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군인으로 참전했다가 순직한 A씨의 유족들은 2022년에야 국가가 지급하는 ‘전몰 군경 자녀 수당’을 받게 됐다. 그전까지는 A씨가 6·25 때 순직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앞서 국가는 A씨를 병사(病死)로 분류했다가 1997년 순직 처리했다. 또 이를 25년간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다가 2022년에야 알려준 것이다.
이에 A씨의 유족들은 ‘전몰 군경 자녀 수당’ 제도가 시행된 2001년 7월부터 수당을 지급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지난 3월 1심에서 승소했다. 참전 용사의 순직 통지가 20년 이상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서 국가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다. A씨와 같은 경우는 2000명으로, 이들의 유족도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국가가 순직 용사 유족을 찾기 위해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였다. 유족 측을 대리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원은 국가보훈부에서 70년 전 전사자 기록과 제적 등본 등 각종 문서를 찾아냈다. 판독하기 힘든 문서를 해독한 끝에 A씨의 주소지가 면(面) 단위까지 기재돼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1심 법원은 국가가 A씨의 주소지를 바탕으로 유족에게 순직 사실을 제때 알려줄 수 있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법무법인 원의 최중영(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 “A씨의 인적 사항, 주소 등이 부정확하게 기재돼 있었더라도 남아있는 단서로 최선을 다해 유족을 확인하지 않으면 국가 과실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두미영 변호사(변호사시험 9회)는 “A씨의 사례처럼 참전용사의 자녀들이 이미 고령이 돼 있어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 70년 전 전사자 자료 뒤진 변호사들… “정부가 유족 찾기 위해 최선 다해야”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원고가 피고 잘못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 원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해야 했다. 법무법인 원은 정부가 유족 찾기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전사자 기록과 제적 등본, 전사자 사망 원인과 경위를 기록한 전사망심사의결서 등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중영 변호사는 “(확보한 서류에서) A씨 주소지가 ‘충북 제천 백운면’으로 기재돼 있었기 때문에, A씨 사망 소식을 알릴 만한 사람이 가까이 살았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또 ‘망인의 시신이 1953년 1월 1일 본가봉송(전사자의 유골을 현장에서 수습해 고향집에 모시는 것)된 것’으로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울러 1995년에는 A씨 주소지에서 ‘A씨 소속 종파(宗派) 종회가 개최됐고, 그의 형이 참석했다’는 내용도 발견했다.
두미영 변호사는 “자료들이 한자나 간자체로 돼 있어 내용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방계친척이 ‘충북 제천시 백운면’의 집성촌에 거주하고 있었던 만큼, 정부가 백운면에 직접 방문하거나 면사무소에 연락하면 A씨 유족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고 밝혔다.
최중영·두미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재판부에 ‘전몰 군경 자녀 수당’의 도입 취지도 강조했다. 6·25 때 부친이 전사하면서 자녀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불우한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정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용사들의 유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수당을 도입한 것이다.
◇ 재판부 “유족에 적시에 통지해 예우 받게 하는 건 국가의 책무”
서울중앙지법 민사903단독 하성원 부장판사는 지난 3월 1심에서 유족 측 주장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정부에 “2018년 6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유족이 받지 못한 전몰 군경 자녀 수당 약 7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와 별개로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법무법인 원은 “통지 의무를 제때 하지 못한 것은 국가 책무를 다 하지 못한 일”이라며 이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물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가) 순직으로 변경되고도 25년이 넘도록 (국가가) 이를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아 국가유공자로서 누릴 혜택을 향유하지 못했고, 재산상 손해를 입고도 소멸시효가 완성돼 상당 부분을 배상받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순직으로 변경 됨에 따라 유족이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예우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경우 (국가가) 유족에게 적시에 그 사실을 통지해 유족이 예우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가 5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유족이 순직 사실을 알게 돼 국가유공자 등록을 한 2022년으로부터 5년 전까지만 국가가 수당을 줄 의무가 발생한다고 판결했다. 국가재정법에선 금전의 급부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는 소멸시효가 5년이다.
이 사건은 유족 측 항소로 2심에 올라가 있다. 정부는 항소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원은 소멸시효를 두고 재차 다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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