있다. 테일램프는 최신 유행하는 가로바 형태고 밑으로는 픽셀 형태의 디자인이 더해졌다. 또 테일게이트 중앙에 차명과 로장주 엠블럼을 더했다. 가로와 사선 디자인 요소가 적용된 범퍼는 날카로운 모습이다.
르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실내
실내에는 르노코리아가 4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오픈알(openR)’이라 불리는 차세대 커넥티드 시스템을 품은 3개의 디스플레이는 실내의 방점을 찍는 부분이다. 12.3인치의 각 디스플레이는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연결성이 매우 높다.
운전석 클러스터에는 주행에 필요한 정보가 가지런히 배열돼 있다. 무엇보다 높은 시인성이 마음에 든다. 중앙 디스플레이는 마치 태블릿 PC처럼 구동되는데, 직관성이 높고 반응도 빠른 편이다. 여러 기능을 동시에 사용해도 버벅대는 현상도 없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놀라운 발전이다.
국내 브랜드 최초로 동승석 대시보드에 탑재된 스크린 역시 반응성이 좋다. 웹 서핑 혹은 OTT를 이용한 콘텐츠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에 심심함을 덜 수 있다. 다만 우글거리는 화면 느낌은 약간 아쉽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운전자 시야에 화면이 보이지 않아야 하는 법규로 인해 필름을 부착했기 때문이다.
2열 공간은 안락하다. 시트는 푹신하고 무릎 공간도 넉넉하다. 특히 헤드룸이 매우 넓은 편이다. 전면 유리와 맞닿아 있는 루프 시작점을 살짝 파 놓아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도 주먹 두 개 반 이상이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다. 2열에서 느껴지는 승차감과 정숙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실제로 시승 당시 2열에 탑승해 1시간가량 달렸다. 거친 노면 위를 달릴 때도 엉덩이로 전해지는 충격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엔진 소음도 거의 전달되지 않았다. 트렁크 공간과 도어 이음새에서 약간의 소음이 전달됐지만 신경이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다른 주행 감각에 반하다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를 선보이던 날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사장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랑 콜레오스에 몸을 싣고 바퀴를 굴리자마자 그가 내비친 자신감의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주차장에 나란히 주차된 그랑 콜레오스에 몸을 싣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시승차는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품은 탓에 엔진은 미동조차 없었다. 기어를 드라이버에 물리고 미끄러지듯 도로로 나섰다.
인상적인 부분은 전기모터와 엔진이 배턴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하이브리드의 경우 엔진에서 전기모터로 넘어갈 때 혹은 반대의 경우에 살짝은 티가 마련이다. 하지만 그랑 콜레오스는 그렇지 않다. 배턴을 주고받는 과정이 어찌나 매끄러운지 계기판을 보지 않으면 어떤 유닛으로 달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국산 하이브리드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움직임이다.
주목할 부분은 또 있다. 바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구성이다. 그랑 콜레오스에 탑재된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직병렬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100킬로와트(kW) 구동 전기모터와 발전 기능을 겸하는 고전압 스타트 모터로 구성돼 있다. 또 멀티모드 오토 변속기도 탑재됐는데 이는 듀얼 모터 시스템에 3단 기어 및 컨트롤러가 내장된 인버터를 하나로 묶은 일체형 구조다. 이를 통해 100킬로그램(㎏) 정도의 무게를 덜어냈다는 게 르노코리아의 설명이다.
직병렬 방식과 멀티모드 오토 변속기가 만들어내는 주행 질감은 매우 부드럽다. 변속 시 충격도 소음과 충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무단변속기를 장착하고 있는 듯한 감각이다.
쭉 뻗은 고속도도를 지나 와인딩 코스에 접어 들었고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자 곤히 잠자던 엔진이 벌떡 깨어났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전기모터와 1.5리터(ℓ) 4기통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은 245마력의 힘으로 바퀴를 굴렸다. 속도는 경쾌하게 높아졌다. 규정 속도를 넘어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다만 중속에서 추월을 위해 가속할 때는 조금 더디게 속도가 오르는 느낌이었다.
스포츠 주행 시 3단계로 쪼개진 회생 제동을 이용하는 것도 주행 감각을 느끼는 방법 중 하나다. 코너 진입 전 회생 제동 단계를 높음으로 바꾸면 엔진브레이크와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다만 기어 레버로만 단계를 조절하는 방식은 조금 아쉽다. 패들시프트로 조절할 수 있었다면 운전 재미가 더욱 높지 않을까 싶다.
서스펜션은 단단하게 조인 느낌이다. 덕분에 조금 과격하게 와인딩 로드를 달려도 차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깊은 코너에서도 차체를 우직하게 받쳐 한쪽으로 쏠리는 일이 없었다. 지금까지 르노 브랜드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다. 과거 르노 모델은 약간 헐거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랑 콜레오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체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과 차체가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승차감 부분에서 타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단단하게 조인 서스펜션은 노면의 크고 작은 요철을 매끄럽게 타고 넘으며 기분 좋은 충격만 전달했다.
170㎞에 가까운 거리를 달리면서 그랑 콜레오스의 능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농익음, 새로운 차체의 유연함, 탑승자를 위한 배려 등을 모두 갖춘 까닭이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랑 콜레오스는 르노코리아가 준비한 히든 카드가 분명하다. 쏘렌토와 싼타페는 긴장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만치 않은 적수가 나타났으니까.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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