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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쉽게 타인에게 털어놓지만,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굳이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털어놓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아사히신문은 29일 한 정신과 의사가 만난 환자 사례를 통해 치매 할머니의 용기가 사회에 끼친 감동에 대해 보도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실제 이름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다.
치매 초기 단계에 있던 76세의 시노하라 가즈코 씨의 용기와 결단이 주목 받고 있다.
1993년 정신과 의원을 찾은 그녀는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떨어진다”며 치료를 받았다.
CT 촬영 등 여러가지 검진을 한 결과 알츠하이머형 치매 초기 단계라는 결과를 받았다.
가즈코 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두 딸은 시집을 가서 혼자 살고 있었다. 직접 쇼핑을 하고 장을 봐야 하는데 계산이 잘 안 돼 뒷사람들이 재촉할 때마다 불안해졌다”고 토로했다.
뒤에서 누군가 ‘빨리 계산하세요’라고 독촉하면 식은땀이 났다. 치매 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했던 시기였다.
의사는 자신의 미국 유학 경험을 예로 들며 공감을 표했다. 의사는 “쇼핑하러 가면 항상 긴장했어요. 영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불안했다”며 “영어를 잘 모르니 천천히 말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의사의 말에 용기를 얻은 가즈코 씨는 “제가 병이 있어요”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저는 이걸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용기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며 “이를 극복해냄으로써 치매라는 어려움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가슴을 펴고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몇 배나 용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감지됐다. 한 슈퍼마켓 직원은 가즈코 씨의 고백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할머니 경험을 털어놓았다. 직원은 “저도 할머니의 건망증을 눈치챘지만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질책을 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할머니의 말을 들어 주었을텐데 지금 후회하고 있다”며 “당신의 말을 듣고 할머니에게 사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의사는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승부가 시작된다”며 “가즈코 씨와 같은 용기 있는 환자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례는 치매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당당히 밝힘으로써 사회적 이해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환자 개인의 용기가 주변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그대로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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