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적 발언을 해온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를 두고 각계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디어·정보인권 분야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 조항 합헌 결정 등 소수자 인권 보호에 역행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성소수자에 관해선 저서를 통해 “동성 가족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그가 주축이 돼 만든 복음벌률가회는 국가인권위를 ‘인권 독재’로 규정한 곳이기도 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디어·정보인권 분야에서도 여러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특히 인권위는 장애인 방송의 진전을 견인하다시피 했다. 주요 방송사들도 수어통역을 소홀히 하는 상황에서 메인뉴스, 국제경기, 선거토론, 개표 등 방송에 수차례 수어통역 확대를 권고해 변화를 이끌어냈다. 2020년 인권위는 “비장애인들의 경우 아무런 불편 없이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메인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데 견주어, 농인은 비장애인들과 달리 메인뉴스를 시청하고 싶어도 한국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시청할 수 없다”며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권고했다.
2018년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의 장애인 희화화가 논란이 되자 인권위는 MBC 대표이사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차별적 표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방송업계의 성차별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의 채용 성차별 진정, 연합뉴스TV 아나운서의 출산 후 복귀 거부에 따른 진정에 인용을 결정했다. 연합뉴스TV가 아나운서 방송복귀 조치를 수용하지 않자 인권위는 ‘유감’을 표명했다. CBS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벌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CBS에 실효성 있는 성희롱·2차 피해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2019년 인권위는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공영방송 이사회에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며 법령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성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방송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방송 기구에 성별 균형 참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2022년 법조기자단 차별 문제에 관해 검찰과 법원이 출입기자단에 가입되지 않은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2022년 인권위는 아역배우 등의 수면권, 건강권 침해가 심각하다며 관계기관에 개선을 권고했다.
온라인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에도 적극 대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통신심의 제도가 사실상 검열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2010년 통신심의 기능을 민간자율기구에 이양하도록 권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3년 인권위는 인터넷 게시물 차단 제도인 임시조치에 관해 “일정한 판단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임시조치를 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저해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제도 개선 입장을 냈다.
정보인권 측면에서도 수사기관과 정부 등의 일방통행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다시 논란이 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문제에 이미 인권위가 개선을 권고한 적 있다. 21대 국회에서 정부가 추진한 AI기본법에 관해 지난해 인권위는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삭제하고 인권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일방적 규제완화에 제동을 걸고 AI로 인한 우려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인권위가 급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론·정보인권 단체가 우려를 보내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인권위가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인권감수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인사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언론연대는 이진숙 방통위원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등을 언급하며 “이른바 ‘부적격’ 인사들이 한국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여러 조직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이라며 “기관의 고유 기능마저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앞날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인권위는 한국 정보인권의 발전에 법조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여해왔다”며 “헌법재판소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선언하기 전 인권위가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결정에서 ‘정보인권’ 침해를 인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그는 “통신자료 문제에는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허가와 같은 사법적 통제수단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데 비해 인권위는 2014년부터 며칠전인 지난 23일 위원장 성명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법원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고 했다.
장여경 상임이사는 “최근 인권위가 정치화되면서 본연의 역할이 주춤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안창호 위원장 취임 후에는 AI와 같은 신기술 환경에서 더욱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국가인권기구의 인권옹호와 해석의 기능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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