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중 견제조치 강화로 사업 지속이 어렵다고 판단
IBM·MS·테슬라·애플 등 사업철수 또는 직원 재배치
BoA, GM 등 자동차 빅3에 빨리 中 시장서 철수 권고
中, 제조업 분야 외국인 투자진입 제한조치 전면 폐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방을 빼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4년 가까이 지났지만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대중국 견제조치를 강화하면서 미 기업들이 더 이상 중국에서 사업을 꾸려나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 정보기술(IT) 대기업 IBM은 내부 회의를 열고 직원 해고를 공식 발표하며 중국 내 연구·개발(R&D)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IBM 중국개발센터와 IBM 중국시스템센터를 폐쇄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지난 26일 보도했다.
잭 허겐로더는 이날 직원들에게 “중국 내 경쟁이 치열해져 중국 통신 인프라 사업이 축소돼 중국 내 R&D 인력을 해외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D 부문을 인도 등 해외로 이전하며 1600명가량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알려졌다.
IBM의 서비스 대상도 기존 중국의 금융·에너지 등 국유기업 중심에서 중국 민간기업과 일부 다국적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1984년 중국에 진출한 IBM은 2010년부터 중국 정부기관과 국유기업에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본격적으로 공급하며 통신 인프라 확충을 담당해왔다.
IBM이 중국서 R&D 부문의 방을 빼는 것은 무엇보다 중국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BM 중국 사업부 매출은 지난해 전년보다 20%가량 쪼그라들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이어져 상반기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4.4% 증가했지만 중국 매출은 오히려 5% 감소했다. IBM 중국 법인은 앞서 지난해 1월 3900명은 감원한데 이어 연말에는 인공지능(AI)으로 8000개가량의 직무를 대체한다며 관련 채용도 중단한 바 있다.
IBM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테슬라, 애플, 인텔 등도 잇따라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직원 재배치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MS는 지난 5월 클라우드와 AI사업부 등에서 일하는 800여명의 직원을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 근무지로 이동하도록 했다. MS는 오래전부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며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 대규모 사무실을 두고 뛰어난 AI 리더들을 양성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MS가 운영하는 세계 최대 비즈니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링크드인은 일찌감치 중국에서 서비스를 종료하고 철수했다. 중국 당국의 검열 강화와 잇따른 계정폐쇄 조치에 SNS 기능을 삭제하고 구인·구직 게시판 기능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링크드인까지 2021년 철수하면서 미 SNS는 모두 퇴출됐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 등 미 대형 SNS는 2018년부터 중국에서 퇴출됐으며 접속이 완전 차단됐다. 중국 정부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검열·차단 시스템을 통해 미 SNS에 대한 공식적인 접속을 차단했다. 중국인들은 만리방화벽을 우회하는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중국 내 외국인들도 같은 처지다.
애플은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했다. 제품 대부분을 중국 내 조립공장에서 생산해오던 애플은 올해 처음으로 아이폰 플래그십(대표) 모델을 인도에서도 조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애플 최대 위탁업체인 대만 훙하이(鴻海)정밀공업(Foxconn)은 인도 타밀나두주 현지 공장에서 근로자 수천명에게 교육을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은 여전히 아이폰 대부분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미·중 긴장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점차 중국 이외의 국가로 생산지를 다변화하고 있다”며 “폭스콘은 물론 또다른 위탁업체 대만 허쉬롄허커지(和碩聯合科技·Pegatron)인도 사업부도 조만간 상위모델인 프로모델 생산을 시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 제조업체들도 중국 사업 축소 또는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현지 업체들의 약진으로 중국 내 외국계 자동차 업체들의 점유율이 2020년 61%에서 지난해 42%로 급격히 낮아지면서 자동차 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했다.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인 제너널모터스(GM)는 중국 R&D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는 지난 6월 GM 등 자동차 빅3 업체들에 가능한 빨리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존 머피 BoA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미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익 측면이나 전략적 관점에서 중국시장에서 철수하고 북미시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GM은 100년 역사의 뷰익(Buick) 브랜드를 통해 중국 현지 진출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10년대에는 연간 400만 대를 판매하며 20억 달러(약 2조 6716억원) 이상을 벌었다. 그러나 비야디(比亞迪·BYD) 등과같은 중국 토종 경쟁사들의 부상으로 판매량과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 2023년 GM의 중국 판매량은 210만대로 감소했고, 지난 분기에는 1억 6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현지 사업의 고정비 절감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합작사와 사업 재구축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기업들의 ‘탈중국’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FDI)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미국의 대중 FDI가 40%나 곤두박질쳤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현금 흐름 기준)는 지난해 51억 달러로 전년보다 40% 급감했다. 지난 2014년 100억 달러를 넘어섰던 투자액은 현재 반토막이 난 셈이다.
대중 FDI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강경정책 이후 감소세가 본격화했고,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2021년엔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팬데믹이 종료되면서 투자가 되살아났지만 10년 전과 비교하면 딱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대중 견제를 강화하면서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확대하거나 지속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IT·법무 등 전문 산업에 대한 미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2년 연속 마이너스다. 바이든 정부가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한 데다 미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침해 리스크를 이유로 R&D 부문을 해외로 이전한 까닭이다.
‘외국자본 유출이 발등에 불’이 된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제조업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제한을 모두 없애는 등 외국자본 진입 문턱을 크게 낮추기로 한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에 따르면 리창(李强) 총리는 19일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재하고 ‘외국 기업 투자 접근에 관한 특별관리 조치’와 ‘서비스 무역의 질적 발전 촉진’ 등 4개 문건을 의결했다. 리 총리는 회의에서 “외국인 투자 진입 제한을 더 완화하고 제조업 부문에선 외국인 투자 진입 제한 조치를 전면 폐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을 최적화하고 외국 기업인의 합리적인 요구에 적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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